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파도바

by 만정

드디어 그날이 밝았다. 스크로베니 예배당 가는 날 말이다. 얼마나 고대했던가. 베네치아에서 파도바까지는 기차로 30분 거리. 8시에 산타루치아 역에서 기차를 탈 것이다.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린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광장을 지난다. 우기의 베네치아라니. 좋다!


이탈리아에 오면 집 주인에게 근처 빵집이나 바를 알아둔다. 한국에서 무얼 먹었든, 이탈리아에서 엄마와 나는 여기 사람들처럼 브리오슈에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로 아침을 해결한다. 집에서 5분 거리, 마르게리타 광장 초입에 빵집을 봐두었다. 전날 저녁에 커피 마시는 사람, 빵 사는 사람, 손님이 줄지어 있었다(여행이 끝나고 알게 되었는데 베네치아에서는 나름 유명한 체인점이라고).

오픈은 7시. 너무 이른 시간 아닌가? 반신반의 하면서 3분 전 7시에 도착했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지금 나온 빵들을 진열하고 있다. 이탈리아에 오면 빵집과 바, 카페가 일찍부터 문여는 모습에 놀란다. 집 창밖으로 보이는 바르나바 광장의 바는 오전 6시 50분이면 실외 좌석을 셋팅하고, 오후 9시 쯤 문을 닫았다. 베네치아에 머물던 나흘 중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나인 투 식스도 간신히 하는데.. 이곳에서 사는 게 너무 퍽퍽한 것 같아 목이 메면서도 그 시간에 누군가는 빵과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거기 어김없이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엄마와 에스프레소 한 잔씩 하고 빵은 갖고 나왔다. 에스프레소 맛이 무척 훌륭하다. 곧장 한잔 더 하고 싶은 그런 맛.

나는 살구 브리오슈, 엄마는 리코타와 토마토, 딜을 얹은 포카치아를 골랐던가? 우리나라와 달리 여기선 살구를 더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 부럽다. 맛은 포카치아가 더 좋았다. 전날 마트에서 사온 배는 달고 맛있다. 엄마처럼 대부분 한국 배를 더 선호한다는 걸 알지만 양배의 무른 식감이 나는 싫지 않다.


11월 10일이다. 기온은 우리나라 이맘때보다 조금 높지만 습하다고 했다. 체감 기온이 낮다고 가정하고 옷을 챙겼다. 가진 것 중 가장 도톰한 스웨터(라고 쓰고 점퍼라고 읽는다)와 부들부들 포근한 스웨터다. 세 장 모두 친절하고 부드러운 알파카 친구들이다.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만 ‘혹시나 해서‘ 빡빡한 면 한장짜리 윈드브레이커를 겉옷으로 챙겼는데… 앞으로 매우 자주 엄마의 얇은 패딩을 내 것처럼 걸치게 된다. 이곳 사람들처럼.


나는 종교가 없고 종교적인 인간도 아니지만 이 나라의 많은 걸작은 성당에 위치한다. 그런 고로 이탈리아에서는 미술관 만큼이나 많은 성당을 찾게 된다. 파도바에 위치한 스크로베니 예배당도 그중 하나다.

파도바의 스크로베니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고리대금업자였다고 한다. 아들 스크로베니는 아버지와 본인의 구원을 위해 예배당을 지어 기부한다. 외관이 소빅한 예배당은 어마어마한 보물을 보유하고 있다. 조토가 그린 내부 벽면 프레스코화다. 르네상스 회화의 선구자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 조토 말이다.

예배당 측면 벽 양쪽에는 마리아와 예수의 일생에 관한 일화 38점(마리아의 탄생, 수태고지부터 유다의 배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등)과 7가지 미덕, 7가지 악덕이 만화 컷처럼 둘러져있다. 최후의 심판은 정면에 자리한다. 여기에는 예배당을 봉헌하는 스크로베니 부자의 모습도 있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이전 시대에 비해)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과 몸짓을 지녔다고 한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천사들의 비통함, 주먹을 쥔 예수의 분노, 사랑 같은 것을 예로 든다. 물론 기술적인 완성도가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실제 인간의 얼굴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르네상스를 예견하는 단서를 찾아내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청금석으로 칠해진 하늘, 아니 천정이었다. 파란색 염료로 사용되던 청금석 혹은 라피스라줄리는 값비싸서 성모의 옷이나 고귀한 신분을 가진 (돈많은) 의뢰자에게나 쓸 수 있었다고 들었다(바티칸이나 우피치 투어를 들으면 누구나 쉽게 알게 되는 사실이다). 온통 그런 청금석으로 칠해진 천장에 사로잡혀 다음 여행에선 여길 가야지, 하고 3년이 흐른 것이다.

