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번의 여행은 이탈리아 철도 시스템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인상을 남겼다. 놀라운 쾌적함과 끔찍한 연착. 특히 이딸로는 (트랜이탈리아에 비해) 외양과 객실이 깔끔하고 깨끗하다. 아니, 쌔끈하다. 아이폰의 UI가 주는 심미성에 이탈리아식 엣지를 더했달까. 연착에 대한 기억은 그보다 강렬한데, 도착시간이 점차 지연돼 결과적으로 1시간 넘게 기차를 기다린 에피소드가 결정적이었다. 이후의 연착 경험이란 10-20분, 참을만한 것이었고 납득 가능했다. 하지만 첫 여행에서 워낙 긴 시간을 매착 없이 기다린 끝에 형성된 이탈리아 철도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버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기차 이동 구간은 베네치아-파도바 왕복, 베네치아-로마, 로마-나폴리, 나폴리-피렌체, 피렌체-밀라노. 세 번 이상 기차를 타는 건 이번 여행이 처음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추구해온 탓이다.
2015년에는 비엔나에서 8박을 했다. 경유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입국심사하던 사람은 대체 거기서 8일 동안 뭘 하냐며 고개를 저었다. 2018년 로마에서는 9박을 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마지막 날 말했다; “너도 이제 로마인이야. 여기서 열흘이나 보냈잖아.” 2019년에는 억지로 베네치아와 피렌체 일정을 넣었다. 열흘 간 세 개 도시는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서. 로마에 아직도 목마르다. 그러니 (이번에도) 로마에서 나흘. 지난번 당일치기로 일별한 피렌체는 더 진득하게 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번에는) 피렌체에서 나흘.
비행기든 기차든 연착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는 가급적 여유 있게 스케줄을 짜기로 했다. 모든 숙소가 10시 체크아웃 15시 체크인이었으므로 대낮에 이동했다. 해가 진 겨울 도시의 첫인상이 좋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았다.
고대나 중세, 르네상스나 바로크의 외양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곧 과거에 머물러있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 이전엔 잘 감지하지 못했던 점이다. 이탈리아의 온라인 예약 시스템은 대체로 편리하다(해결할 문제가 하나 있었고 불친절한 시스템도 하나 있었지만. 이 경험은 뒤에서). 구매 경험이 있는 IT업계 종사자의 관대한 관점 인지도 모르겠다. 이딸로 예매는 정말 단순하다.
1. 홈페이지에서 출발지, 도착지, 일자를 차례로 입력하고 넣고 검색한다.
2. 기차 스케줄을 보고 출/도착시간을 선택한다.
3. 탑승인원의 성명과 연락처(메일주소)를 입력한다.
4. 결제한다.
5. 메일로 티켓을 수령한다. 검표 시에도 메일로 받은 QR 코드를 보여주면 된다.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은 상시 프로모션이다. 우리나라 기차에 특실과 일반석이 있다면 이딸로에는 클럽, 프리마, 스마트가 있다. 프리마는 우등석처럼 좌석이 한 줄에 세 개, 스마트는 네 개다(클럽은 안 타봤다). 세 개든 네 개든 좌석은 모든 승객들에게 최선을 다한다(편안하다). 각 좌석별로 스케줄 변경 가능성 옵션이 있다. 그렇게 각 기차 스케줄마다 9개의 가격 옵션이 있는데, 프로모션에 따라 프리마가 스마트보다 쌀 때도 있다. 상시 프로모션을 잘 활용하면 싼 값에 기차를 탈 수 있다.
알지만 코로나와 전쟁이 내 여행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납득한 건 10월 초, 여행을 한 달 앞둔 상태였다. 그 사이 파격적인 프로모션은 대부분 끝났다(아주 없지도 않았지만). 시간을 돈으로 정성껏 환산하는 서양인들의 셈법에 나는 완전히 만족한다. 다만 환율 상승은 예기치 못한 것이어서 기차요금을 포함, 여행이 조금 비싸졌다. 개의치는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 이동구간은 베네치아-로마. 편도 네 시간 거리였다. 다음은 나폴리-피렌체, 세 시간 거리. KTX로 서울-부산 가는 것도 버거워하는 내가 이 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물론 횟수가 많은 데다 긴 이동시간이 엄마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지가 더 걱정이었다(엄마는 그만큼 덜 걷는 날이 아니냐며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말은 전적으로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걱정을 줄여보려 이 구간만큼은 프리마로 예약했다. 얼마나 비싸게 샀는지는 잊었지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