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나의 폴라 일지(2025), 한겨레출판사
장바구니에 담는 순간 이미 나는 이 책에 졌다. 남극에서 한 달을 보내다니. 부럽다. 남극행 크루즈를 타면 세종기지 근처까지 갈 수 있고 몇 년 전에는 일반인들이 세종기지에 가는 극지연구소 이벤트가 있었다고 월간 김어준에서 들었는데 둘 다 내 차례가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김금희 작가는 꿈을 이룬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어떤 경험들을 나는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낫깃털이끼, 옆새우, 스쿠아, 턱끈펭귄, 마리아 소만, 위버 반도.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고들 하는데 이 남극 일지는 낯선 명사들로 가득하다. 이런 낯선 이름들에서는 신선한 냄새가 난다. 남극에 가기 위해 한국에서 받는 생존교육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남극에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비펭귄" 연구자들, 그 그룹과 개체의 삶에서도. 남의 직업 세계는 구체적으로 알게 될 때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는데 연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전업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금희는 이들을 스쿠아만큼이나 생경한 존재로, 그러나 애정 어린 호기심으로 관찰한다. 그 관찰은 제 3자로서 거리를 둔 관찰이 아니다. 그보다는 참여관찰에 가까워서 작가 스스로 연구활동에 참여하고 그들과 직접 상호작용하며 나아가 친분을 맺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작가는 삶에서 매우 희귀한 순간을 경험한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형성된 삶. 비펭귄 남극 방문자로서, 식생팀 일원으로서의 생활은 말하자면 한국에 비하면 덜 작가였던 것 같다. 이 생활은 쾌와 불쾌, 환희와 고통의 구분을 넘어 새로운 삶이었을 것이다. 안정된 삶의 궤도에 오른 사십 대 인간에게 결코 흔치 않은 일임을 나는 나 자신에 비추어 짐작할 수 있다. 안정된 삶이란 매일 같은 일(터)로 출퇴근이 약속된 일상, 대개 일과가 어제와 같고 다음 주는 이번 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이 예측가능한 삶 외에 다른 뜻이 아니다.
책은 초반에 새로운 명사들로 호기심을 자아냈고 후반부에서는 남극생활에 대한 작가 나름의 의미가 좀 더 선명하게 규정된 문장들이 깊거나 시거나 씁쓸한 맛을 냈다. 나는 후반부 백 페이지 정도를 훨씬 재미있게 빨리 읽을 수 있었고 주로 책을 읽었던 출퇴근 버스에서 자주 소리 내어 혼자 웃었다.
나는 자주 경험을 글로 옮긴다. 산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들도 상상력보다는 경험에서 출발한다. 경험이 글이 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래서 안게 되는 위험도 이제는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나에게는 의미 있을지 몰라도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 위험 같은 것이다. 타인이 원하는 소재와 방식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누가 원하는지는 대개 사전에 확정할 수 없는 쪽에 가깝다고 여전히 나는 믿는다. 때로 그 의미는 작가 생전에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스토너 같은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몇 부 팔리지도 않았다는 일화, 고흐가 살아있을 때 그림을 거의 팔지 못했다는 게 그 예시다.
소재와 방식보다는 관점과 농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경험으로부터 일반화된 명제가 도출될 때 비로소 진정한 글감이 준비되는 것 같다. 그 명제는 당연히 대상과 경험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자기 관점을 가능한 의식하고 인지하면서 그 관점을 드러내면 개성 있고 독창적인 글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독창적인지 개성적인지 그 결과는 작가가 확정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농도를 높이는 데에는 자주 시간이 소요된다. 생각하는 시간도 들지만 경험이 충분히 반복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신선하고 생생한 경험만큼 깊고 시고 떫은 경험에 대한 생각이 좋다. 김금희의 폴라 일지를 읽다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