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마지막 날의 의식

국립중앙박물관과 레퀴엠

by 만정

입구를 들어서면서 아차 싶었다. 경천사 십층석탑은 1층 복도 끝, 건물 소실점에 위치한다. 어떤 관람객도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감히 나를 잊다니! 라는 불호령을 못들은 척 슬그머니 눈길을 피한다. 이 독특한 대리석탑을 한층 한층 눈으로 쓰다듬다 보면 나는 결국 아름답고 위엄있는 분을 올려다보는 지상의 낮은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눈높이를 맞춘대도 우리가 동등한 입장이 될 수 있을 리 없다. 그분은 성스럽고 경이로우며 나를 굽어볼 것이다. 언제까지나.


갈급한 마음으로 더듬더듬 반가사유상이 있을 방을 찾는다. 그분이라면 심란한 내 마음을 곱게 빗어 정돈해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지어 새로운 전시 공간에 두 국보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모셨다는데, 갈급함과 호기심에 걸음이 빨라진다.


‘사유의 방’이라는 새 전시실은 젖은 땅 같은 테라코타 색 벽에 별이 매달린 듯한 천장으로 꾸며져 있다. 공을 많이 들인 인테리어다. 너무 힙하게 세련된 바람에 신비로움이 좀 가신다. 입구에서 꽤 먼 거리에 두 반가사유상이 계신다. 반가운 마음과 그를 둘러싼 너무 많은 인파에 대한 짜증, 유리 보호막도 없이 사방에서 불상을 둘러볼 수 있다는 기쁨이 뒤섞인다. 찬찬히 한 분씩 둘러본다. 마음 속에 부유하던 먼지가 가라앉은 것도 잠시, 곧 사진기로 내 어깨를 친 관람객이 일으킨 마음의 소란을 잠재우려 쫒기 듯 전시실을 나선다. 출구 앞에서 돌아보니 화려한 방과 낮은 조도 때문에 반가사유상은 되려 왜소해보인다. 기이하다.


남은 에너지를 짜내 3층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꼭 불교 조각 전시실에 가고 싶었다. 특히 커다란 불상들을 모셔둔 방. 추상적으로 단순화된 이목구비의 신비로운 표정을 큼지막하게 보고 싶었다. 그 방에서 혼자 소요하다 천천히 나서, 얼마 전까지 83호 반가사유상이 혼자 점하던 작은 붉은 방으로 향한다. 태탕한 자세의 새로운 작은 불상이 관람객 하나 없는 방 중앙을 점하셨다. 늘 사람들이 머물던 곳인데, 어쩐지 외로워보여 조금 서성이다 방을 나선다.


집에 와서는 명연주 명음반의 의례에 참석한다. 매해 마지막 날에는 사라져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모차르트 레퀴엠을 듣는 것이다.


차가운 날씨에 피부가 따갑다. 서른 중반이 되면서는 연말 연초의 문턱 넘어서는 일이 힘겹다. 과속방지턱이라도 되는건가. 안정감을 찾으려는 나만의 새해 의식,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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