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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Aug 30. 2024

네 번째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기억이 흐릿해지는 아쉬움을 네 번째 통과하고 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이탈리아에 있었다는 사실이 평행우주에나 존재하는 일처럼 아득하다. 이만큼 반복하고 나서야 망각과 아쉬움도 여행의 과정임을 납득한다.


28리터 배낭에 7일(과 하루 반나절의 비행)을 짊어지고 두 손이 자유로운 여행을 했다. 혼자서 자유로웠다. 내가 책임질 것은 나와 배낭 뿐이었고, 팩세이프 가방(도난방지용으로 명성이 높다)이 우리를 지켜주었다.

에스프레소를 한 번에 두 잔씩 시키고 내키면 끼니를 거르는 방탕한 여행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티라미수 한 번 안 먹고 볼로냐에서 라구와 라자냐를 먹지 않는 일탈을 저질렀다.

우피치 미술관을 아침 저녁으로 관람하고 산비탈레 성당에 이틀 동안 두 번 들를 정도로 사치스러웠다(산타고스티노 성당도). 가이드 없이 바티칸에 가는 만용도 부렸다.


그새 이탈리아는 놀라울 정도로 카드 결제가 보편화 되었다. 이제 버스 안에는 신용카드 결제기가 펀칭 기계와 마주보고 있다. 버스표 파는 타바키를 찾아 땀 흘리며 다닐 일도, 그렇게 산 버스표를 펀칭할 필요도 없어졌다. 기분이 묘하다. 분명 편해졌는데 뭘 잃어버린 것도 같다. 기차표 뿐 아니라 미술관, 성당 같은 주요 관광지는 온라인으로 안 되는 예매가 없고, 예약한 모든 것은 핸드폰만으로도 입증되기 때문에 종이 한 장 없이 여행했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기차역에서는 'Iced Coffee'를 팔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는 직원에게 진심이냐고,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어서 그녀를 당황케 만들었다(그래놓고 막상 영수증을 내미니 바리스타 아저씨가 타오르는 증오의 눈빛으로 계산대 쪽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8월이라 휴가 중인 음식점이 많았다. 2주씩은 쉬는 것 같다. 오래 전 여행책자가 말해준대로다. 피렌체 올트라르노 지역의 한 피자집 휴가를 확인하려 인스타를 봤더니 누가 봐도 포지타노에서 바캉스 중이다. 아... 나도 남부에(도) 가고 싶다. 휴가 중인 나도 부러워졌다.

올해 로마는 대대적으로 보수 중이다. 나보나 광장의 분수들, 베네치아 광장, 바르베리니 미술관 외관 등 거리 곳곳이 그렇다. 보르게제 미술관은 현재 2층 방 대부분이 보수 중이고 티치아노 역시 볼 수 없다. 피렌체에서는 바르젤로 미술관의 도나텔로 방이 보수 중이라 성 게오르기우스를 보지 못했다(다비드 등 일부작품은 1층 임시 전시실에 옮겨서 여전히 볼 수 있다. 그래도 아.. 게오르기우스... 내 최애 미남...). 그러나 브랑카치 복원은 이제 끝났고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보았다.

그간의 경험으로는 이 나라는 사실 언제나 보수 중 혹은 복원 중이다. 어떤 도시, 어떤 장소, 어떤 그림이나 조각인가는 그렇다. 수백년 수천년 전 유산으로 몇 백년 동안 관광이 성업하는 도시 혹은 나라에서는 조용한 유지보수가 멈추는 법이 없음을 나는 이제 짐작한다. 누군가는 이 나라가 미래를 과거와 바꿨다고, 과거를 위해 미래를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변함없는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끝없는 움직임과 변화의 역동을 나는 (넘겨짚어) 본다. 오래된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뒤에 장치하는 첨단도. 그 역동과 첨단은 생각보다 현재적이고 때로 충분히 미래적이다.


집에 돌아와서 딱 하루 한국이 낯설었다. 동시에 낯선 냄새로 더 이상 피로하지 않아 편안하다는 생각을 열두번 정도 했다. 다섯 번째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면 마침내 그곳 냄새, 그 들척지근한 냄새도 익숙해질까?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아쉬움에 다음 여행을 계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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