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탐하는 마음

by 만정

복숭아 농부의 친구가 되는 행운


친구가 복숭아를 보내줬다. 우리가 '친구'라는 데 그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우리는 입사동기이다. 요즘 트렌드와 달리 IT회사에서 다양한 전공자들을 신입사원으로 선발하던 때였다. 수학과, 통계학과, 산업공학과처럼 기술 관련성이 높은 학과 출신들도 적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기술보다는 업무 연관성을 고려한 인원 충원을 하던 때였지 싶다. 덕분에 사회학을 전공한 나를 비롯해 경영학과, 회계학과, 건축과, 법학과를 나온 입사동기들이 존재했다. 지금 회사 인구 구성과 비교하면 당시 내 입사동기라는 사람들의 다양성은 흥미로울 정도이다. 괴짜들도 많았다. 회사에 오래 머물다보면 동질성으로 한 꺼풀 가려지는 댜양성과 개성이었다.


이 친구는 괴짜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었다. IT업계에서는 이태백 한시를 읊고 계량 한복을 입은 전적이 있는 젊은이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이 정도의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느슨하게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느슨하든 팽팽하든 연락을 유지한다는 것은 내게 특별한 관계의 범주에 속한다. 내가 연락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가 퇴사한 후 그를 대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제는 내가 그를 회사 사람으로 생각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얼마 간은 퇴사 후 편안해진 그 자신을 내게 드러내어서 인 것 같기도 한다(그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정말 더 건강하게 느껴진다. 그의 안녕은 통화만으로도 내게 전해진다). 어쩌면 그가 퇴사 후 내 외가가 있는 지역에 터를 잡고 귀농했다는 우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계획을 잘 세우며 그 계획을 전략적으로 실현하는 데 장점이 있는 친구였다. 귀농 후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내가 본 그의 장점은 대체로 틀리지 않다. 그런 사람이 올해 처음으로 복숭아를 수확해 내게 보내온 것이다.


온전한 복숭아다. 무른 데도 터진 데도 없이 큰 과실이 발그스레했다. 코를 가까이 대자 복숭아 냄새가 진동한다. 백도 몇 개는 당장 먹어도 될 정도로 물렁하다. 친구는 과일이 무르익기에는 일찍 차가워진 새벽 날씨 때문에 신맛이 날까 걱정했다는데, 내가 먹어본 건 달콤했다. 달콤한 향이 짙었다. 그 와중에 복숭아 향이 적지 않아서 좋았다. 과일은 당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향이니까. 수시로 박스 속의 복숭아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미소를 짓고 있다.


음흉한 과일, 복숭아


내게 복숭아란 베어 무는 순간, 저항이 적은 섬유질이 쉽게 무너지면서 과즙이 줄줄 흘러내리는 과일이다(내 세계에 딱딱한 백도나 천도 복숭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이 농축시킨 녹진한 과즙 속에 코로 넘어오는 복숭아 향이 없다면 나는 결코 이 과일을 '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복숭아 정의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은 색깔이다. 발그레한 색깔과 과즙, 사람을 홀리는 향이라는 요소의 결합 때문에 나는 이 과일을 음흉하게 흘겨보곤 한다. 물론 말하는 나 자신의 음흉함을 드러내는 위험을 무릎쓰고 하는 진술이다(틀린 말도 아니다). 다른 마음이 없이 시원한 향과 물로 가득한 수박, 속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다정한 바나나, 내장을 다 내주는 건강한 토마토와 달리 복숭아는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두 번 생각하게 한다. 비밀이 있다고나 할까. 그냥 좋아해서 될 일이 아니라 좀 탐하게 되고 홀리게 되는 종류의 매력이다. 개보다는 고양이 같은 과일이다. 딱딱한 백도나 천도 복숭아는 오히려 순진한 편이므로 내 편에서 보자면 그건 복숭아일 수 없다.


그 덕분에 나와 같은 복숭아 취향을 가진 아빠를 가끔 흘겨볼 때가 있다(이런 음흉한 양반 같으니). 우리는 왜 이런 데서 닮는 겁니까, 아버님. 이런 아빠/나와 달리 엄마가 천도 복숭아만 좋아한다는 건 놀라운 우연인가, 놀라울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인가. 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좌인 것인가.


요지연도 瑤池宴圖, 신선들을 위한 복숭아 잔치


좀 다른 의미이지만, 복숭아가 영물(흠, 요물과 영물, 어느 쪽이 적확할까?)이라는 생각에는 보편성이 있지 싶다(정했다. 위에선 요물, 이 맥락에서는 영물이다). 요지연도(瑤池宴圖). 곤륜산 요지 옆, 서왕모의 과수원에서 나는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 3천 년에 한 번 복숭아 수확철을 맞아 서왕모가 신선들을 초대해 복숭아 잔치를 연다. 이 이벤트를 주제로 한 그림 요지연도로 선조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했다고 한다.


작년 APMA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에서 요지연도를 보고 그림과 서사 양쪽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관람객과 독대하도록 배치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보물이 많은 전시였고 특히 초반 병풍들이 좋았는데 요지연도도 그 중 하나였다. 보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탐스러운 복숭아가 열린 연회장과 거기 참석하려 신선들이 줄을 잇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한량 같은 신선들이 먹는 과일로 복숭아가 선택되었고, 그 특별한 과일에는 불노장생이라는 신비한 힘이 담겨있다. 한량들은 복숭아 파티를 즐긴다. 라니. 인간들은 일찍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내가 연회에 참석하는 신선이었으면, 하고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서왕모의 복숭아는 물렁했을까, 딱딱했을까? 탐스럽게 발그레한 그림 속 색깔로 알 수 없는 식감이 궁금증하다. 친구가 농사 지은 복숭아를 먹으며 요지연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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