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자화상(코톨드 미술관, 런던)
작가의 주관적 사실을 그림이 재현하기 시작한 건 그러니까 20세기를 거의 코앞에 두고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술계에서는 진부한 진술, 이미 확정된 사실, 정설일까? 나는 이번 여행 중에야, 런던 코톨드 미술관에서 고흐 자화상을 보다가 깨달았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에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죠. 그렇지만 모델 둘 돈이 없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오르세 투어 가이드의 설명에 동의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난하고 자아가 강했을 화가 고흐는 짧은 생애 동안 2천 점이 넘는 많은 그림을 그렸고 그중에는 자화상도 많다.
귀에 붕대를 댄 자화상(1889년 작). 코톨드 미술관 홈페이지는 자신의 소장품을 "이 유명한 그림 This famous painting"이라고 수식하고 있다. 그 많은 고흐 자화상 중에서도 저 유명한 사건, 자기 귀를 자른 일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온 지 일주일 후 그린 그림이라고 하니, 그림에 담긴 사건이 유명한 것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코톨드 미술관이 유명하다고 소개하는 예술적 근거와 상관없이 내게 이 그림은 중요한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까지 고흐에게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고흐에 심드렁한 편이었다. 클리셰가 되어버리는 것. 너무 유명해진 그림의 어두운 숙명이다. 나는 고흐를 너무 유명해 뻔해진 상품처럼 대했다. 그렇다고 고흐의 그림이 나를 부르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자랑, 해바라기를 봐도 감흥이 없었다. 그렇다면 귀가 잘려 붕대를 한 이 날의 고흐 얼굴에서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보다 색이다. 연두와 초록. 이들은 시각적 감각을 배반함으로써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먼저, 인물 배경이 되는 벽은 형광 연두색이다. 내 짧은 그림 감상의 역사에서 지금껏 이런 색은 어떤 미술관에도 없었다. 정확히 말해, 고흐 이전 작가 어디에도. 이다지도 인공적인 연두색이라니. 자연의 어떤 색과도 닮지 않은 색이다. 고흐 집 벽 색이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역시 고흐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자연물도 아니거니와 자연의 어떤 것도 모사하고 반영하지 않을 색채다. 이 사람, (어떤 의미에서) 자기가 본 것을 그린 게 아니구나.
딱 한 점, 비슷한 색을 쓴 그림이 떠오르는데 장욱진의 강(1987년 작, 아래 그림)이다.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전시,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에서 이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강에 노 저어 가는 배와 사람, 그 위에 뜬 달 또는 해와 절벽의 정자는 이 서양화가가 차용했을 오래되고 익숙한 동양화 주제를 상기시킨다. 그런데 강임에 분명한 넓은 배경은 연두색, 그것도 형광 연두에 가깝다. 나는 이런 색 강을 상상하기 어렵다. 장욱진 그림은 훌륭한 균형감을 가진 비대칭 형상이 주는 조형적 쾌감이 매우 큰데, 한 편으로는 이 작품처럼 대단히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색의 사용으로도 내게 만족감을 준다. 여기서는 연두지만 다른 그림에서는 호쾌한 분홍이기도 하다. 분홍을 싫어하는 나도 좋아하게 하는 그런 특별한 분홍. 아마도 그만이 상상하고 조색할 수 있을 그런 개인적인 분홍. 고흐의 연두색은 내게 바로 그런 개인적인 색, 고흐만이 상상하거나 어쩌면 실제로 지각했을 색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고흐는 자기 방도 여러 번 그렸는데, 저는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이 방이 제일 귀여운 것 같아요."
나는 또다시 가이드의 뜻에 동의했다. 귀여운 방에 대한 귀여운 의견이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 줄도 모른 채 고갱이 오기를 기다리며 모든 것, 그러니까 의자, 액자, 베개를 두 개씩 그렸다는 사연에 귀여운 방이 조금 쓸쓸해진다. 인간은 미래를 볼 수 없는 존재다.
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연두가 귀에 붕대를 한 초상과 같은 색처럼 보인다. 같지만 창밖의 설렘과 흥분, 빛은 초상화에서 묘하게 탈색된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과 기억으로는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으니 그건 그림을 보는 내 기분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얼굴 그림자 진 어두운 부분에는 초록색 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입고 있는 코트와 같은, 나로서는 사람 얼굴에서 선명하게 발견한 적이 없는 색이다. 고흐는 자기에게 보이는 세계, 자기가 보는 색, 어쩌면 자기 느낌의 색을 의식적으로 그림에 입히기 시작한 가장 유명한 화가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코톨드에 있는 고흐 자화상을 좋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