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바흐 프랑스 모음곡 4번 알레망드

벅차오르는 감동

by 만정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이 좋은 음악은 뭐지?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낯익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4번 첫 곡 알레망드 French Suite No. 4 E flat major, 1 Allemande다.


블랑딘 라누Blandine Rannou의 하프시코드 녹음(2001) CD2 의 첫 트랙이다. 처음 이 음반을 재생할 때 CD1 의 첫 곡 5번이 너무 훌륭한 나머지 앨범 전체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앨범 프로듀싱이 좋다고나 할까. 첫 트랙 두 개로 청자를 설득했으니 말이다. 한편, 유튜브 뮤직에서 이 앨범을 재생시키면 4번은 완전히 가운데 토막이다. 두개 씨디가 합본된 형태처럼. 그러니 딱 틀면 무조건 4번 알레망드가 흘러나오는 씨디와는 상황이 다르다.


출근길이었을까? 점심시간이었을까? 무신경과 정신사나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내면에 몰두한 나를 세계로 이끌어 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멜로디였다. 나는 빛에 이끌리는 나방처럼 음악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꼭 틀린 말은 아니다. 앞에 두 곡의 마이너를 지나왔을테니까). 음악에 집중할수록 마음 속에서 뭔가가 벅차올랐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충만함일까? 그러기엔 다소 놀라움이 있는데. 감사함일까? 그러기엔 기쁨이 좀 많은데. 생각보다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적확한 감정상태를 알아내기 어려웠다. ‘감동’은 지금까지 생각해낸 가장 그럴듯한 후보다.


그러고보니 그 감동이 가만히 있는 건 아니고 좀 벅차오른다. 아마도 음악이 시작되기 직전 벌어졌을 어떤 일로 인해 갑작스럽게 다가온 감동이 얼마간 차츰 커지다가 확 기쁘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사는 게 다 감사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참 고운 감정인 것 같다. 고등생물로서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매우 인간적인 감정, 긍정적으로 고양된 순간에 닿을 수 있는 희귀한 감정 말이다. 나는 지금껏 몇 번이나 이런 기분을 느껴봤을까? 대개는 사소해보이는 일들에 기인할테고 눈앞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법 하다. 구체적인 기억은 안나지만 아련한 느낌이 든다. 음악만으로 삶의 가장 긍정적인 감정 중 하나가 되살아나다니. 멋지지 아니한가.


좋은 줄은 알았지만 재발견한 곡, 바흐 프랑스 모음곡 4번의 알레망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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