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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ul 25. 2024

마침내 단골이 된 것 같다

24년 7월 5-7일, 535호

자주 오시잖아요.


체크인 하던 직원 분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할 정도로 당황했다. 이 말이 업계 금기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일년 넘도록 한두 달 간격으로 방문하기 때문에 프론트와 아침 부페식당, 라운지의 거의 모든 직원 분들 얼굴이 내게는 이미 익숙했는데 그분들이라고 그렇지 않을 리 없었다. 때로 서로 눈 인사를 나눌 때 아, 또 오셨군요? 오랜만입니다. 라는 말없는 말도 듣곤 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한 번은 아침 부페에서 커피 머신 세척을 기다리다 돌아서는 나를 본 한 직원 분이 직접 커피를 내려 서빙해주신 적도 있다. 마다했지만 메뉴를 묻는 얼굴에 호의가 느껴져 두 번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주로 생략하는 잔받침까지 갖춰 커피를 대접 받았다. 부페에 해당할 리 없는 호사. 도저히 '서비스'라고 말할 수 없는 종류의, 돈에 상응하는 댓가 이상의 무엇이었다. 친절이었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고 매우 고마웠다.

그러나 가장 특별했던 이 형태에서조차 반가움과 알아챔의 표현은 암묵적이었다. 오직 뉘앙스로서만 전해졌기 때문에 내가 과도하게 혹은 잘못 해석했을 여지도 있다. 이의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는 손님을 아는 척 하지 않는 것이 이 공간의 규칙인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대로의 미묘한 재미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적인 교환 행위와 인간적인 친교가 조심스럽게 뒤섞인 미묘한 사회적 관계에는 신선한 기쁨과 만족감이 깃들어 있었다. 직업적으로 훈련된 게 분명한  '서비스'에는 사려 깊게 고안된 예의 바른 무심함이 베어 있다. 이 서비스 덕분에 투숙객인 나는 소모적인 의사소통으로부터 해방된다. 최소한의 명확한, 그래서 기능적인 의사소통 외의 모든 의사소통으로부터의 해방. 육지에서 끝없이 갈구하게 되지만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욕구는 객실 문 한참 밖에서부터, 그러니까 호텔 전체에서 마침내 충족된다. 나는 감정적으로 거의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 이 간소화되고 효율적인 상호작용 자체에서 이미 기쁨을 느낀다. 서비스라는 재화와 화폐 교환이라는 확실성 아래에서, 프로토콜 처럼 정해진 호텔 직원과 투숙객의 분명해서 뻔한 문장들 아래에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개인적이고 특수하며 불분명한 상호작용은 신비롭게도 여유처럼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엄청나게 큰 실질적인 만족도 있었다. 자주 오는 손님으로 명시되자 프론트에서 객실 사용 안내는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기뻤다. 최적의 여정으로 너댓 시간은 걸리는 길이라 도착할 무렵에는 대개 지쳐서 어서 열쇠만 받고 침대에 뛰어들었으면 싶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객실 사용 규칙을 숙지하고 있다. 객실에 제공되는 매일의 물 한병 외 치약 칫솔 등 미니 바에서 꺼낸 물건에는 추가요금이 부과된다는 것, 객실에서는 금연이고 위반할 경우 벌금을 내야 하며 이에 대한 동의의 의미로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 나는 좋아하는 곳에서 환영받는 투숙객이 되기 위해 사실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중부지방은 장마가 한창이다. 제주공항은 다른 나라처럼 맑았고 동시에 예측 가능한 높은 습도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서귀포로 넘어오자 시야가 매우 짧았고 객실에서도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실 베란다 너머 코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이면 다소 걷힐 안개 때문이었다.

안개가 걷혀도 근처 카페로 가는 해변가 길에는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사라질 작은 게들이 무성할 시기다. 오늘은 놀랄 기분이 아니다. 계획대로 수영복을 입고 호텔 가운을 걸친 채 지하 1층 실내수영장으로 향한다. 수영하는 할머니 한 분과 물놀이를 하는 십대 초반 (추정의) 남매. 다행히 한가한 편이다. 읽을 수도 쓸 수도 볼 수도 없는 견디기 어려운 아침에 수영이 큰 도움을 주었다. 한가한 수영장에서 더는 마음같지 않은 몸을 한참 동안 어색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틀 밤을 다 잤지만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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