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의 내가
공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활동함으로써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보면 좋을 것 같다. 노동자 권익이나 언론의 자유와 공정성 증진을 집단의 목적으로 하는 시민단체 또는 환경문제를 개선해 다음세대와 지구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환경단체에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다.
십일년이면 족하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본의 아니게 돈도 벌었고 유능하다는 사람 구경도 했다. 할만큼 했다.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경제적 가치만을 위해 일하기가 끝내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사회적 가치와 정의를 지향하는 인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와 지향이 비슷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해보고 싶다. 나는 이제 공적인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사적 욕망을 충족하게 될 것이다. 충만해질 것이다.
그렇게 나와 비슷한 욕망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고 싶다. 돈이나 사회적 성공 외에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집단에서 마침내 소속감과 동질감을 한껏 느껴보고 싶다. 글쓰고 여행 다니며 혼자 한량으로 사는 타고난 기질에 느슨한 소속감이 건강한 균형을 부여할 것이다. 이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기는 처음이다.
이쯤되니 항상 부정하던 경제활동도 기꺼워진다. 의욕이 솟아나기까지 하는 것 같다. 게다가 혼자 살고 씀씀이 조절이 어렵지 않으니 이제 벌이가 좀 줄어도 된다. 그럼 오래 사는 게 걱정이 아닌 온전한 축복으로 전화한다. 희망연봉을 기꺼이 하향조정할 것이다. 회사 안팍에서 내 몸과 마음을 쉽사리 놔주지 않는 노동 시간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면 말이다. 그토록 원하던 시간적 자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당한 경제활동과 보조를 맞추면서 실현 가능하다면 기꺼이 타협하겠다.
공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활동함으로써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지어낸 가장 흡족하고 완성도 높으며 밀도 있는 문장이다. 올 여름을 사무실에서 나고 초겨울에 이탈리아를 누비고 소복한 겨울방학을 보낸 다음의 봄에, 사십의 봄에 마침내 나와 사회가 화해를 이루는 마스터플랜이다. 내적 갈등과 소외로부터 해방하는 마법의 문장 말이다. 저 문장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성장한 느낌이다. 아주 오랜만에 나에 대한 감각을 되찾은 것 같은 편안함과 안도감이 밀려든다. 적잖이 설렌다.
나, 좀 더 멋지고 즐겁고 의미있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사십이 되면. 마침내, 마침내 다시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