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박제가 되어버린 신비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루브르, 파리)

by 만정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흔히 르네상스 거장으로 꼽히는 세 사람. 그중 나는 미켈란젤로를 심정적으로 가장 가깝게 여긴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가 남긴 회화 바티칸 천장화는 살아있는 동안 가능한 많이 보고 싶은 작품이다. 할 수 있다면, 아마 없겠지만, 혼자 가까이에서 조용히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조각은 할 말이 좀 더 많다. 자기 정체성을 조각가로 정의했던 천재답게 훌륭한 조각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다비드(아카데미아 미술관, 피렌체)도 놀랍지만 같은 미술관에 있는 노예 연작은 무척 시적이다. 미완성이라고 알려진 이 작품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데, 오늘날 관람객에게 드문 감상은 아니리라 짐작한다. 현대적인 느낌은 표현과 의미, 양쪽에서 생겨난다. 미완이 조성한 불완전성은 세계의 불완전성을 재현하는 현대미술의 지향과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닿아있다. 노동의 무게에 짓눌린 16세기 노예 조각상은 정치적으로 자유인이면서도 노동에 의해 여전히 고통받는 현대인 일반의 경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경험을 어렵지 않게 상기시킨다. 16세기 예술은 이런 방식으로 21세기에도 유효한 의미를 잃지 않는다. 인간사, 많이 변해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나는 이탈리아에서 자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켈란젤로가 그러나 이들은 아니다. 내 최애 조각가도 미켈란젤로는 아니다. 그러나 평생, 죽을 때까지 작품활동에 몰두하며 다른 인간적인 활동과 즐거움으로부터 어쩐지 조금 동떨어져있었던 것 같은 이 사람, 성격이 괴팍해서 젊을 때 코뼈가 부러진 채로 그리도 장수했다는, 매력적이고 호감 가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이 인물에 나는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끼고 만다. 그 동질감이 심정적 편애의 근거라고 지적해도 나는 달리 반론할 수 없을 것이다.


라파엘로. 그가 잘 그린다는 것은 안다. 그의 성모와 성모자 그림들. 좋아하기 쉬운 사랑스러운 그림을 나는 여러 점 떠올릴 수 있다. 그는 다른 화가들의 좋은 표현을 빠르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었다고 피렌체와 로마 가이드들에게 들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 라파엘로는 무엇이 좋은 그림인지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역시 중대한 장점이다. 게다가 사람들과 좋게 지내는 온화한 성격으로 후원자들에게 인기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이후에 그가 한동안 미술계 전범으로 군림하는 사정도 이해한다, 적어도 머리로는. 나는 라파엘로의 장점에 대한 여러 진술들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나의 예술가는 아니다. 조금 관대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내가 좋아하는 라파엘로는 그런 '보기 좋은' 그림들이 아니다. 라 포르나리나. 지난여름 네 번째 로마 여행은 이 빵집 딸내미를 향한 나의 들끓는 열망에서 촉발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그림들과 비슷한 듯 다른 이 작품을 라파엘로 중 가장 좋아한다(지난여름 방문했을 때, 작품 설명에는 이 작품을 라파엘로가 그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명기되어 있었다. 그렇다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예외적인 면이 이 그림에는 확실히 있다). 처음 본 이래로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사로잡혔다. 단지 보기 좋은 그림(그것도 쉽게 이르는 경지가 아닌 줄 알면서 나는 폄하하듯 쉽게 말한다)을 넘어서 매력 있는, 매혹적인 작품은 그의 것 중 유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그림 이야기는 자기만의 장을 필요로 하므로 지금은 여기까지.


다빈치에 대한 내 솔직한 생각은, 말하기 망설여지고 주저하게 되는데, 아마도 재수 없다, 인 것 같다. 살인과 수많은 범죄 스캔들로 인간성을 문제 삼기에는 카라바조만 한 인물이 없는데도 내가 카라바조에 대해 성격, 윤리, 도덕적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는 사실을 나 역시 인지하고 있다. 카라바조에 대한 글에 그의 개인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이 우연은 아니다. 이 비대칭에 대한 숙고는 우선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미켈란젤로와 달리 다빈치 외모가 매력적이었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내 평가에 감점요소로 작용함을 인정한다. 매우 부당한 처사다. 그러나 다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내 근원적인 의구심은 너무 유명한 두 작품에서 피어오른다는 사실이다. 그 두 작품은 말할 것도 없이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이다.

2022년 11월 방문 당시 모습

최후의 만찬(1489년 경,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수도원, 밀라노)을 예약해 둔 11월 어느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초행길인 데다 비가 내려 일부러 일찍 숙소를 나섰는데 돌아보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간 것도.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줄이 있었다. 예약 시간이 지났는데 문이 열리지도 직원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초조하고 불쾌했던 시간이 5분인지 15분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잊게 마련이다. 그에 비하면 축축하게 젖어 차갑던 발, 그 불쾌함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작품과 보낼 시간을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는 두 곳이 있다면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과 이곳이다. 공통점은 템페라로 그려졌다는 것. 습기에 취약한 이 기법 작품들과 다음을 기약하기 위한 가장 과학적인 조치일 것이므로 나는 엄격한 관리에 불만을 가지지 않기로 한다. 아쉬움은 항상 남지만.

