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내가 산 책(그리고 ?) - 22/01/16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이탈리아, 그리고 아란 차장님

by 만정

마르코 심사, ‘마술피리-모차르트 오페라’

내 숙원 사업 중에는 엄마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마술피리 공연 관람하기가 있다. 2019년 여름, 이탈리아와 마지막까지 겨루던 휴가지도 잘츠부르크. 그해 모차르트 오페라 프로그램은 이도메네오였다. 다음 해 코로나로 발이 묶일 줄 알았다면 2019년 겨울의 나는 잘츠부르크행 비행기 표를 끊었을까? 음, 아마 그래도 로마엘 갔을 것이다.


22년도 프로그램을 보니 하필 마술피리다. 게다가 세비야의 이발사, 투란도트까지. 제게 왜 이러시는 거죠? 백신을 더 맞고 마스크를 하고 잘츠부르크에서 운명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지 일주일 동안 ‘고민’했지만,


올 여름 잘츠부르크에서 엄마와 마술피리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글씨가 많은 어린이용 동화책을 조카와 같이 읽으며 아쉬움을 달래봐야겠다.


김덕선, 유재선 등,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

그리움과 아쉬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것보다 그리운 건 단언코 없다. 내 이태리 여행! 최소 다섯 번은 더 가야했는데. 아직 스크로베니 채플의 조토 벽화도 못 봤고 볼로냐 미식 여행도, 밀라노 아케이드 구경도 못했다. 카페 시칠리아의 젤라토와 그라니타도, 소렌토의 오렌지 주스도 못 먹었고,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이랑 폼페이 유적지도 못 가봤고… 등등 다 늘어놓으려면 지면 하나를 다 채울 ‘못 해봤는데’ 목록 이탈리아 편이 내 노트에 있다.


여하간 ‘이탈리아’(와) ‘여행’ 부족 현상으로 인한 구매다. 물론 이탈리아 주제 책자(여행 서적부터 밀라논나와 알베르토, 브로드스키의 에세이, 조르조 바사니와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등)는 대체로 닥치는대로 사들이는 편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내 방에서 즐기는 이탈리아 미술 어행’.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을 이탈리아 내 한국인 가이드들이 지역을 나누어 그림들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들었다. 컬렉션에 새로움을 기대하는 바는 적다. 작은 사진으로나마 그리움을 달래고 열망을 되새기고 싶을 뿐이다. 그러므로 도판에 거는 기대가 무척 큰데, 마침 도판이 좋다는 출판사 광고가 있었다. 따라서 도판이 나쁠 경우 나는 분노할 것이며, 이 책은 곧장 두꺼비에게 시집 보내질 것이다(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신경이 곤두서서 하는 말 만은 아니다). 이 책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다.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

이건 전적으로 민음사TV 조아란 차장님에게 당한 영업이다(그런데 막상 민음사 책은 아니라는 사실에 한결 마음이 흡족하다). 민음사TV는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고 조아란 차장님은 마케팅 부서 소속 직원이다. 조 차장님은 딱 친구 삼고 싶은 캐릭터다. 이 채널이 대박난 건 나같이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이 유쾌한 출판업계 종사자의 개인적인 매력에 이끌려 상업/광고 채널을 자꾸 찾게 되는 것이다. 늘 책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듣다 보면 어느 새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추천은 유튜브 알고리즘 따위가 감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불쾌하게 그러모은 오만 데이터(데이터는 비싸다)를 미친 듯이 ‘학습’해서(다 돈이다) 간신히 추천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이다. 나는 알고리즘이나 AI가 아닌 ‘사람’의 추천을 신뢰한다(‘유튜브 알고리즘과 AI 추천에 반대하는 IT회사 이 책임’ 편은 조만간 게시할 예정이다). 이를 테면 정만섭 아저씨나 빨간 책방, 필름 클럽처럼. 같은 영상에서 조 차장님이 언급한 노라 애프런의 에세이는 끌리면서도 미워하게 될 것이 분명해서 장바구니에 남겨졌다(아직까지는).


어떤 사람들은 한 분야에 정통한 대신, 다양한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차례로 섭렵해 나간다. 작가 에밀리 와프닉은 이들을 다능인이라고 칭한다. 그는 다능인들을 향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세계에 만연한 ‘전문가’라는 로망에 주눅들지 말고, 다양한 영역에 대한 관심을 죄책감 없이 자유롭게 펼치라고. 당신이 산만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한 가지 관심사에 정착하지 못하는 게 아닐 뿐더러, 이 세계는 사실 당신들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조 차장님 말대로 자기개발서다. 현대사회의 지배적인(그래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점을 반대로 구부려서 균형을 찾으려는, 동시에 그 구체적인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매우 서구적인 자기개발서(일반적으로 나는 자기개발서를 멀리 한다).


직장인이 되고 얼마 후, 남자친구로부터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를 선물 받았다. 막스 베버의 주장처럼 근대사회는 분화가 핵심이라고, 르네상스적 인간을 추구하는 건 21세기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거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그런 문제로 괴로워 하는 이십대였다. 누구처럼 되고 싶냐는 물음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답하는 나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회사 상담 선생님 모습도 눈에 선하다(물론 이 망연자실에 여러 함의가 있다. 감히 범인이 그런 천재를 입에 올리다니! 그러니 사는 게 괴롭지… 와 같은?).


뭐 하나 끝을 보는 것 없이 끼적끼적 사는 게 불안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여기 깔짝, 저기 깔짝. 사회학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모한 사랑을 놓친 후부터 나라는 인간은 더 맥락 없이 느껴지곤 한다. 맥락이 없어도 되지 않느냐는 스스로의 말이 위안이 되지 않는다. 한량 주제에 낭비를 괴로워하다니. 난제다, 난제.


내가 기대하는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읽어보기로 한다. 뭔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중고책 매입 가방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안보는 책 정리다. 우선 가장 눈에 거슬리던 책 몇 권을 추려놓고 중고판매용 가방을 책과 함께 주문했다. 의외로 많지 않다. 나는 내가 사는 책에 만족하나보다. 적더라도 보내고 나면 채우는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지겠지. 게다가 ‘내가 판 책’도 쓸 수 있겠네(반쯤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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