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는 카 레조니코 수상버스 정류장에서 가깝다고 했다. 호스트는 선착장에서 숙소 가는 길을 안내하는 유튜브 동영상 링크를 보내두었다. 공항 수상버스 오렌지 노선이 카 레조니코를 지난다는 말도 있었다. 이 오렌지 라인을 타고 숙소까지 한 번에 갈 계획이었다.
여행에서 계획이 틀어지는 건 일상이다. 공항 선착장에 가보니 30분에 한 대 운영되는 오렌지 라인 수상버스는 방금 출발했다. 기다리는 줄을 봐선 다음 배를 탈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현재시각 12시 10분. 호스트와 만나기로 한 13시에 숙소에 당도하지 못할 건 확실했다. 우선 자판기로 에스프레소 한 잔 뽑아 마시고 체크인 시간을 늦춰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지, 하고 일정을 정리한 순간이었다. 수상버스 직원인듯 한 한 남성이 오더니 어디 가는지 물었다. 카 레조니코에 간다고 했더니, “오렌지 라인 타려면 50분 기다려야 돼. 지금 출발할 배가 있거든? 그거 타고 ‘자테레’에서 내려서 10분만 걸으면 카 레조니코야. 그거 탈래?”. 계획에 없던 일이다. 자테레라는 정류장에서 숙소까지 걸어갈 길은 모른다. 베네치아는 길을 잃기 쉬운 동네다. 구글 맵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특별한 장소다(적어도 3년 전엔 그랬다). 심지어 구글 맵을 쓸 수도 없다. 이곳 통신사에 가입(계획이다. 늘 이렇게 처리했다)하기 전까지는. 초행길에 10분이 20분이 될지 어찌 알 일인가?
이 모든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인데, 이 정도 돌발상황에는 대처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허풍)이 나를 떠민 것이다. 엄마도 거들긴 했다. “이 배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먼저 오는 배타고 근처 다른 정류장에 내리라는데?” 라는 설명을 들은 엄마는 그럼 가자며 앞장 섰다.
얼렁뚱땅 수상버스에 탑승한 후 시간표를 보니, 이 배를 타고 자테레에 도착할 시간이 50분 후에 올 오렌지 라인을 타고 카 레조니코에 도착하는 시간보다 늦다! 오만 정류장을 다 거치는 배인 것이다. 환장하겄네.
나는 혼란에 빠졌다. 엄마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지만 먼저 오는 배를 타고 가보자는 의견이다. 쳇. 길찾는 건 어차피 내 역할인데. 일단 와이파이가 될 때 호스트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급하다. 뭘 타든 늦는 건 확실하니까. “나 12시 반 수상버스를 타게 됐어. 미안하지만 약속한 1시에는 도착 못할 거야. 2시 반에 날 만나러 와줘”. 이제 답변을 확인해야 하는데 아뿔싸. 배가 출발한다. 바다 위에서는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았다. 와우. 호스트가 메시지를 읽었는지 확인할 수 없어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는 내게 엄마는 “메시지는 보냈다며? 받았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데, 그냥 마음 편히 가자~”. 백 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왜 저를 이런 상황에 마음 편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으셨나이까(잘못은 다 제작자 탓).
그때 배가 다시 선착장을 향해 되돌아간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그틈에 와이파이가 잡혔다. 호스트는 “괜찮아. 집은 (카 레조니코) 정류장에서 3분 거리니까 금방 올 수 있을거야. 내가 보낸 영상 보고 오면 돼. 난 2시에 기다리고 있을게”. 카 레조니코가 아닌 자테레에 내린다는 메시지를 보낼 시간은 없었다. 이젠 뭐 그냥 가는거다.
라고 했지만, 가는 내내 종이 지도를 붙들고 있었다. 엄마가 “어머, 저건 뭐니?” 하고 물을 때에야 지도(지난 여행 때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준 지도. 들고 오길 잘했다)에 처박고 있던 머리를 들어 밖을 내다봤다. 덕분에 본섬의 동부(“저기 담이 높은 건 뭐지?“ ” 아르세날레 같애. 오래된 조선소 자리라던가”), 남동부(“어머, 저기 큰 나무들이 있네. 멋지다” “저기가 비엔날레 근처 같은데! 우리 저기 갈거야”)와 리도(“와, 엄마! 저기 버스가 다녀! 셔틀이 있는 동네라고는 들었는데, 진짜네”)를 찍고 자테레에 당도했다.
비장하지 말자, 고 생각하면서 비장하게 배에서 내린다. 흔들리는 배와 선착장 사이가 벌어지자 올드 레이디(aka. 우리 엄마)가 내릴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고 관심을 가지는 아저씨들에 마음이 살짝 녹는다. 캐리어를 끌면서 지도를 들고 길찾기에 나선다. (약속에 조금도 늦어서는 안된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융퉁성 없는) 나 때문에 덩달아 긴장한 엄마와 빠르게 전진하길 10여 분. 마침내 숙소 앞 운하를 건넌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 쪽으로 향한다. “만정? 완벽해! 아주 잘 찾아왔어”. 그녀에게 작은 모험에 대해 설명할 집중력은 이미 다 소진했다. 어쨌든 미션 클리어.
