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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Dec 01. 2021

#34 사고 싶다 살고 싶다

Georges Cziffra 에라토 전집

나한테 이거 사줄 사람 없을까? 생일선물도 좋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좋다. 오늘부터는 12월이니까. 이토록 상쾌한 12월의 첫 날 강렬한 욕망이 솟구친다.


담배를 문 입, 두툼한 어깨와 윗팔, 가슴에 딱 맞는 셔츠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올린 사내는 심지어 맨 윗 단추를 푼 채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고 있다. 흡사 샐러리맨 같은 모습. 녹음 스튜디오라기보다는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 하기 위해 모인 클럽이나 집 거실에 놓인 피아노를 치는 듯하다. 완전히 20세기적인 남성 상(像)이다. 저런 남자 인간이라면 감히 섹시하다는 수사/찬사를 부여하겠나니.


꼭 그런 이미지가 첫 음부터 느껴지는 쇼팽 에뛰드 전곡을 듣고 있다. 자켓 사진처럼 시원시원한 쾌남의 힘이 넘치는 쇼팽. 쇼팽이 이런 곡인 줄 알았다면 진작 친해졌을텐데.


정만섭 아저씨, 생일 선물 잘 받았습니다! 오늘 선곡 정말 멋지네요. 말씀처럼 극단적인 테크닉이 쾌감을 선사합니다. 그럴 의도는 없으셨겠지만 제게 새로운 피아니스트와 쇼팽을 선물하셨어요. 새 친구들 잘 사귀어 보겠습니다.


셀프 생일 선물이라도 좋겠다. 사고 싶은 마음은 어쨌든 살고 싶은 마음과 닿아있으니까. 아니, 전자는 후자를 불러일으키니까.


사고 싶다, 살고 싶다.

12월의 첫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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