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나의 작은 사람과 나

고모일기, 프롤로그

by 만정

나는 친가에 이십몇 년 만에 태어난 새 멤버였다. 아직 어리고 젊었던 고모들과 삼촌은 그런 조카를 예뻐해 줬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사랑받았었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별히 살아남은 기억 중에는 할머니 방에서 내게 그림을 그려주던 다정한 삼촌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던 삼촌이 떠날 때면 나는 당연히 울었다. 대여섯 살이었을 것이다.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삼촌에 대한 복합적인 관점과 감정이 쌓였고, 유감스럽게도 내가 받은 사랑을 전혀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것임을 안다. 이제는 생일이면 이른 새벽 가장 먼저 조카, 생일 축하하네, 하고 예의를 차려 인사해주시는 삼촌이 내게 영원히 각별한 사람으로 남으리라는 사실도.


6년 전, 내 동생과 사촌들이 태어난 지 다시 이십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우리 집에 새로운 멤버가 도착했다. 그 작은 사람은 나를 고모라고 부른다. 그가 아직 올케 뱃속에 있을 때 내게는 남모르는 걱정이 있었다. 본디 나밖에 모르는 내가, 저 작은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근심이었음은 금세 밝혀졌다.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어 기뻤다. 놀라운 사실은 그도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한다. 레이저 발사! 으악. 을 오백 번 반복하고 나 잡아 봐라를 지쳐 쓰러질 때까지 하면서 서로를 향한 호감과 신뢰를 착실히 쌓아왔다. 나는 그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정말이지 공을 들였다. 그는 나에게 그 이상으로 보답해주었다. 지난 6년 동안 새로 만난 사람 중 내게 제일 의미 있는 사람은 이 작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나는 자주 말하고 다닌다. 완전한 사실이니까.


이런 관계를 영원히 지속하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다정한 사람이라면 또 모르지만, 내가 어떤 조카였던가를 돌이켜보면 그렇다. 나와 헤어질 때 서운해하고 눈물을 흘려주는 이 영롱한 순간이 영원할 리 없다는 걸 이제는 나도 알 만한 나이다. 그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테고(그래야 한다), 나는 그 세계 안에서 점점 더 작은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소중하다.


비축해두고 싶었다. 나중에 그가 다 잊어버리더라도, 몰라줘도 상관없다. 이 빛나는 순간을 우리가 함께 나눴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게 영원히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내가 그를 사랑했던 순간, 아니 그가 나를 사랑해줬던 순간들을 사진처럼 남겨두고 싶었다. 사진보다 글이 쉬운 나는 해변가에서 주운 가장 예쁜 자갈을 집에 돌아와 반질반질하게 닦듯 여기 기록할 것이다. 언젠가 그 반짝이고 다정했던 순간들을 훈장처럼 열어볼 것이다. 사탕처럼 하나씩 꺼내먹을 것이다.


제목이 무색하게 이 글은 나의 작은 다정한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이 될 것 같다. 그래도 혹시 알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의 작은 사람이 언젠가 이 이야기도 좋아하게 될지. 그렇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이다. 나와 나의 작은 사람을 위한 이야기. 이 글은 그렇게 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