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가혹한 워라밸

폭주를 원한다, 워크든 라이프든

by 만정

나는 신입시절부터 눈치 없는 조직생활을 했다. 혼자 먹는 점심을 즐겼고 회식 참석을 가급적 삼갔으며 팀원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거의 갖지 않았고 팀장(이나 임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하는 법이 었었다. 조직문화가 타 업계에 비해 진보적이고 개인적인 IT회사에서도 십년 전엔 별난 취급을 받았다. 지극히 개인 중심적인 태도에 여자라는 성별이 결합하면 결과는 파국이기 쉬운데 나는 용케도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참 많은 비용(시간과 에너지)이 드는 일이었다. 내 성과는 일이 아니라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도 내 방식을 십년 간 유지한 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던 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내 한정된 시간을 내가 사랑하는 일에 물리적으로 많이 투여하고 싶었다. 삶과 일을 조금도 분리하고 싶지 않았다. 참으로 단순하고 투명한 삶이지 않은가. 내가 곧 일이기를 오랫동안 꿈꿨다. 일이 되는 순간 좋아하는 일이 싫어진다는 사람들의 말을 나는 거의 믿지 않는다. 그저 사탕발림이라고 아직도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일이 될 수 없었고, 삶은 줄곧 일과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있었기 때문에 회사원이 된 순간부터 워라밸을 실천하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삶은 하루 24시간의 중간을 떡하니 버티고 선 낮 아홉 시간을 비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정말 고충이 많았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그나마도 충실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을 9시간으로 가두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했다. 일의 시간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맛은 지독한 절망감이었다. 워라밸은 내게 너무 가혹한 개념이었다. 일과 삶이 일치할 수 없다는 전제와 그 전제 하에 삶의 시간은 결코 충분할 수 없다는 예정된 절망감. 돌아보니, 내 우울증은 논리적인 귀결이다.


일에 대한 에너지를 가두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일의 시간과 일에 쓰는 에너지를 급료에 상응하는 정도로 맞(낮)추고 동료들과 발맞추는(적당한 속도와 에너지로. 라는 의미에서) 데 아무래도 기술이 필요한가보다. 나는 폭주를 원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아드레날린일까, 도파민일까? 나는 성취와 폭주를 원했다, 내 일이든 남의 일이든. 진급이나 높은 연봉 같은 것과 무관한 것이다. 내적 성취감과 폭주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쾌감을 하루 9시간 낮에 느끼고 싶다. 자제할 필요 없이, 남들과 발 맞출 필요 없이. 회사생활에는 이런 것에까지 나를 통제해야하는 거추장스러움이 있다. 나는 아직 그 거추장스러움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알지 못한다.


폭주하고 싶다, 일에서든 글쓰기에서든 니팅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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