여행 전 봤던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최후의 만찬은 그려진 직후부터 이미 유명했다. 그러나 약간은 잘못된 방식으로 그려진 데다(계란이 일찍이 부패하기 시작했다던가?) 그림이 그려진 벽면 뒤쪽이 바로 조리대여서 이 그림은 다빈치 생전에 이미 훼손되기 시작했고 그가 아직 밀라노에 있던 때에는 직접 여러 차례 보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전쟁 때 그림을 지키기 위해 수도원에서 했던 조치 덕분에 수도원이 파괴되는 와중에도 이 벽면의 그림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유명한 위기는 훨씬 나중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림 자체가 가진 기술적 결함이 이 파괴적 전쟁보다 결코 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그림을 직접 보려는 행렬은 그렇게 늘 있어왔다고 다큐멘터리는 주장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그림을 직접 본 모든 사람들이 과연 그럴 가치가 있다는 데 동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크 트웨인은 이 그림이 끔찍하다는 혹평을 남겼다고 한다. 그림은 사실 내가 방문하기 얼마 전에 또 한 번의 복원작업을 마친 참이었다. 마크 트웨인이 방문했을 당시에는 그림이랄 게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이라면 마크 트웨인은 어떤 면에서 신뢰할 만한 리포터이다. 그림의 유명세가 아닌 자기 눈으로 관찰한 결과를 충실히 기술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니까 제법 복원된 그림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내가 마크 트웨인처럼 신뢰할만한 관찰자였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몸이 추위와 비에 약간 얼어 있었고 관람 제한 시간의 압박, 무엇보다 그림 자체의 유명세에 압도당해 버렸다고 나는 회상한다. 과거 수도사들 식탁이 있었을 아담한 공간에 이십 명 남짓 관광객들이 저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관람을 했다. 나는 엄마도 잊어버리고 역시 자리를 옮겨가며 작품의 의미를 발견하려 애썼다. 십 분 정도. 정확한 시간은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내게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이 어떤 점에서 위대하고 혁신적인지 머리로 알고 있는 바를 직접 확인하기에 내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이 작품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는 앞선 진술을 나는 손비닥처럼 뒤집는다. 그리고는 이렇다 할 감상을 형성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으로 나는 이 그림과의 현재 관계를 정의한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모나리자는 더 말할 형편이 못된다. 다큐멘터리 'A Night at the Louvre(2021)'에서처럼 가까이서 한가롭게 이 그림을 직관하는 것은 이미 얼마 전부터 특권의 영역에 있으리라. 평범한 나는 인파를 헤집고 그림 곁을 잠시 스쳐 지나갔다. 다른 관람객들과 다른 점이라면 사진 찍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뿐이다. 며칠 후 오후 느지막이 다시 그림을 찾았을 때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가운데를 파고들어 꽤 오래 그림 앞에 있었다. 그래봐야 몇 분이었을 것이다. 최소 2미터는 떨어진 거리에서였다. 유리가 반사하는 조명은 모든 각도와 높이를 고려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그림의 아름다운 색을 아주 희미할 정도로 겨우 감지한 채 그 거북한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렇게 이상한 관람을 한 데 대해 약간 화가 나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빈치는 그런 식으로 나를 화나게 한다. 얼마나 단단히 화가 났던 걸까? 분명 사진을 찍었는데 존재하질 않는다. 내가 뭘 좀 지운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데 냉소를 비난하는 평소 내 방침과 달리 나는 좀 냉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깟 게 다 뭐람, 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이 사태가 다빈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알면서도 인증샷이나 찍는 데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 나는 여전히 불쾌하다. 이 그림과 나는 관계 근처에도 못 간 셈이다. 다음이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모나리자 관람료를 아예 별도로 받는 계획이 진행 중이라고 가이드와 에어비앤비 호스트 할아버지 할머니가 공히 말했다. 그러면 좀 나아질까? 아니면 추가 금액이 나를 더 화나게 할까? 화를 내면서도 한 번은 시도할 것이다. 분하다.


그러니까 이 어마어마한 인류 유산, 그토록 신비롭다는 작품은 바로 그 어마어마함에 이미 익사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기회만 있으면 내가 언급하는 시리 허스트베트의 표현, 모나리자를 "자기 유명세에 익사해 버린 작품(사각형의 신비, 뮤진트리)"이라고 말한 데 나는 이제 이보다 더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이런 작품들과 직접적으로 교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대중에 공개하면서 동시에 안전하게 보호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해한다. 이 두 가치는 양립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전세계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할 다빈치의 이 두 점의 경우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관람자는 모나리자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그렇다, 그것은 거의 '대치'였다.

그렇다면 나는 좀 슬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거리는 좁혀질 수 없을 테고 작품은 내게 영원히 피상적인 존재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기념품과 모조품과 심지어는 패러디들이 만들어낸 강력한 이미지들을 극복할 제대로 된 기회도 없이 이 천재의 작품은 박제나 다름없는 무엇이 되어 버렸다. 원화 앞에 서서도 말이다. 그림은 이상한 의미에서 스스로 소외되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를 전유하지 못한다는 소외의 의미를 생각하면 나는 거의 즉각 감정적으로 쓸쓸해진다. 그 많은 관람객들 속에서 오늘도 모나리자는 쓸쓸할까? 바보 같은 의인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녀를 생각하며 조금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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