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안함

by 만정

그게 그러니까 2004년 봄이었을 것이다. 우리 동아리에 그 공연 컨택이 온 것은. 독립문 야외에서 열릴 행사를 위해 대규모 연주자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오케스트라는 아마 연대 학생들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기억이 안난다는 뜻이다). 합창단도 서너 개는 모였을 것 같은데, 우리도 그 중 하나였다. 아마추어지만 정기공연이면 사오십명은 무대에 세웠던 우리 합창단에 연락이 온 걸 보면 꽤 큰 공연이었을텐데, 제안은 누가 받은건지, 공연은 무슨 의도로 기획된 거였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낱 대학 동아리라고 해도 사십 년 가까이 존재하다보면 나름의 견고한 구조를 가지기도 한다. 가을 정기공연이 단체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지만, 봄에는 신입생 연주회를 치르고 여름엔 하조대로 3박 4일 대규모 엠티를, 겨울엔 소소한 1박짜리 엠티를 갔다. 봄부터 정기공연까지 매주 두 번 정기 연습이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일년짜리 정기 일과를 갖고 있던 조직에 일회성 이벤트가 발생한 것이다.


정확히는 몰라도 봄이니까 신입생 음악회를 준비할 때였지 않나 싶다. 이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를 놓고 임원기를 맡았던 내 동기들이 회의를 했을텐데, 역시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수락 과정에 대한 한 가지 에피소드만이 영원히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게 뭐냐하면,


부단장은 정기 행사만으로도 일이 적지 않은데, 이 이벤트는 거절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한다. 그러자 나는 아니 거 뭐 얼마나 큰일이라고 그걸 거절하냐며 그렇게 일하기 싫으냐고 툭 내뱉었던 것이다. 내가, 바로 나란 작자가 말이다. 공격적일 의도가 없었다는 게 뼈저릴 정도로 가볍고 생각없는 말이었다. 그냥 난 하고 싶다고 하면 될 걸. 내가 그녀였다면 내 멱살을 잡았으리라.


그러나 부단장은 내 멱살을 잡는 대신, 며칠 뒤 나를 따로 만나, 자신은 다만 모두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의견을 냈던 것이라고 말했다(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내 말이 부당했다고 자기의 분노와 억울함을 말로써 내게 전한 것이다.


나는 별 대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단장은 그후 나와 말을 섞지 않는다. 일년 간 그럭저럭 친구였던 우리 관계는 그렇게 영영 끝난다.


결과적으로 이 공연은 나를 무척 즐겁게 했다. 연대 무슨 강당에 모여서 (전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맞춰 연습을 두어번 하는 경험이 좋았고, 덕분에 영화 매트릭스 주제가를 불렀다(가사는 힌두어였을까?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선곡도 요상, 아니 야심찼던 것 같다). 그 공연 끝에 감자에게 처음 했던 데이트 신청은 내가 태어나 제일 잘한 일 열손가락에 꼽힌다. 그러나 이 모든 건 결과이자 독립적인 사건. 부단장을 날카롭게 찔렀던 내 말은 사라지지도 교정되지도 않는다.


부단장이 내게 한 항의를 듣고, 그럴 법하다고 나 스스로도 납득했다. 조금 더 지나서부터는 내가 경솔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그에게 전한 적이 없다. 그게 가끔 후회된다. 미안하다고 말할걸. 후회는 장미 가시처럼 불현듯 나를 찌른다.


그 일이 요즘 자주 생각난다. 여기에라도 몇 자 고백하면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덜어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평생 내 전두엽에 껌딱지처럼 붙어있겠지. 구체적인 말과 상황은 휘발되어도 이 부끄러움과 미안함만은. 화창한 날, 우리 부단장 생각을 한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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