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상부르 공원에서의 하루
2주 전 토요일, 아침 일찍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 숙소를 나섰다. 파리에 머문 열흘 동안 딱 하루 비가 좀 내리고 흐렸는데 그 전날이었다. 환상적인 날씨였다.
몽마르트에 전혀 기대가 없었지만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쾌청한 날씨가 사진으로 남았다.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할 무렵 이곳을 떠나 로댕 미술관으로 향했다. 실내외 전시된 작품 구경도 재미있었지만 미술관 일부로서 조성된 정원이 무척 아름답다. 천천히 걸으며 해를 받았다. 사람 구경도 하면서.
오후에는 뤽상부르 공원에 갔다. 여기서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공원 의자는 거의 일인용이었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벤치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공원 의자는 일인용이었다. 일인용 철제 의자. 우리 집 암체어보다 높이만 좀 낮을 뿐 앉아보니 크고 편안했다. 그리고 움직일 수 있었다. 어떤 의자는 더 낮고 등받이가 뒤로 기울어져 선베드 같았고 어떤 의자는 조금 작았다 사람들은 원하는 자리,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자리를 잡았다. 의자는 허름하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제법 무게가 있는 녹색 철제 의자 위치를 옮겨가며 자리 잡고 앉은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혼자였다. 무리 지어 노는 친구들도 물론 있었지만 벤치에 두 친구가 앉아 오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더 흔했다. 여럿이 온 무리도 일인용 의자에 각자 앉아 있었다. 모두 개인이었다. 자연스러운 혼자였다. 공원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튼튼한 일인용 철제 의자. 이 의자는 내게 자유와 평등을 위해 피흘리고 싸운 역사 위에 서 있는 이 나라에서 통용되는 개인이라는 개념의 예시나 환유처럼 보인다. 내가 받은 충격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개인과 그 개인의 자유, 그 개인들 사이의 근대적인 평등이 온전한 의미로 존재하지 않는 내 나라의 현실을 자주 체감해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혼자 앉아 종이책을 읽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핸드폰을 보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책 읽는 인구가 결코 밀리지 않았다. 세계에 이런 공간이 실재하다니. 혼자 공원에서 책을 읽는 풍경이 자연스러운 곳. 누구도 북커버 같은 것으로 자기가 읽는 책을 숨기지 않았다. 일인용 철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사람이 이렇게 많아도 자기만의 공간을 점유하고 어떤 간섭도 느끼지 않는 공간. 군중 속에서 온전히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이건 거의 천국이었다.
내 사진이 일인용 철제 의자의 놀라움을 전혀 포커싱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모든 사진은 날씨와 공원을 즐기는 파리 시민들과 함께 그것을 담고자 했다. 일인용 의자.
메디치 분수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피렌체 보볼리 정원 안에 있는 그로테스크 동굴들을 닮았다. 그것을 의도한 것이겠지. 프랑스에는 메디치 집안에서 시집왔다는 여왕이 있으니까. 여기 분수 근처에 나 역시 앉아 있었다. 잠시 스스로 풍경이 되길 바랐다. 근처 서점에서 급히 산 프랑수아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잠시 읽었고, 그 후에는 카라바조에 대해 썼던 글을 손봤다. 여기서 한 달이면 짧은 에세이 초고는 다 쓰겠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작업했던 순간이 이번 파리 여행의 가장 중요한 챕터로 남으려나 보다. 자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다음 파리 여행을 한다면 시작은 뤽상부르 공원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