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예약

by 만정

숙소는 이번에도 에어비앤비로 결정한다. 비슷한 가격에 넓은 공간을 이용하는 장점이 호텔 프론트의 안온함을 이긴다.


숙소는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투어를 열심히 해도 내 숙소 이용시간은 적지 않다. 아니, 투어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늘어난다. 게다가 너댓 시면 해가 질 겨울 유럽에서 나이트라이프에 관심 없는 내가 숙소에 머물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숙소 가격을 아끼려다 불결함을 마주하면 심리적 비용을 몇 배나 치르는 사람이다. 엄마가 함께 할 땐 인당 비용이 줄어든다는 기적의 논리를 적용, 숙소비에 지나치게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장 먼저 로마 숙소가 정해졌다. 지난 여행부터 노리던 판테온 근처 숙소는 6개월 후 겨울 예약도 만만찮았다. 이로써 베네치아-로마-나폴리까지 여정은 확정이다. 효율적인 이동(베네치아-피렌체-로마-나폴리-시칠리아-밀라노)을 포기하고 숙소를 선택한 셈이다. 그래도 이 숙소를 예약할 수 있어 기뻤다. 판테온뿐 아니라 궁극의 카페, 까페 산 에우스타키오까지 도보로 5분 거리! 이번에야말로 하루 세 번 산 에우스타키오의 커피를 마시겠다! 뿐만 아니라, 명실상부 관광객을 위한 로마(포폴로 광장에서 콜로세움, 테베레부터 테르미니역을 아우르는 지역) 중심에서 매일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첫 로마 여행 때는 골목을 나서면 포로 로마노가 보이는 에어비앤비에 묵었다. 9일 간 숙소에 출입하는 모든 순간 놀라움, 신기함, 행복감을 실컷 만끽했다. 그 지역에는 지금도 아쉬움이 없다. 판테온에 대해서도 같은 만족감을 충전할 생각이다.


베네치아의 경우, 지난번 묵었던 숙소에서 한번 더 지내고 싶었다. 산 폴로 지역 꼭대기 층이었다. 둘이 묵기엔 너무 크고 과한만큼 비쌌지만 깨끗하고 편안했다. 안방 창문 너머로 작은 캄포 같은 게 보였다. 사람 살기도 부족한 땅에 나무는 어쩜 이렇게 많이 심었담? 나무 덕인지 새벽에 크고 아름다운 새소리에 눈을 떴다. 지구상 가장 비현실적인 땅에서 하는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침실 책꽂이에서 짐멜과 존 르 카레를 발견하는 우연이 숙소를 더 특별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기다렸지만 예약불가였다. 이탈리아의 악명 높은 코로나 시기 끝이라 걱정이 된다. 마리아와 마르코 남매는 무사하겠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여차저차 고른 건물은 아카데미아 미술관 근처. 어차피 역 앞이나 산 마르코 지역에 큰 흥미가 없는 내게는 더 적절한 위치다. 역에선 멀지만 바포레토 정류장에서 가깝다니 우선 합격. 이 호스트는 한 건물 세 개 층을 모두 숙소로 내놓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싼 1층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아쿠아 알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3층을 예약했다. 무기력할 일회용 고무장화를 신고 도보에 깔린 나무다리를 밟으며 물에 잠긴 색다른 베네치아를 보고 싶다. 계획한다고 될 일이 아닌 줄 알지만 이번 여행 계획에도 포함했다. 2019년 한국 뉴스에도 보도되던 기록적인 아쿠아 알타를 생각하면 가능할 일이었다. 이런 ’행운’이 찾아올 경우, (지금 보니 바보 같은 이유지만) 1층은 잠길 것 같았다(1층이 우리의 2층이라는 걸 잊었던 것이다). 물론 사진으로 공간의 크기를 전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1, 2층은 둘이 있기에 너무 좁아 보였다. 아마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여행이 끝난 지금 돌이켜보니, 사진 속 1층 침대보가 3층처럼 흰색이었대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의문이다.


가본 적 없는 도시의 숙소를 고를 때에는 대답할 물음표가 많아진다. 도시의 규모와 도보의 상태(주변 풍광과 치안)를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부에 가더라도 나폴리에 숙소를 잡지 말라는 조언은 흔했다. 나폴리에서 1시간 넘게 사철을 타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남부여행 거점은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소렌토로 일찌감치 정했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고를 때에는 관대한 가격 상한선을 두고 평점 4.9 이상인 집을 우선적으로 본다. 같은 평점이라도 후기가 많은 쪽을 신뢰한다. 항목별 평점에서는 청결도 5가 아니면 무조건 거른다. 그러고도 게스트 후기에 “깨끗하다”는 평이 반드시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청결함에 설득되었다면 집의 느낌을 본다. 취향이 있는 집인지(이케아 가구가 너무 많지 않은지, 공간을 채우기 위해 아무 가구나 놓은 건 아닌지), 그 취향이 나와 조응하는지 사진을 살핀다.

