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출발 당일 오후 세시 서울 우리집에 도착했다. 고맙게도 동생 가족이 공항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엄마가 집에 도착할 즈음 나는 조카를 하원시키고 동생 내외가 퇴근하길 기다렸다. 다같이 저녁을 먹고 여유있게 공항으로 출발한다.
일곱살 조카는 올해, 고모가 이탈리아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옆 좌석에 앉아 졸기 시작한 그의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와 고모는 곧 13시간 반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베네치아에 갈 거라고, 다음에는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럼 밥을 싸가야 하냐고 묻는 얼굴이 조금 근심스러워 보인다. 밥은 비행기에서 다 준다고 걱정할 거 없다고 말해둔다.
금세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철도를 탈 생각이었는데. 차로 오니 빠르기도 하지만 캐리어 단속에 힘을 덜 써 한결 수월하다. 마음과 시간을 써준 동생 가족이 무척 고맙다.
화요일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인천공항 2터미널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사람이 없었다. 공항 반대편 끝에 위치한 카운터까지 앞질러 뛰어가는 조카가 이곳의 유일한 움직임이며 소리처럼 느껴졌다. 체크인을 도와준 직원분은 운이 좋다고, 나란히 붙은 두 개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다며 안도했다. 대부분 온라인 체크인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지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온라인 체크인이라니. 신문물이다.
집에서 저녁 먹고 오길 잘했다. 공항 식당과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위탁수하물을 맡기고 편의점에서 음료를 하나씩 사서 마시고는 출국장으로 향한다. 배웅해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보안검색대와 출국심사를 조용하고 빠르게 통과했다. 면세점은 문을 닫는 중이었다. 천천히 게이트 쪽으로 이동했다. 고요한 공항은 쾌적했다. 이제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전처럼 긴장되지는 않는다. 엄마와 단둘이 보름을 보낼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은 엄마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낼 귀한 기회다.
엄마와 둘이 가는 자유여행을 모든 딸이 기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엄마가 까다로워서, 툴툴대셔서, 음식 취향이 달라서, 서로 성향이 달라서 라고 들었다. 여행 중 엄마와 싸우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하나다. 우리 엄마는 자녀를 싸움의 상대로 생각지 않는다는 것. 까다로운 쪽도, 툴툴대고 짜증내는 쪽도 나다. 엄마는 여기에 타격을 입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엄마의 모성애와 나에 대한 이해심, 인내심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이 여행이 엄마에게 정말 재미있을까? 내가 신경쓰는 건 이 문제다. 엄마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지난 여행보다 줄었지만 이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엄마의 기대나 동기를 납득할 수 없어서인 것 같다. 엄마가 이탈리아를 이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를 세 번이나 여행지로 택한 것도, 여정과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나다. 이미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눈 주제지만 한 번 더 여쭤본다. “보호자로 가는거야“. 물론 본인에게도 휴가라고, 다니다보면 재미도 있다고 덧붙인다. 내 부담감을 해소하려는 배려일 것이다. 엄마의 배려에 부응해 더는 이것을 문제로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탑승시간이 가까워온다. 게이트 앞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다. 공항에 남은 모든 사람이 여기 있는 것 같다. 장시간 비행을 기다리는 승객들의 모습을 하고서.
엄마처럼 탑승 직후부터 잠들고 싶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끔찍한 비행기 소음 때문에 잠은 커녕 가만 앉아있기도 곤욕이었다. 2시가 넘도록 쌩쌩하게 대화를 나누는 주변 승객에 무신경하기도 어려웠다. 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집에 두고 온 건 이번 여행 최고의 오판이다. 결국 귓구멍을 꼭 막을 수 있는 이어폰을 지급받고 이고르 레빗의 바흐 앨범을 재생한 후에야 마음이 가라앉는다. 좌석은 유난히 좁고 불편하다. 전에도 이렇게까지 좁았던가? 설마, 나이 탓인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엉망진창 구겨진 채 곯아떨어졌다. 이번 여행 최고의 시련이었다. 이륙 후 나온 기내식은 기꺼이 포기했다.
한편, 네덜란드 국적기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승무원이 있었다. 한국인 승객이 많은 노선인걸까? 그의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북구의 나이 지긋한 다른 승무원들에게서는 안정감을 느낀다. 엄마도 이 점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아직도 젊고 예쁜 여자 승무원들이 주로 일하는 우리나라 항공사와 대비되니 말이다.
나는 아직 졸린데 벌써 착륙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