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정원의 여자들 (오르세 미술관, 파리)
19세기에서 20세기 초, 프랑스는 서구 예술의 중심지가 되고야 만다. 1905년 이후 작품은 곧 장기 보수로 5년 간 문을 닫을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 있고 그 이전 시기 작품들을 전시하는 장소가 바로 오르세 미술관이다.
기대가 컸는데 그 이상으로 좋았다. 환상적이었다. 좋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라는 마음이 비애감과 함께 든 것은 전날 루브르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햇빛을 그대로 들여보내는 건물 특성상 맑은 날씨가 전시장을 어지롭도록 아름답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입구 들어서서 오른편에는 신고전주의 작품들이 시간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십 대 후반 내 마음속 여신이었던 앵그르 ‘샘’이 첫 전시실 귀퉁이에 있었다. 전날 가이드 투어에서 이 작품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혼자 찾아가서 다시 보니 그림이 생각보다 작았다. 그리고 입을 살짝 벌린 모습이 왠지 멍청하게 느껴져 한때의 내 여신으로부터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대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무아테시에 부인(1856)‘을 아래에 붙여본다. 정말 저렇게 도자기 같은 피부를 가진 여자였을까? 장신구와 드레스의 화려함은 부르주아와 결혼한 귀족 출신에 충분히 부합하는 듯 한데 그림 속 아름다움의 실제성은 촌스럽게도 여전히 궁금하다.
나머지 신고전주의는 심드렁한 구간이므로 빠르게 지나치고 왼편 입구 쪽에서 다시 시작했다. 밀레부터 마네 일부까지, 미술사 상 사건으로 불릴 그림도, 개별 화가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도, 가십 같은 스캔들도 많은 구간이었다. 그중 이번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모네의 ‘정원의 여자들 Femme au jardin(1866)’이다.
“인상주의는 빛을 그렸어요. 그림이 밝아지죠.”
이번 가이드 투어 중 인상주의에 대해 새롭게 획득한 가장 중요한 정보다. 가장 앞쪽에 앉은 여자의 펼쳐진 치마를 보라. 나무와 나뭇잎, 양산이 드리운 그늘과 대조를 이루는 저 화창한 하얀 치마폭을. 빛이 지나간 자리가 화사하다.
내가 특히 좋아한 부분은 그 뒤에 선 한 쌍에게 있다. 거의 완전히 나무 그늘 아래 선 이들 옷에 나뭇잎 사이를 통과한 작은 빛이 밝은 점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늘을 벗어난 틈을 비집고 들어온 빛. 이 빛은 순간을 환기한다. 인상주의가 잡으려 한 것은 자기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시각적 정보에 가까웠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반 세기가 지난 어느 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빛, 두 번 다시 지구로 돌아오지 않을 태양 에너지가 재현된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짠해진다. 이다지도 생생한 순간에 대한 재현을 보면 오래전 사라진 인간들에 대해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이, 허무함보다는 사라질 것들에 대한 경의와 사랑이 솟아나곤 하는 것이다.
오르세에는 사랑하기 쉬운 그림들이 많다. 구구한 설명과 의미를 말할 수도 있지만 내 방법은 아니다. 모네에 대한 탐구도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