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카라바조 세 점을 보았다. 2018년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화가. 이후 로마 여행에서는 그의 그림을 보는 일이 점점 중요해졌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의 마테오 연작과 산타고스티노 성당의 로레토의 성모, 포폴로 성당의 성 베드로 연작. 이 그림들을 실은 하루에도 두 번씩 보려고 리페타 거리를 부지런히 오갔다. 매번은 아니지만 보르게제와 바르베리니, 바티칸과 카피톨리니도 두 번 이상 방문했는데 돌아보니 로마 안에 있는 카라바조를 제법 본 셈이다. 로마에서 아직 보지 못한 카라바조는 아마 도리아 팜필리 정도에 남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피렌체는 우피치가 가진 카라바조가 전부이던가? 그렇다. 이탈리아에 네 번 다녀오는 새 나는 꽤 열성적인 카라바조 팬으로 거듭나 있었다.
내 이탈리아 여행은 (피렌체) 르네상스와 (로마적) 바로크에서 베네치아 르네상스로, 다시 초기 르네상스로 확장해 나갔다. 그 줄기가 이탈리아에 거의 남아있지 않은 비잔틴 예술까지 뻗어나간 사건이 지난 라벤나 방문이었다.
시대와 지역으로 묶인 개별 화가를 거명하기 시작하면 목록은 더 세분화된다. 당연히 카라바조가 전부일 리 없다. 조토를 보러 이미 파도바에 갔었고 아마 조만간 그의 성 프란체스코를 보러 아시시에 가게 될 것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 부활’을 아직 못 봤기 때문에 근교라기에는 너무 먼, 피렌체 근처 산세폴크로 여행을 벼르고 있기도 하다. 미술관이 편리하지만 성당과 예배당에 남아있는 그림을 찾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는 여정이 실망스러운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다음은 늘 그렇게 가능해졌다.
흩어진 그림을 찾아가는 일은 필연적으로 여행이 된다. 미술관에 있더라도 그렇다. 이탈리아에는 프랑스나 영국 화가 작품이 없지만(플랑드르 화가들은 예외다) 이탈리아 화가들 작품은 이탈리아 밖으로 흩어졌다. 카라바조만 해도 런던, 파리는 물론이고 마드리드와 베를린, 비엔나 등에 위치한다. 언젠가 꼭 보고 싶은 다빈치 한 점은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의 책 ‘예술과 풍경’은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일 것이다. 런던이 이 순간 나의 풍경이 된 것은 그런 맥락에서이다. 풍경은 곧 파리로 이어질 것이다. 나의 여정은 이렇게 해서 마침내, 고대하던 카라바조의 ‘엠마오에서의 만찬’에 이르렀다. 그것이 얼마나, 어떻게 환상적인지 말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게이퍼드의 책에서 정말 좋아하는 부분은 실패에 관한 것이다.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얼마나 멀고 비싼 여행을 감행하는지와 상관없이 때로, 아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자주 나는 작품 보기를 실패한다. 그림은 보수 중이거나 대여된다. 심지어 마침 방문하기로 한 날 예배당 에어컨 설치 작업 때문에 벽화 앞에 온통 비계가 설치되기도 한다(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처음 방문한 날이 그랬다).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별 수도 없다. 내 여행이 같은 곳을 거듭 방문하는, 다른 사람들 보기에 의아한 형식을 띠게 된 데에는 이 이유도 한몫한다. 나는 갈 때마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명작이 거기 있어주는 마법을 애초에 믿지 않도록,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대개 나를 만나준다는 경험을 믿도록 하는 여행을 해왔다. 반대도 성립해서, 이번에 본 그림을 다음에 못 보기도 쉽다. 큰 미술관들은 대개 물리적 전시 공간에 비해 훨씬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이번 런던 여행에서 나는 높은 확률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 세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티치아노와 다빈치도. 말하기 뼈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 런던 여행이 하필 내셔널 갤러리 200주년 종료를 기념해 준비 중인 “야심 찬 (대대적) 재배치 ambitious redisplay“, ‘C C Land: The Wonder of Art’ 전시가 시작되는 3월 10일을 며칠 앞두고 끝나기 때문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공사 중인 세인스버리 윙에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될 거라고 하는데 현장을 염탐해 본 바로는 앞으로 열흘 내 끝날 일인가 의심이 든다. 사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3월 11일 하루 당일치기로 파리에서 런던을 다녀가기로 일정을 손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쎄. 이들은 과연 나를 만나줄 것인가? 그날이 오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림을 보러 다닌다는 것은 이런 일인 것이다. 적지 않은 확률로 실패하곤 하는, 나의 계획쯤은 언제든 손쉽게 어긋날 수 있는. 나는 순순히 다음을 기약한다. 달리 어쩔 도리도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뿐이다.
런던 미술관들은 열 시나 열 시 반에 문을 연다. 휴관일은 없다. 이 도시의 리듬은 그렇게 이탈리아와 사뭇 다르다. 파리와도 다를 것이다. 대개 여행에서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내게는 적잖이 낯설다. 이 글을 쓰는 지금만 해도 그렇다. 새벽 네시 반부터 깨어 아침 먹을 식당이 문을 여는 여덟 시를 기다리는 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겠기도 하고 여행인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느긋해지려고 애써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곧 발사될 총알 같은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