호스트는 집 소개, 모기퇴치법, 훌륭한 네이버후드와 맛집, 분리수거, 분리수거, 그리고 분리수거에 대해 경쾌하게 설명하고 떠났다. 좋은 동네정보를 많이 준 것 같은데 정신이 혼미했다. 실컷 웃으면서 얘기를 나눴는데 얼마나 기억할지 모르겠다.
엄마와 각자 아는 정보를 껴맞춘 후, 이제 좀 쉴까 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통신사에 가서 유심부터 갈아끼우고 쉬자는 매우 논리적이고 정확한 일정을 제시했다. 역시, 훌륭하십니다 어머니. 거부할 명목이 없는, 내가 짜고 내가 공유한(강제한) 계획이었다. 잠깐 쉬었다 통신사를 찾아나선다. 종이 지도로 봐선 지난 번 거래한 통신사가 멀지 않다. 에너지가 모자랄 땐 길찾는 더듬이도 성능이 떨어지지만 별 수는 없다. 정신 붙들어매고 나가야지, 다짐한 순간, 이런. 엄마가 챙기지 않았다면 열쇠를 집에 두고 나갈 뻔했다. 체크인 하자마자 호스트에게 전화할 뻔 했네. 그나저나 엄마는 이곳 물정에 왜 이렇게까지 자연스러운 것인지?
숙소에서 머지 않은 곳에서, 지난 여행 첫 끼니를 한 오스테리아가 있는 광장을 만났다. 그때처럼 공 차는 동네 애들이 있는 광장이 반갑다. 베네치아 거주자들의 지역이라더니, 빵집과 음식점들에서 활기가 느껴진다.
기억 속 통신사가 있는 골목에 들어섰는데 이런. 가게가 없다? 분명 구글맵에서도 확인했는데. 혹시나 싶어 다시 지나쳐도 그 가게는 찾을 수가 없다. 잘못 기억하나 싶어 다른 길로도 접근해봤다. 굳이 지난 번 숙소를 찾아가(징그러운 집념이다. 내가 엄마라면 여행 메이트로 나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다) 거기서부터 길을 더듬어 보기도 했지만 허사다. 길바닥에 에너지를 쏟아낸 후에야 이 가게를 포기하고 플랜 비, 보다폰 매장을 찾는다. 점심 브레이크 중이다. 힘들어 눈물이 나지만 여행 첫날 유일한 미션이다. 내일 아침 일찍 파도바에 가야 하므로 반드시 오늘 끝내야 한다. 엄마의 위로를 받으며 집에 돌아와 쉬었다 다시 출동한다.
유심을 바꾸고 싶다고 했더니 직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작업을 한다. 5분도 안되는 업무를 마치는데 그새도 참을 수 없다는 듯 전자담배를 흡입했다. 엄마도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단다. 전화기를 받아들고서야 당혹해 하며 요금제는 뭐냐고 물었다. 권태로운 표정으로, “50G야. 한달동안 유럽에서 다 이용할 수 있어. 요금은 40유로(맞는지 모르겠다)”. 이탈리아 통신사는 좋겠다. 1-2주 여행자들에게 벌어들일 40유로가 얼마나 많을까.
엄마는 물 사러 마트에 들러야 한다고도 일러줬다. 감동적이다. 엄마는 이제 혼자 이탈리아 자유여행도 할 수 있을 거 같애. 더이상 일방적으로 내가 이끄는 여행이 아니었다. 엄마는 이곳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보다 상황파악이 빨랐다. 그러면서도 느긋했다. 몸에 힘이 들어간 나와 달리 자연스러웠다. 연륜인가. 진짜 능숙한 여행자는 엄마인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앞으로 보름 간 반복되고 강화될 것이었다.
마트 근처에 이르렀을 때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한 여성이 얼음처럼 멈춰서 바라보는 곳에는 큰 갈매기가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갈매기가. 여성은 거의 새것 같은 아이스크림을 눈앞에서 도둑맞고 콘만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그녀는 괴씸한 표정으로 갈매기를 바라보았다. 첫날부터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어머님의 가르침대로 슈퍼에서 물, 그리고 내일 아침 마실 우유를 챙긴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양배가 반가워서 아침에 먹겠고마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제 진정한 첫날 마지막 미션, 저녁식사가 남았다. 호스트가 추천한 피자집이다. 자기도 내일 저녁 여기서 친구를 만날거라고 했다. 캄포 맞은편으로 멀지 않다. 마지막 기운을 쥐어짜보자. 예약 좌석이 많았지만 우린 오픈 직후 도착했고 각자 한 판씩 재빨리 주문했다. 음식은 빨리 나왔지만 바닥이 꽤 탔다. 아쉬운대로 엄마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피자로 첫 식사를 마친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먹는 모습을 거의 본 적 없다며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엄마 밥을 먹는 이십년 동안(그리고 사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입짧은 녀석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전투적으로 식사하는 내 모습을 엄마는 앞으로 보름 동안 몇 차례 더 목도하게 된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먹지 않으면 여정을 다 해내기가 힘들다는 걸 나도 이제 깨달은 것이다.
긴 하루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루인지도 모르겠네. 다음날은 아침 8시 기차를 타야 한다. 나와 달리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인 엄마보다 먼저, 저녁 7시 쯤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