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어린이
레이먼드 카버 시집, 우리 모두
단편에 대한 애착이 있다. 간결한 정확함이라는 아름다움을 (지나칠 정도로) 추구하곤 했다. 낭비와 군더더기를 걷어내고도 아름다운 것을 여전히 사랑한다(낭비와 군더더기를 걷어낼 수 없을 때 아직도 분노한다). 안톤 체호프를 읽으며 단편이라는 형식의 원형이라고 감탄했고 헤밍웨이 단편집 ‘킬리만자로의 눈’을 아낀다. 특히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은 훌륭한 문장들로 시공간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명작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 중에서는 ‘깃털들’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김연수 작가가 소개했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그 4월 이동진 작가의 낭독으로도 남아있다.
군더더기 없기로 문학의 끝판왕은 시일텐데, 시를 이해하는 행운은 아직 누려본 적이 없다. 그래도 카버가 쓴 시라면 일 센티라도 친숙할 것 같았다. 카버의 단편을 읽었고 그의 삶을 아니까.
그리고 표지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뻔하고 상업적이고 단순하지만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지개 색 스케치.
처음 몇 편을 읽었는데 찰스 부코스키 생각이 난다. 작가로 밥벌이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방탕한 삶으로 벌을 준 사내 찰스 부코스키 말이다. 술과 여자와 경마로서 맘같지 않은 삶에 적극적으로 적대감과 분노를 표출한 부코스키에게서 여자와 경마, 기운과 적극성을 제거한 버전이랄까. 좀 더 소극적인 자기파괴랄까.
확실히 친근하다. 식탁에서 강렬한 파란색으로 나를 부르고 있다.
황인찬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
황인찬이라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고, 그 흥미는 ‘희지의 세계’로 이어졌다.
황인찬 시는 무광의 백자 같았다. 이 백자는 먼지 한톨 없는 넓고 높은 전시실 가운데 혼자 놓여있고 유리 보호막으로 관객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참으로 평온하고 고요하다. 힐링이니 뭐니 하는 고요와 평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우 정적이고 상대의 마음을 흔들지 않는 그런 평온과 고요함이었다. 이 신선한 감각이 좋았다. 쿨하고 힙했다. 너무 쿨하고 힙해서 경계하고 거리를 두었지만 시가 이런 것이라면 읽을 맛이 날 것 같았다. 마침 시가 필요한 이때, 이런 황인찬의 새 시집이라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읽을 수 있었고 여전히 흥미로운 시들이 가득하다. 다만 이전과 다른 어떤 감정이 더해져 있는데,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아직 생각 중이다. 시는 한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0으로 돌아오는데, 사실 시작할 때와 같은 곳이 아닌, 진짜로는 0이 아닌 시들이 엮여 있었다. 전작처럼 언어적인 낭비가 없는 완벽한 시어를 읽을 수 있지만, 전작과 같은 고요와 평온은 없다. 완전한 심란함이 고요와 평온을 대체했다. 전과 다른 의미로 흥미로우며 읽을 맛이 난다.
잔니 로다리 동화, 할아버지의 뒤죽박죽 이야기
이야기와 그림이 필요한데 많이 읽을 수 없는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나는 동화책에 무척 의지하고 있다. 진지한 동화 독자로 거듭나고자 좋아하는 작가를 탐색하는 과정에 진입한 참이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그림이 마음에 들어 두 권을 주문했는데, 뜻밖에 잔니 로다리라는 작가를 발견하게 됐다. 동화책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빨간 모자 이야기를 (일부러) 엉망진창으로 하는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것으로서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야기 해달라고 조르는 손녀 없이 조용히 신문을 읽고 싶은 할아버지의 의도가 엉망진창 빨간 모자를 액자처럼 두르고 있다. 짧고 별거 아닌 이야기 같은데 이 작가, 어딘지 촌철살인인데다 급진적인 냄새가 난다. 그래서 다음 책은 그의 단편 모음집, ‘아이스크림 궁전’이다. 이야기로서 이렇게 기대하게 하는 작가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내일, 새 책을 만날 기대감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알레마냐의 다른 동화책 ‘숲에서 보낸 마법 같은 하루’의 그림은 싫지 않았다. 표지의 주황색 후드 점퍼 입은 주인공 소년을 볼 때마다 감자가 떠올라서 오히려 좋다. 동그란 안경에 머리만 짧으면 다 나 같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자, 그건 사실이잖아? 그에 비해 글은 약하다. 아이의 시점으로 쓰여있지만, 내게는 삼십대 여성의 글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생각하는(어쩌면 바라는) 아이의 마음이라고나 할까(진짜 아이가 쓴거면 어쩐다..). 그때문에 작위적이라고 느껴졌고 이야기로서의 힘과 매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소피 달 동화, 마담 바두비다
미스터리한 여자 어른과 남 관찰하기 좋아하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일 것 같다. 어른의 미스터리함과 어린이의 호기심이 좋은 화학작용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이길 기대한다.
그래, 모든 어린이 책이 메리 포핀스 같을 수는 없겠지. 어린이의 마음과 어른의 마음, 어른의 정의로움과 어리석음, 좋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기괴한 캐릭터, 사회의 어두운 면을 두루 갖춘 책이 그렇게 흔할 리 없다. 메리 포핀스가 필요할 땐 메리 포핀스를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