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W 터너, 장엄한 풍경

터너, 노럼 성, 해돋이(테이트 브리튼, 런던)

by 만정
터너, 노럼 성, 해돋이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목적지를 런던으로 결정한 후 특별히 기대했던 화가다. 영국이 배출한 화가로는 단연 손에 꼽힐 월드 스타 아닌가. 20세기말 이후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밀린 것 같긴 하지만, 나 역시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심히 호크니를 찾아 헤맸고 결국 내가 본 한 점이 현재 전시 중인 유일한 작품임을 확인한 후 적잖이 실망한 것도 실토해야겠지만 터너는 이미 시간과 역사의 검증을 견뎌낸 화가다.

직접 작품을 본다는 기대는 호크니보다 터너 쪽에 컸다. 다른 매체를 경유하지 않고 맨눈으로 보고 싶었다.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욕망이었는데, 하나는 그가 말년까지 가장 아꼈다는 작품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1815년 작, 내셔널 갤러리, 런던)', 다른 하나는 '비, 증기, 그리고 속도(1844년 작, 내셔널 갤러리, 런던)'에 관한 것이었다.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 원경을 담은 이 풍경화를 책에서 보면 전혀 감흥이 일지 않았다. 터너가 존경했다는 선배 화가 클로드도 마찬가지였다. 터너는 클로드 옆에 전시된다는 조건 하에 이 그림을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했다고 하는데, 이들 그림이 내게는 영 심심했다. 풍경화여서인지, 역사화여서인지, 스타일의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화가 자신이 그렇게 애정을 가진 그림이었다는데, 내가 이해 못 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었다. 책 속 작은 이미지가 문제인지도 모른다. 원화를 보면 뭔가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일말의 가능성이 이 그림을 보게 한 욕망이자 추동력이었다.

미술관이 터너의 요구를 여전히 따르는 것인지 디도는 클로드 옆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두 그림 모두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 적어도 이번에는. 다음을 약속하며 작품 앞을 떠난다. 다음에 대한 이런 약속은 일종의 실험이다. 다음에는 과연 이 그림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것인가? 작품을 대하는 나의 변화, 감상의 시계열화는 흥미로는 실험 주제가 된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비, 증기, 그리고 속도'는 터너와 인상주의 사이의 친연성을 떠오르게 한다. 형체가 불분명하고 그 때문이겠지만 형체와 선보다는 색으로 구성된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도가 색을 잡아내려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과 같았을지는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오르세에서 봤던 인상주의 작품들이 빛의 순간적 묘사라면, 터너 작품은 시계가 좋지 않은 상태, 빛이 오히려 불분명한 상태를 관찰한 결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너 작품은 빛보다는 기상과 풍경에 대한 묘사 같기도 하다. 저 유명한 영국의 흐린 날씨 탓인지 심각했다는 당시 대기질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영국과 프랑스 거주 화가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 관찰할 수 있는 것을 그렸을 것이다. 당위가 아닌 관찰 사실을 그렸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공통점이다. 당시 터너나 인상파가 속한 필드에서 일반적인 접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다.

다시 돌아가서, 터너가 관찰했을 법한 영국 대기 혹은 기상 상태는 'An Italian Journey (2017, Royal Academy of Arts)'라는 매우 훌륭한 스케치 작품집을 낸 앤 데스밋 Anne Desmat'의 표현을 상기시킨다.

"이탈리아는 너무 맑고 깨끗했어요. 그림자가 정말 극적인 대비를 이뤘죠. 영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어요. 영국의 대기는 뭐랄까, milky 하잖아요."

운 좋게도 런던에 머물던 엿새 동안 환상적인 맑은 날씨만 경험한 나로서는 아쉽게도(!) 볼 수 없었지만 익히 알려진 바, 런던의 안개 낀 날씨를 상상하고 미세먼지가 심각한 서울의 어떤 날을 떠올리며 큰 어려움 없이 수긍한다.


테이트 브리튼은 터너를 위해 큰 공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만큼 작품도 많았는데 나는 '노럼 성, 해돋이 Norham Castle, Sunrise (1845년 작, 제일 위 그림)'를 다시 보려고 이 미술관에 두 번 방문했다. 숙소에 돌아가서도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사실은 그림이 있는 방 전부가 좋았다. 터너의 실험적인 작품 몇 점이 있고 창밖로는 미술관이 면한 템즈강과 그 너머가 세로로 길게 보이는 그 방이.