여행이 중단된 사이 내 환상과 열망을 달래준 건 릭 스티브스 아저씨였다. 로마와 피렌체가 그리울 때 그러했던 것처럼, 이 천장이 보고 싶을 때마다 릭 스티브스 아저씨의 파도바 스크로베니 채플 편을 다시 봤다. 여행을 할 수 없던 시기 릭 스티브스 아저씨에게 나는 정말 많은 빚을 졌다. 특히 이탈리아에 대한 여행 스승으로서 마음 속으로는 항상 무릎을 꿇고 대하는 분이다.


https://youtu.be/nEvhS9BRtuA

Rick Steves 아저씨의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편

이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예약이라는 관문을 지나야 했다. 개관시간 동안 매 15분마다 한번에 최대 25명까지만 예약이 가능하다. 예약이 만만찮으므로 반드시 일찌감치 해야 한다는 블로그 글을 많이 본 터라 5월부터 티켓 판매 온라인 사이트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했다. 매월 혹은 격월로 1-2달 후까지 예매 가능하게 열어두는 것 같았는데 11월 예매는 좀처럼 열리질 않았다. 무엇보다 2 factor 인증을 해야 예매가 가능한 예매 사이트 정책 때문에 핸드폰으로 인증번호를 받아야 하는데 인증번호가 오질 않았다. 내 번호, 엄마 번호, 남자친구 번호까지 동원했지만 모두 실패. 핸드폰 인증 실패 건으로 두 번이나 문의를 남겼는데 답변도 안왔다(정확히 말하면, 답 메일을 받았는데 이미 예매를 마친 후였던 것 같다).

마침내 11월 예매가 열렸을 때 전화 예매에 도전했다. 긴장됐다. 전화는 감이 멀고 솔직히 잘 안들렸다. 그렇지만 뭐, 예매가 별 거 있나. 날짜, 시간, 인원 확인, 결제하면 끝 아니겠는가. 그런데 전화기 저편 여자분이 뭔가 추가적인 걸 묻는 것 같은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반복해서 말해줬다(나는 문의에 응대하다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자주 매우 쉽게 화를 내곤 했다. ... 반성합니다). 마침내 그녀가 세 번째 설명해줬을 때 이해했다. “아, 그러니까.. 11월 10일에는 내부에서 뭔가 공사를 하는 상태에서 관람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래서 할인된 가격이란 말씀이시네요.” “네, 이런 상황이라도 관람하시겠어요? 아니면 11월 13일 이후에 들를 수 있다면 그때는 정상적으로 관람할 수 있어요” “13일은 안되겠어요. 10일로 할게요” “좋아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13일에는 베네치아를 떠날 것이다. 아쉬운대로 보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한다.

전화 저편의 이탈리아 여성은 정말 인내심이 강했다. 예매 확인증을 보낼 내 이메일 계정을 한자 한자 듣고 정확히 이해해주었고(열 글자가 넘는다), 결제를 위해 카드번호를 불렀을 때엔 첫 번에 오류가 있어 다시 한번 시도 해야 했는데 이 모든 걸 조금도 끓어넘치지 않고 해내준 것이다. 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예매 후 뿌듯함이 넘쳐흘렀다. 1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뿌듯한 건 뿌듯한 건데, 엊그제 전화 요금을 보니, 해외전화요금이 만원도 넘게 나왔다. 꽤 비싼 예약이었다.


30분 전에는 도착하라는 안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여유있게 기차표를 끊었다. 다행히 연착은 없었고 제 시간에 파도바에 도착했다.

