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정 Jun 19. 2021

11. 출근길의 주문

일터를 향하는 마음의 모양은 다양하다. 평온하게 무념무상일 때가 좋지만, 드물게는 두근거리는(좋은 의미로) 날도 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출근길은 피곤함, 나쁜 컨디션, 어제 집으로 데려와 꿈에서마저 피하지 못한 걱정거리, 무엇보다 두려움과 함께 하곤 한다. 물론 이건 올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이다. 지난 9년 동안 출근길의 감정이란, 이대로 인생이 끝날 거라는 희망 없음, 절망으로 단조로웠다. 배경음악 역시 단순해서, 전에 말한 것처럼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1975)’ 나 ‘Us and Them(1973)’ 만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곤 했다.


2020년 시월의 마지막 날, 나는 동생 가족과 일산 호수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생은 드러내지 않는 음악 애호가인데, 나와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듣지만 때로 장르를 넘어서는 선호가 우리가 남매임을 확인시켜주곤 한다. 이를테면 그 노래가 그랬다. 동생은 그날 조카가 요즘 좋아하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자신이 푹 빠졌다며 중독성 있는 노래라고 했다. 들어보니 역시 그랬다! 당신도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나니 알지도 모르겠다. ‘우당탕탕 아이쿠’의 주제가 말이다. 멜로디와 리듬도 좋았지만 이렇게 오만방자하고 자뻑이 심한 못생긴 외계인 왕자 녀석이라니! 나는 마치 이런 주인공을 늘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 노래에 빨려 들었다. 펭수 이전에도 기괴한 어린이물 주인공들은 존재해왔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그 남자는 새로운 노래를 소개해줬다. Hawkwind 의 ‘Master of the Universe(1971)’. 자주 그렇듯이 70년대 락이었고, 우리가 즐겨듣는 밴드는 아니었다. 나는 동생에게 소개 받은 노래를 그에게도 열성적으로 전파했고, 우리는 두 노래를 비교하며 낄낄거렸다. 음악성을 떠나(사실, ‘Master of the Universe’ 는 들을만한 스페이스 락이다. 우주의 공간감이 멋지게 느껴진다. 70년대 초반 지구의 천재성은 유럽의 락에 집중되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15-16세기 지구의 기운이 피렌체 르네상스에서 꽃을 피우고, 19세기 말에는 비엔나에서 절정을 이루었듯이 말이다) 자기가 우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두 노래가 나를 웃겼다. 우리 조카 말이 맞았다. ‘우당탕탕 아이쿠’는 귀여운 노래가 아니라 웃기는 노래였다. 좋은 스페이스 락이었던 ‘Master of the Universe’ 역시 이제는 웃기는 노래의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비장하게 두 곡을 유튜브 재생목록 ‘오늘의 노래’에 추가했다. 그날 출근길 나의 보무가 얼마나 당당했는지 당신이 봤어야 하는데. 정말이지, 두려움이 안개처럼 걷히고 있었다. 마곡나루역에서 회사까지 15분을 걷는 사이, 나는 놀라웁게도 우주의 주인으로 거듭나 있었다.      


여봐라, 비켜라 지구인 (놈)들아.

엎드려 절해라, 내가 왔도다.      


아, 나의 우주이니 응당 내가 다스려주어야지. 나와라, 멍청이들아. 내가 다 해치워주겠다. 나의 가슴은 자신감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드물게 문의와 문제가 많은 날이었다. 우주의 주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결코 적지 않음을 깨달으며 약간의 피로와 함께 월요일 퇴근길에 오른 기억이 어렴풋하다. 우주의 주인은 이렇게 회사원으로 퇴근하는구나. 그래도 멋지지 아니한가. 회사원에게는 퇴근이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이. 우주의 주인보다 회사원의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퇴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피로와 안도감을 안고 느즈막히 오른 퇴근 택시 안에서도, 는 우주의 주인이라는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마음속에서는 작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직도 출근이 두려운 날이면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고쳐먹곤 한다. 마음이 바뀌진 않더라도 조금은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당신에게는 용기를 주는 다른 플레이리스트가 있겠지만 나눠주고 싶었다. 어렵고 두려운 결정 앞에 선 당신에게 나의 용기와 자신감과 그 원천을.


최근 내가 일상을 거의 회복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계기는 ‘학교 가는 길’이었다. 노영심의, 아니 노영심과 김광민의 ‘학교 가는 길(1997)’을 나는 대학교 등굣길에 자주 흥얼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흥겨움은 학교 ‘가는’ 길이 아니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상큼함과 싱그러움, 기대감은 학교 가는 길에 느껴진다는 사실을.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노래가 유년기를 회상하게 해 마음을 찡하게 한다고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 유년기가 한참 늦게 왔는지, 기억은 항상 20대 초반을 향한다. 신촌역에 내려 노고산동 은근한 오르막길을 오를 때 나는 이 시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길 자주 바랐다. 시험기간이면 울고불고 불안해했지만, 본질적으로 나는 그 생활을 사랑했다. 그래서 비싼 비용을 들여 그 기간을 2년 반 연장하는 행운도 누렸다. 내게 허락된 행운은 거기까지였지만.


이제 그 노래가 30대 후반, 학교 가는 길이 아닌 회사 가는 길에 울려 퍼지는 것이다. 나는 좀 행복한가보다. 이런저런 두려움이 항상 내 옆을 걷고 때로는 그 두려움 때문에 이메일 한 통 여는 것조차 버거워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이 햇살 따사로운 시기를 나는 만끽할 것이다. 때로 회사일이 무서운 꿈으로, 회사 사람들이 악몽으로 쫒아 와도 나는 당분간 꽤 괜찮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이 (두려움으로부터의 약간의) 자유와 용기가 함께 하길. 응원의 마음을 첨부처럼 송부해본다.




음악

Pink Floyd, Wish You Were Here : 유튜브에서 듣기

Pink Floyd, Us and Them : 유튜브에서 듣기

우당탕탕 아이쿠 주제가 : 유튜브에서 듣기

Hawkwind, Master of the Universe : 유튜브에서 듣기


매거진의 이전글 10. 늑대가 잘못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