소렌토에는 휴양지답게 비싸고 고급스럽게 내부를 꾸민 집들이 눈에 띄었다. 한 블록 떨어진 두 개 집으로 후보를 좁혔다. 남부여행 코스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폼페이와 나폴리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될 곳이었다. 아말피까지 둘러본대도 기차와 버스 탑승이 교통편의 전부였다. 여행 책자대로라면 관광용 미니열차로 30분 내에 동네를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이다. 구글 맵에서 보면 기차와 버스 탑승 위치가 가깝다. 이곳에서 한 블록이 대단한 차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유난히 호스트의 친절함을 언급하는 후기가 많은 집에 마음이 기울었다. 소박하지만 따뜻해 보이는 곳이었다.


밀라노 역시 처음 가지만 도시 중심에 묵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2박 3일 동안 할 일을 다 생각해내지도 못한(‘들른다’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는) 여행지다. 별다른 고민 없이 특이한 다락방을 예약했다. 중심가의 북쪽, 스포르체스코 성을 낀 공원 근처였다. 호스트가 어마어마한 음식으로 환대한다는 독특한 후기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눈을 끈 것은 흰색이었다. 흰색으로 꾸며진 집에는 여하간 사족을 못 쓴다.


시칠리아에서는 카타니아의 노토에서 머물 생각이었다. 에트나 화산도 가고 싶고 팔레르모도 가면 좋겠지만 이번에는 노토의 카페 시칠리아가 주제였다. 넷플릭스 ‘셰프스 테이블’에서 본 후 이 카페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진짜 그라니타와 저 유명한 시칠리아의 파티셰리를 맛보고 싶다! 그러므로 노토에 집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렌토보다 더 작을 것 같은 이 ’지진 바로크’ 도시에는 단순하고 느긋한 무드의 숙소,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머니 손길이 느껴지는 정갈한 레이스 베딩이 매력적인 숙소 두 개가 위시리스트에 있었다.


시칠리아 일정을 포기한 건 9월 말이었다. 처음 가는 나폴리, 밀라노 일정을 1박으로 줄일 수 없지만 피렌체는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폴리 출발 시칠리아 카타니아 행 비행 일정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겨울용인지 비행편이 두 개뿐이었다: (소렌토에서부터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이른 아침 비행기와 (광활한 시칠리아에서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기에 부담스러운) 저녁 비행기. 이미 이동이 많은 여정이었다. 까페 시칠리아를 단념하는 데에는 4개월이 걸렸다.


피렌체는 오랜만이라 다시 보고 싶은 게 많았다. 물론 새로 하고 싶은 것도 줄을 서 있었다. 할애한 일정은 2박. 지난번엔 아르노강 북서쪽에 위치한 오니산티 성당 근처에서 지냈는데 생각보다 관광 중심지까지의 거리가 멀었다(그래야 걸어서 15-20분이지만), 혹은 좋은 도보용 경로를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불결했다. 침대에 눕기도 소파에 앉기도 꺼려졌다. 불결한 숙소에서 치러야 하는 비용이란 그런 것이다.

이번엔 두오모, 그리고 까페 질리가 있는 레푸블리카 광장 기준으로 숙소를 검색했다. 피렌체만큼은 역에서부터의 이동경로와 시간, 방법도 신경 쓴다. 좁은 돌길이 사람으로 붐비기 때문이다. 중앙시장 근처와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 부근, 오르산미켈레 근처 숙소가 물망에 올랐다. 노점과 인파로 붐비는 중앙시장 이미지가 떠올라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 부근의 숙소로 결정한다. 다시 보니 이 가격이 이 숙소를 결정했다니.. 가끔 사후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 숙소가 바로 그런 숙소다.


모든 숙소는 일주일에서 하루 전까지 무료 취소가 가능한 곳으로 정했다. 코로나와 전쟁, 그리고 알 수 없는 리스크는 거의 여행 직전까지 마음을 떠돌았다. 항공편은 어쩔 수 없이 거의 대부분 여행 취소 시 매몰비용인데, 숙소까지 부담을 안을 필요는 없다. 같은 이유로, 기차 예약은 최대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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