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니콘, 당신께

feat. 까데호x넉살

by 만정

감자는 넉살의 새 앨범을 보낸다고 했다. 분명 ‘넉살’이라고 했다. 나는 랩과 힙합에 선호가 없지만 감자가 좋아하는 음악가라면 문제가 다르다. 한국의 젊은 음악가와 신보를 꾸준히 따라잡는 감자 덕분에 알게 된 한국의 (인디) 밴드도 많았다. 장기하와 얼굴들(신인 시절이 당연히 있었고 우린 동시대인이다), 브로콜리 너마저, 가을방학…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내 취향과 지식에 그녀가 미친 영향이 크다. 서울전자음악단도 감자가 사준 씨디를 통해 좋아하게 되었다. 감자가 권해주는 밴드와 음반과 음악에 나는 늘 진지하게 임해왔다. 그녀가 권하고 우리가 함께한 맛집, 책, 사람 등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와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내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사람 중 하나(왼손과 오른손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슬픈 랭크다. 나는 까다로우니까)니까.


감자는 분명 넉살 이라고 했다. 물론 ‘까데호’라는 밴드명을 댔어도 모르긴 매한가지였겠지만. 넉살x까데호의 신보 ‘당신께’를 매우 주의 깊게 들은 나는 감자에게 다음과 같은 감사 인사를 전하게 된다.


좋네요 밴드 사운드가 무척 마음에 듭니다 뭔가 익숙한 장르나 밴드를 연상시키는데 아직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아련하게 번지는 기타가 아름답습니다 특히 인생이 시가 아니라면 거짓말이야에서요 이 곡이 오늘의 베스트 트랙입니다


지난 토요일, ‘당신께’ 서울 첫 공연을 나와 함께 보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한 감자(aka 뛰어난 독해력의 소유자)는 역시 내 감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인생이 시가 아니라면 거짓말이야’에는 넉살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놀랍게도 감자는 놀라지도 않은 듯 했다. 나는 까데호라는 한국의 밴드를 알게 되어 기뻤다. 감자와 함께 그들의 연주를 공연장에서 듣게 되어 뛸 듯이 기뻤다.


내 생각에는 두 뮤지션의 모든 발매곡을 공연장에서 들은 것 같다. 알던 곡은 아니지만 처음이라서 낯설거나 생경한 기분은 없었다. ‘정통’힙합 마저도 밴드 사운드 위에서 노래되자, 친숙하게 들렸다(정통 힙합 팬에게는 실례일까?). 공연장의 사운드 엔지니어링이 완벽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지. 사회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기타리스트와 드러머가 관객 앞에서 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보이는 게 좋았다. 이거 뭐, 한국에서 연주 위주의 밴드 활동을 지속한다는 게 생활인으로서 가혹할 게 안 봐도 뻔한데, 하나의 밴드를 이뤄서 삼인사각 달리기 같은 연주 활동을 하면서 저렇게 행복해보인다면 다 된거다, 라는 혼자만의 감상에 빠져 마음이 짠했다. 저렇게 세 사람이 오래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잠시 품었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그건 인간 수명처럼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나는 배철수 아저씨가 장수하는 밴드들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한다. 인간이 모여 함께 한다는 게, 오래 함께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구심점이 음악이라 해도. 아니, 어쩌면 음악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렇게 밴드에 이미 호감을 품게 된 나로서는, 공연 초반 넉살 등장 전 까데호의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앞 사람들이 뻗뻗하게 서 있는 게 의아했다. 저들은 이 리듬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어떻게 엉덩이를 흔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스탠딩 공연은 처음이라 뭘 모르는걸까? 관객 대부분이 넉살의 팬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공연이 끝나고 감자한테 말할 때나 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 감자는 당일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 나의 신데렐라. 집에 도착하면 12시가 훌쩍 넘을텐데. 택시가 호박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마는. 그래도 이렇게 그녀를 볼 수 있는 다섯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그래 그렇지만 내가 이미 이 말까지 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감자). 그렇게 그녀가 가고 나면 우리가 만난 게 실재한 사건이긴 한건지 의심할 때도 있다. 아, 그대는 정녕 나의 유니콘인가요(같은 얘기 반복해서 미안해, 감자.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할거야).


한편, 유니콘이 다녀간 이후, 심드렁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는 내 머릿 속에 다음 가사가 끝없이 메아리치고 있다.


난 아무 두려움 없이
난 아무 상관도 없이


앨범과 동명의 곡, ‘당신께’ 후렴이다. 가사 맥락과 상관 없이 요즘 평일 나인 투 식스를 대하는 내 태도가 저러하다. 그러자 마냥 신나고 유쾌한 것만 같던 노래가 좀 달리 들린다. 아무 상관이 없으면 두려울 게 없구나. 그건 자유롭지만 또한 헛헛한 것이로구나. 이렇게 달리고 날아서 추석 쯤 나는 어디까지 가있을까? 처음 겪는 이 기분이 조금 낯설다. 그건 그렇고,


나의 유니콘, 나의 신데렐라. 언제든 환영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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