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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ul 03. 2022

#40 안네로제 슈미트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소나타 7번

유니콘 같은 음반이 있다. 분명 들었는데 (내 수완으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음반 말이다. 녹음이라는 기술이 생기고 LP와 카세트 테잎, CD 라는 물질에 실린 음악이 본격적으로 유통된 지 어림잡아 백년이 지난 오늘, 레코딩은 슬금슬금 비물질(물론 IT도 결국 피지컬한 공간을 점유한다. 데이터가 저장되는 DB와 데이터를 처리하는 장치인 서버는 엄연한 장치로서 공간을 점하며, 냉각을 요하는 이 장치들은 환경 오염에도 기여하는 물리적 실재다)로 형태를 바꾸는 듯 하다. 그덕분에 더 많은 음원을 접하는 혜택을 누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LP와 CD가 갖춰져 발매되는 20세기적인 전통을 나는 사랑한다. 그래도 클래식은 이 물성이 다른 장르보다 오래 힘을 쓰는 것 같긴 하나,


명반이라고 해서 절판  반드시 재발매 되라는 법은 없는  같다. 어떤 음반은 운좋게 음원을 접했으되(, 부정할 도리 없는 IT 축복이여!) 서지조차 찾을  없는 경우도 있다(물론  수완이 변수이겠지만서도).  레코딩이  예다.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7번은 오직 3악장, 안네로제 슈미트Annerose Schmidt 의 이 연주만을 들어왔다. 음원도 오직 한 블로그에서만 찾을 수 있어서, 알게 된 이후로는 늘 그곳에서 이 연주만 듣는다(그럴 수 밖에 없다).


나는 연주 자체와 더불어 블로그 글에 상당히 설득되었다. 정확한 리듬과 터치가 중요하며, 피아노를 부술 듯한 (남성적인) 힘이 이 정확함보다 중요하진 않을 거라는 데 동의한다. 안네로제 슈미트는 빠르지만 무너지지 않으면서 강약조절을 이어나가므로 곡 전체에 거쳐 긴장감이 멋지게 유지된다. 솔직히 모든 마디를 귀기울이게 만드는 교활한(좋은 의미로) 연주라고 늘 감탄한다(그렇다고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느낌이 드는 건 전혀 아니다. 그건 연주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소이지 않은가). 3분여 동안 쾌감이 넘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조화롭지만은 않은 전개(화성이든 리듬이든)가 추상적인 느낌을 부여할텐데, 이 정도의 근대성은 나를 매료시킨다.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딘지 익숙하고 무엇보다 흥미롭다(브리튼처럼).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번번이 나를 다시 이 곡으로 이끄는 면도 없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꾸 들여다보게 한다. 물론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만.


다만, 내가  곡에서 느끼는 유머에는 의아함과 의혹이 깃들어 있다.  곡이 전쟁 3부작으로 불리는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6-8  하나라고 하는데,유머라니. 블랙 유머라고 해야 하나? 유머라기보다닌 아이러니가 만들어내는 헛웃음 혹은 우스꽝스러움일까? 그도 아니라면, 수용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문화/역사적으로) 잃어버린 무언가 혹은 오해가 있는 걸까? 앞의  악장을 듣지 못해서 맥락이 손실된 걸까?   악장과의 연결성을 블로그에서는 강조하고 있는데,  음원에 접근할  없어 궁금증은 증폭된다. , 나의 유니콘이여.


내가  연주의 물성에 집착하는 것은 그러나, 무엇보다 앨범 자켓 때문이다. 나는 자켓사진의 50년대 머리 스타일에 사족을 못쓴다. 요즘 일부 여성 연주자들과 달리 몸을 드러내지 않는 데다, 드레스도 아닌  같은  블라우스 차림. 어딘가  곳을 응시하는 혹은 멍하니 초점을 잃은 듯한 시선 처리. 오른쪽으로 갸우뚱 기울어진 머리통. 손에 들린  종이 악보. 연주자의 밝은 톤은 검은  안에서 순수함과 신비로움을 발한다. 느낌으로 말하자면,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권태로워 보인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음악에서는 권태의 흔적을 찾을  없다. 클래식 앨범의 자켓으로서 매우 이례적인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구도를 포함한 사진  연출 전부 말이다. 음악 만큼이나 모던하고 예사롭지 않은 자켓 사진이다. 그런 자켓 속에 담긴 안네로제 슈미트의 이미지에 나는 사실  오랫동안 강박적으로 사로잡혀 있다. 나를 음악으로 이끈 초기의 동기는 자켓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제 이 자켓 이미지를 보면서 그녀가 연주하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7번 3악장을 들어보자. 간교하게 섬세한 리듬과 강약조절, 정확한 터치가 기이한 유머와 아름다움을 풍기지 않는가. 그렇게 듣고 나면 테니스라도 한판 뛴 것처럼 상쾌하고 가벼워진다. 전 악장을 이어서 들을 수 있다면 더 좋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악장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지리한 폭염의 날들을 산뜻하게 보내기에.



https://m.blog.naver.com/jazzycharly/150184567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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