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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Aug 10. 2022

#41 바흐가 추상적으로 연주될 때

이자벨 파우스트가 연주하는 바흐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이토록 명석한 연주를 어째서 나는 즐겨듣지 못하는 걸까?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Isabelle Faust에 대한 내 오래된 질문이다. 이자벨 파우스트는 연주 뿐 아니라 연주행위에 대해서도 지적인 면이 있다. 무대 위에서 어깨와 가슴을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지 않는 드문 여성 연주자인데, 이는 의도적인 선택이다. 여성성의 상품화를 반대하는 의도는 나에게 부합한다(여담이지만, 그의 연주복은 자주 아름답다. 아름답기 위해 우리는 옷을 입기도 하니까. 슈만 사이클 중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 자켓 사진 착장은 핑크 기피자인 나를 설득하는 몇 안되는 핑크다). 그는 내게 짧은 숏컷을 하고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여성스러울 수 있다는 증거다.


그녀의 그룹 활동도 사랑한다.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와 짝을 이루어 앨범을 내고 있고, 나의 겸손한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까지 뭉친 트리오 작업에 나는 늘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데, 그런데 결정적으로 파우스트 음악을 자주 찾지 않는 것이다.


어제 명연주 명음반에서 파우스트의 바흐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BWV1002  듣다 가설이 하나 떠올랐다.


고도의 추상성


파우스트의 (특히) 바흐처럼 미니멀한 바이올린 연주가 있던가? 내가 아는 선에선 없다. 구체성을 이렇게까지 소거한 추상적인 구조물로서 바흐 음악이 있던가? 내가 아는 선에서는 없다. 디테일보다는 구조, 점이나 면보다는 선에 가까운 추상이다. 바로크 음악이 추상적으로 연주될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피아노로는 글렌 굴드가 생각난다), 그 추상성을 이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린 연주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스타일적으로 완벽하다. 구체와 추상의 스펙트럼 상에서 추상의 끝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매끈하다. 그래서 단호하게 들린다. 파우스트의 연주에서 한눈에 의미(감정이든 사건이든)를 찾기는 어렵다.


나는 이 스타일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존중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아마 너무 시크한 것 같다. 어떤 현대음악보다도 추상적인 청각적 경험이 주는 생경함. 이것이 지금, 그녀에 대한 내 가설이다.


그렇다고해서, 이자벨 파우스트를 듣는 노력을 멈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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