작은 역사라도 처음 도착한 곳은 늘 낯설다. 아마 혼자 그렇게 두리번거렸다면 소매치기든 뭐든 쉽게 날 표적으로 삼았을 것이다(물론 나는 이번에도 팩세이프의 가방을 소지하고 있었다. 지퍼에는 2중 잠금 장치가 있고 캔버스 가방 같지만 천 사이에는 철조망이 들어있다. 카드 복제가 불가능한 처리도 되어 있어 함께 하면 안심이 되는 여행 친구다). 구글 맵을 켜 방향을 잡고 걷는다. 이때 쯤 비는 그쳤던가?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제외하면 파도바에 대해 아는 건 파도바 대학 뿐이었다. 역사가 매우 오래된 대학이라는 정도로 말이다. 역을 벗어나 마주한 도시 첫인상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이었다. 역 주변부는 이미 도심을 벗어난걸까?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들도 주변부는 매력 없는 최근 건물로 채워진 경우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한국처럼 고층빌딩이나 유리로 외장한 최신식 건물이 위로 치솟은 건 아니다. 그래도 이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느낌이 낯설다. 역에서 예배당까지 10여 분 도보 거리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보았고 자연자연한 큰 나무들이 늘어선 공원 주변을 지난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 좀 이르긴 하지만 예약을 확인하는데, “9시로 예약 바꿔드릴까요?” 라는 예기치 않은 질문이 들어온다. 대기시간도 줄고 안될 건 뭐람? 좋아요. 티켓을 받아들고 안내해주는 곳으로 향한다. 리셉션이 있는 건물을 나와 다른 건물로 들어가니 이미 먼저 와 사전 자료 영상을 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엄마와 나도 자리를 잡는다. 앞으로 보게 될 것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인솔자로 보이는 영감님이 사람들을 이끈다. 그렇게 기대하던 것을 이제 곧 만나는구나. 떨린다. 떨린다. 떨린…


우와. 공간은 영상으로 짐작한 것보다 훨씬 작게 느껴졌다. 최후의 심판 쪽 공간을 통제하고 비계 위에 작업자들이 있다.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작은 공간이 왠지 더 친밀하고 내밀한 느낌을 준다. 천장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곧 포기한다. 저건.. 카메라에 담아낼 수 없는 색인가보다. 어떤 영상에서 봤던 것보다 온화한 파란색이다. 카메라 속 선명한 파란색으로 내 시각 기억을 갈아치우고 싶지 않다.

사전 세션에서 들은대로 마리아와 예수의 일화를 순서대로 따라가며 엄마와 한칸한칸 확인한다. 릭 스티브스 아저씨가 주신 가르침도 섞어가며 엄마와 각 그림의 주제/제목과 특징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엄마와 그림을 보는 건 정말 재밌는 작업이다. 나는 명성과 설명에 따라 그림을 보는 반면 엄마는 작품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엄마처럼 온전히 그림/조각과 마주해본 적이 거의 없다. 머리로 아는 것을 작품 속에서 찾아내는 쪽이라고나 할까. 반면 엄마는 그것에서 느껴지는 1차적 감각(아름답다/추하다/불쾌하다)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와닿는 대상을 포착한다. 엄마가 인상적이라며 사진 찍은 작품은 알고 보면 유명하고 중요한 경우가 많다(즉, 엄마는 보는 눈이 뛰어나다). 대부분 현장에서 내가 놓친 작품들이다. 내가 ‘알던’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즉, 난 모르면 못 본다). 미술관 밖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엄마와 나의 차이다. 나는 엄마의 감상법을 부러워해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좀더 엄마적인 방식과 시각으로 세계를 보고 싶었다.


15분이 지났음을 알리는 영감님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겨우 예수 일화를 다 읽었을 뿐인데. 최후의 만찬과 미덕 악덕은 재빨리 훑어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다음에 한번 더 와야겠다.


“엄마, 좋았는데, 그림에 대한 느낌보다는 드디어 원하던 걸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크게 남는 것 같애. 다음에 다시 와서 차분하게 그림 한 번 더 봐야겠어.”


이 말을 하며 걷던 길, 예배당과 리셉션이 있는 박물관 건물 사이의 길 옆으로는 크고 높은 나무가 아직 젖어있었다. 비가 가늘게 내렸던가? 가끔 남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장면이 여행 기억으로 오래 남곤 하는데, 이 짧은 길도 그런 기억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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