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가요? 라고 묻는 영화들이 있다.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가 바로 그런 영화다(적어도 내게는).
기자 로이드 보걸에게 ‘미스터 로저스’ 취재가 맡겨진다. 인물 취재도, 취재 대상도 탐탁지 않지만 피할 도리는 없다. 로이드가 유능하고, 신념을 가진 기자인 것 같긴 한데, 기사를 본 인터뷰이들은 학을 뗀단다. 그도 그럴 것이, 로이드의 ‘신념’은 폭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진짜 ‘진짜’는 따로 있다고 믿는, 액면 그대로를 믿지 않는 기자가 가장 선량하고 친절한 아저씨의 대명사, 유명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인 미스터 로저스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연 우리 로저스 아저씨의 운명은?” 같은 영화가 아니다. 노련하고 날카로울 기자 로이드의 겉옷은 햇님 같은 미스터 로저스의 질문에 그만 벗겨지고 만다. 로이드는 스스로를 인터뷰하는 여정에 오르는 것이다.
아들이 있다고해서 완전한 부모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온전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더 구제불능인 건 손 쓸 도리 없는 어린이가 들어앉은 어른 몸이다. 빈틈을 보이면 안되는 생활세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려 애쓴다. 두렵고 불완전할수록 더 방어적일지도 모른다.
친절하고 따뜻한 로저스 아저씨는 두렵고 혼란스러운 로이드의 어린이를 향해 말을 건다. 로이드는 그 말들을 물리치려 하지만, 자주 대답하고, 대답하지 않은 질문의 잔상들은 집요하게 꿈으로 쫒아와 끝내 그를 굴복시킨다.
이 영화는 어른이지만 어른이지 못한 로이드의 내면과 행동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쓰러진 순간, 로이드가 가만히 서있는 이유는 아버지를 죽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미움 때문이 아니라 당혹으로 얼어붙었기 때문임을 나는 알고 있다. 너무 당황한 사람들은 상황에 맞지 않게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한다는 걸 내가 안다는 뜻이다. 왜? 내가 자주 그러니까. 겉으로 완고해보이는 그가 실은 가족에게, 특히 아내에게 의지한다는 묘사도 좋다. 유연하지 않은 사람들, 방어적인 사람들은 가장 친밀하게 여기는 타인에게 때로 지나치게 의존한다. 나와 우리 아빠가 서로의 파트너에게 그런 것처럼.
백미는 로이드의 무의식 장면들이다. 낮의 로이드가 단지 인형이라며 무시하려 했던 수줍음 많은 줄무늬 호랑이 대니얼은 로저스 아저씨의 세트장 꿈을 꾸는 로이드의 침대에 누워있다. 대니얼은 곧 로이드인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내적 갈등이 극대화 된 채 로저스 아저씨를 찾아가 정신을 잃었을 때 로이드는 비로소 가드를 내리고 대니얼과 레이디 애벌린, 미스터 로저스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가장 깊숙하게 숨겨둔 자신을 마주한다. 이 꿈은 뒤죽박죽 현실을 재구성한 꿈을 영화적으로 잘 구현해냈다. 정말 좋아하는 시퀀스다.
사운드 트랙도 전부 좋았는데, 특히 로저스 부부가 연주했던 슈만의 연탄곡, ‘동양에서 온 그림’이 인상깊다. 슈만을 처음 언급하게 되는 곡이 다비드 동맹이 아닐 가능성은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그렇게 됐다. 슈만은 가끔 나 자신 같다. 특히 혼란스럽고 격렬할 때. 물론 이 곡은 혼란스럽고 격렬한 감정이 논리정연하게 흐르지만. 트레이시 채프먼의 목소리는 가장 감정적인 장면 중 하나에 흘러나왔다. The Promise는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트레이시 채프먼 Tracy Chapman 목소리를 못 알아채기는 불가능하다. 심금을 울리는 낮고 떨리는 긴 파동이다.
로이드는 자신과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화해한다. 평화를 찾았을 것이다. 진정한 내면의 자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