가장 친한 친구 A가 집을 샀다. 벌써 친구가 된 지 13년이 다 되어가는데 우린 많이 다르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는 10대 때부터 참 많이 달랐다. 요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우리 도대체 어떻게 제일 친한 친구가 된 거야?'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나와 가장 많이 다른 A. 그런 A가 집을 샀다.
A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집을 사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단다. '어라? 지금 집을 살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나다.
나는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월세 부동산 매물을 많이 보러 다녔다. 그러다 한 집을 가보고 정말이지 홀딱 빠져서 집주인분과 공사 계획도 같이 세우고, 도면도 그리고, 전세 대출 상담도 받았다. 에어비앤비 허가 절차도 알아보고 관련 강의도 몇 개 들었다. 몇 개월 안에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에어비앤비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동안 무척 설렜다. 그런데 갑자기 집주인이 전세가 아니라 매매를 하겠다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집을 구매할 수 있는지(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용감하게 알아보았고 나는 역시나 절대 구매할 수 없었다. A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한참 대화를 나눈 후 A가 그 집을 살 수 있는지 알아봤고 A는 집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그렇게 될 뻔했으나, 주택 구매에 회의적이신 부모님의 조언을 듣고 A는 구매 의사를 거뒀다.
그 집을 사지는 않았으나 A는 집을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머지않은 때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 그리고 얼마 후 A는 아파트를 구매했다. A가 같은 아파트의 다른 호수 몇 채를 두고 고민하면서 나에게 같이 집을 보러 가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내가 본다고 뭘 알까? A의 첫 집을 구매하는데 내가 뭔가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얘 참 순수하네. 나라면 괜히 내가 신경쓰여 집 같이 봐달라고 말 못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A와 함께 부동산을 방문해 집을 같이 둘러보고 조언을 해주고 집값을 500만 원 깎아줬다. 참 마음이 복잡했다. 일찍이 교수가 된 A의 능력 있는 남편이 받은 대출, A의 부모님께 도움 받은 나머지 집값. 다달이 낼 이자가 걱정스러운 A와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걱정인 나.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사는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A가 보냈던 힘든 순간들을 잘 아는 한 사람으로서 '너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기뻐.'라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끝내주게 환장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깨끗하게 기쁜 마음만 들지 않는 스스로가 참으로 지질하고 구차하고 변변찮아서 며칠을 앓았다. A가 잘 되어서 좋다. 너라도 손대는 것마다 잘 되어서 참 좋다. 둘 다 가난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니. 나는 내가 왜 이리 가증스럽게 느껴지니. 너는 나를 이리도 깨끗이 대하는데 나는 내 마음조차도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몇 날 며칠 머릿속이 진흙탕 같았다. 나는 이렇게 숱하게 내가 미웠다. 그러다가도, 먼저 말은 않지만 어두운 얼굴을 한 A의 무언가를 눈치채고 채근해서, 요즘 한참 하는 고민을 듣고. 위로나 조언 따위를 해서. 조금 밝아진 A의 표정을 볼 때면 나는 때때로 내가 좋았다.
그렇게 나는 숱하게 내가 밉고 때때로 내가 좋아서 내가 너무 미웠다. 내가 힘들 때 함께 슬퍼하고, 나에게 찾아온 작은 행운에 함께 기뻐해주던 A를, 내가 나를 미워하는 도구로 쓰고 있는 스스로를 용서하기가 어렵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애인에게 가장 손쉽게 짜증을 내고, 번듯한 경력도 없고, 가난해도 가질 수 있는 재능-성실-도 없는 내가 밉다. 이부자리 정리도 잘하지 않고 쉽게 무기력에 빠져 드러눕고 뭘 하나 진득하게 하지 않는 내가 밉다. 옆집 할아버지를 위해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준 내가 마음에 든다. 어학사전에서 유의어 반의어를 습관처럼 찾는 내가 좋다. 넘어지는 만큼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내가 썩 좋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밉다. 내일이 나름 괜찮을 것 같다가도 한없이 내일이 두려워져서 잠들기 싫고 잠들면 눈뜨기 싫어하는 내가 참 밉다. 차라리 다른 누군가가 밉다면 한동안 멀리 할 텐데 내가 이리도 미우니 어쩔 줄을 몰라 망연자실한다. 숱하게 내가 밉고 때때로 내가 좋아 내가 너무 미웠던 날들이 지나가면, 숱하게 내가 좋고 때때로 내가 미워 내가 퍽 마음에 드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오기까지 나는 매일의 순간들을 뒤지고 뒤져 내가 꽤나 괜찮았던 찰나들을 계속 그러모아야겠지.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냥 그런 바람을 지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