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의 여자들

라파엘, 성녀 카타리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

by 만정

나는 라파엘 앞에 앉아 있다. 다소 놀라운 일인데 내게는 대개의 라파엘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라는 점에서 아주 이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곧 인정한다. 61번 방에는 현재 안시데이 성모와 십자가형, 그리고 카타리나가 걸려있다(‘기사의 꿈’ 등 또 다른 몇 점은 티치아노 방 뒤쪽에 있다). 이어지는 방들에 없는 의자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너무하다. 앉아서 벨리니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바라볼 기회를 박탈하다니!) 안시데이 성모 쪽을 등지고 성녀 카타리나 쪽으로 앉은 건 우연이 아니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내셔널 갤러리가 제공하는 설명대로, 이 그림의 여성은 미켈란젤로의 영향 하에 있다. 허벅지까지 프레임에 속한 대상은 몸을 비틀고 있다. 라오콘을 누구라도 언급할 이 자세, 육체의 물리적 특성을 비정상적으로 극대화하는 미켈란젤로적 자세를 이때 이미 라파엘은 잘도 자기 것으로 가져온 것이리라(그렇다. 나는 자신이 미켈란젤로의 친구나 되는 것처럼 라파엘의 재능을 대놓고 폄훼한다). 이 같은 자세의 합당한 결과로서 오른쪽 45도 위를 바라보는 성녀의 이목구비는 내가 보기에는 조금 어색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아름다운 데에는 라파엘 특유의, 이것도 어디서 가져왔을 수 있긴 한데 그래도, 아름다운 색이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알아차리기 한참 전부터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넋을 놓고, 라는 수식을 붙여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대개는 성녀의 드레스였다. 녹색과 붉은색, 노란빛이 무게라도 잰 것처럼 균형감 있게 비정형의 형태로 카타리나의 몸을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 색들은 성모 얼굴 뒤 하늘색과 훌륭하게 어우러지는 파스텔톤이다. 그러고 보면 이 하늘색은 무척 중요하다. 매우 의미 있는 음소거처럼, 자기를 드러내는 대신 보컬을 돋보이게 하는 코러스처럼 있는지 조차 모르는 방식으로 존재함으로써 완벽히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색감이 라파엘의 장기 중 하나다. 그 조화로운 색의 선택과 배치를 나는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정확하게 고전적인 의미로. 그냥 어떤 인간이라도 그 앞에 서면 대개 인정할 법하게 평범하고 보편적인 방식으로(평범, 보통, 보편 이런 말들은 언제나 사용하기 조심스럽고 여전히 까다롭지만), 아름답다.


라파엘의 성모들이 아름다운 건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다. 그들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성모와 성모자들은 피렌체 피티 궁에 제대로 주목도 못 받을 정도로 널려있다. 어떤 성모들은 다른 성모들에 비해 조금 더 아름답다. 내가 가장 아름답게 생각하는 라파엘로의 여자는 그러나 성모가 아니다. 성녀도 물론 아니고. 그 어떤 성스러움과도 무관한 라 포르나리나, 빵집 딸이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사람의 딸인 여자. 살다가 성인이 된 일도 없이 사람으로 죽은 여자. 라파엘의 공공연한 연인이었다는 이 여자는 로마 바르베리니에 있다. 나는 그녀를 보기 위해 그 무시무시한 언덕을 네 번이나 오르내렸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에서도 나는 이 언덕을 특히 두려워한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고된 언덕. 그러나 거기 그녀가 있다. 선명하게 광택이 나는 모습으로 자기 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심지어 붉게 상기된 볼을 하고. 그러고도 그녀는 흔들림 없이 그림 밖을 응시한다. 과시도 유혹도 원하는 것도 없이 고요한 눈빛이다. 나는 그 눈을 피하는 관람객을 여럿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 어떤 라파엘 그림과도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만은 뻔하지 않다고, 진정으로 특별하다고 치켜세우면서.


로마의 라파엘은 피렌체의 라파엘을 부르고 런던의 라파엘은 다시 로마의 라파엘을 욕망하게 한다. 나는 떨어질 줄 모르고 여기서 저기로 받아쳐지는 핀볼 같은 신세를 조금 괴로워하며 어제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옳고 그름, 원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막을 방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렇게 내 마음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피렌체 어느 골목이나 로마의 언덕을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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