이 일출 그림은 입자 큰 수증기가 대기에 가득해서 멀리 성이 간신히 형체를 분간할 수 있는 정도로 흐릿한 광경을 담아낸다. 시간적 배경은 일출인데 제목이 없다면 일몰이나 한낮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출에 대해 우리가 관습적으로 떠올릴만한 이미지, 붉게 떠오르는 둥근 해, 선명하게 밝아지는 사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습'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 20세기에 태어난 한국인에게 익숙하게 떠오르는 일출의 이미지, 전형적인 일출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90년대 공중파 TV 방송 종료 전에 틀어주던 애국가 속 붉게 타오르는 큰 태양, 포항의 저 유명한 손 조각상을 배경으로 밝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태양,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비롯된 "말갛게 씻은 해". 터너가 그린 이 일출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그림 상단 중앙, 햇빛을 표현한 밝은 미색이다. 떠오르는 해는 그림 하단, 얕은 물가에 거울처럼 반사되는데 하늘의 해보다 더 빛나며 아래로 길게 번진 미색이 신비로운 일출을 완성한다. 이 모습은 영국인에게 일출의 전형일까? 내가 이 이미지에서 감각한 그대로라면 터너의 일출은 희망과 새로운 열정 같은 한국적 일출과는 다른 것을 상징할 것이다. 이를테면 장엄함과 고고함 같은.

그림의 소재이자 배경인 노럼 성을 터너가 좋아해서 여러 번 방문하고 몇 점의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고 그림 옆 설명에서 읽었다. 내가 느낀 장엄함이 성에서 왔다면, 고고함과 품위, 신비로움은 사슴에서 선명해진다. 사슴은 그림 안에서 가장 뚜럿한 이미지로 나타나는 존재다. 여기서 창작 과정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저 사슴도 그 풍경에 실재했을까? 아니면 터너가 그림의 정서와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창안한 것일까? 시와 소설이 그렇듯 그림도 창작물이고 화가의 합리적 재구성물일 것이므로 작품 자체의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해 창작 원리 상 현실은 얼마든지 편집 혹은 희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이 전달한 선명한 정서는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토'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터너는 장엄한 풍경을 소재로 선호한 것 아닐까? 자기 눈 잎에서도, 머릿속 상상에서도. 역사화는 자기가 아는 실재하는 풍경과 상상 속 건물, 인물의 합성일 테니.

마크 로스코, 테이트 브리튼, 런던

한편, 첫날 노럼 성 일출에 정신이 팔려 잘 보이지 않던 작품을 둘째 날 비로소 발견했다. 맞은 편에 마크 로스코가 있었다. 터너가 내셔널 갤러리에 디도를 유증 하면서 클로드 옆에 걸도록 했듯이, 마크 로스코는 터너 곁에 걸리는 조건으로 테이트에 많은 작품을 기증했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실제로 테이트 모던에 마크 로스코가 방으로 하나 걸려 있었다. 가히 적다고는 못할 양이었다. 터너가 자신을 따라 그렸다고 마크 로스코는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터너에게 받은 영향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말한 유머일 것이다. 터너 방의 로스코 그림 색채는 확실히 같은 방에 있는 터너들의 형체 없는 추상같다.

둘째 날 그림을 오가며 방을 맴돌고 있을 때 프랑스 청년 예닐곱을 이끌고 영국인 가이드가 들어왔다. 엿들은 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사실 테이트 브리튼은 영국 화가 작품만 거는데, 알잖아요, 마크 로스코는 너무 셀럽이고 그래서 기증을 안 받고 안 걸 수는 없었던 것이죠."

며칠 후에는 퐁피두 가이드에게서 아래와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또 다른 마크 로스코 앞에서였다.

"사실 전후에는 미국이 미술에서도 주도권을 가져가게 되는데 그때 국가적으로 스타로 만든 화가가 잭슨 폴록입니다. 미국을 대표한다고 말할 화가가 필요했던 것이죠. ... 마크 로스코도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걸 보고 많이 울기도 한다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마크 로스코, 의문의 2패다. 각 도시와 국가에서 가이드를 듣는 재미이기도 하다. 그들은 백이면 백 자기 지역 예술가를 편애한다. 나는 가이드들의 이 편파적인 애정을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테이트 브리튼 가이드에게 주워들은 중요한 정보를 남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노럼 성, 해돋이 앞에서 한 이야기이다.

"이 그림이 인상주의의 시초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돼요, 안 됩니다. 이 그림은 터너가 죽고 나서야 발견되었어요. 그가 살아있을 때에 사람들은 이런 그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요. 무엇보다 모네는 이 그림을 본 적이 없어요."

나는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하고 반박할 근거가 지금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그림 앞에서 모네를 떠올린다. 특히 '임종을 맞은 카미유(아래 그림. 1871년 작, 오르세 미술관, 파리)'를. 빠르고 거친 붓자국이 그대로 남은 터치와 보랏빛이 지배하는 그림의 톤에서 곧장 터너의 색이나 장엄함과 고귀함을 떠올린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모네가 순간적인 빛을 포착한 결과는 터너가 밀키한 대기를 묘사한 결과와 미묘하게 만난다. 추상성이라는 지점에서. 둘 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감상자에게는 우연히도 그러하다. 그리고 창작자는 감상자가 창작해내는 주관성을 통제할 수 없다. 시공간의 사실관계는 감상자의 주관성 안에서 때로 무의미해지거나 무시되는데 감상으로서의 그 결과가 항상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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