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신성함과 고요함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 세례, 내셔널 갤러리, 런던

by 만정

모든 게 이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3월과 며칠 전의 런던 방문, 특히 누구나 ‘왜 그렇게 짧게?’라고 반사적으로 질문할 수밖에 없는 3박 5일 런던 방문. 그 난리법석은 다 이 그림 때문이었다.

산세폴크로에 갈 생각이긴 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부활’을 보기 위해서. 세계 양차 대전 중 한 번 폭격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그것이 형상화하는 주제만큼이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 그림을.

그리고 갑자기 이 그림이 나타났다.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는 매우 논리적인 우연으로.

https://youtu.be/zR24Coi1ZGA?si=VSTwMf2LyRH9BJXm

내셔널 갤러리는 (돈을 쓰기만 할) 공공기관이 어떤 일까지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너무나 황홀한 예시다. 위 영상처럼 학교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더 자주는 학교에서 단체로 온 꼬맹이들을 앞에 두고 진행하는 큐레이터의 강연들을 도합 일주일 여의 내셔널 갤러리 방문동안 나는 정말 여러 차례 직접 확인했는데, 이 장면이 그렇게 흐뭇하고 감동적이었다. 예술에 대한 사랑을 매우 열렬하고 간절하게 설파하고 있을 것이므로. 이곳 큐레이터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예술이 대한 사랑을 전달하는지 나는 오랜 시간 충분히 확인해 왔으므로. 심지어는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기 훨씬 전부터 말이다. 거기 유튜브라는 매체-플랫폼이 있다는 사실을 나, 기술을 흰 눈으로 보는 나마저도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다, 나와 그림 사이에는 유튜브와 (더 중요하게는) 유튜브가 이어준 큐레이터들이 있었다. 나는 여러 번 감탄했다. 그 직업적 의무와 권한 덕분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어쩌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집중해서 그림을 봐왔을 이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자세히 본 만큼 그림을 사랑하곤 했다. 아주 작은 점, 순간, 거기 닿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밀한 애정은 내가 불신해 마지않는 네트워크 회선을 통해 이렇게 멀리 나에게까지 뜨끈하게 닿았다.

그 사랑은 자주 디테일에 있었다. 예를 들면 카날레토의 석공의 작업장에서 보이는 그의 훗날의 특징, 그러니까 건물 한쪽에 떨어져 나온 벽돌 같은 베네치아의 질감들을 잡아내는 눈 같은 것이다. 최근에는 화가가 명확하지 않은 한 북유럽 제단화에서 매우 눈에 띄는 흥미로운 괴물을 발견하는 한편으로 성모자가 딛고 있는 소박한 계단, 나뭇결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계단을 주목하는 눈 같은 것도. 큐레이터뿐만이 아니다. 복원사들. 아마도 복원을 지원한 단체나 기업들에게 하는 일종의 공적 리포트일 것이 분명한 복원 비포 애프터 영상들에서는 누구보다 그림에 가까웠던 사람들의 희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도저히 제대로 발음할 수 없을 북유럽 화가 게르하르트 토트 신트 얀스의 ‘밤의 탄생’의 경우가 최근에는 특히 마음에 남는다. 이 그림에 그렇게 많은 색조가 쓰이지도, 비싼 안료가 쓰이지도 않았는데 그 점이 좋다는 말이, 또 이 그림 속 성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언급하는 부분이, 천사 한 명은 얼마나 생생하게 귀여운지를 드러내는 게 좋아서다. 돌아보니, 그렇게 그들에게 나는 큰 빚을 지고 있다.그림을 애정으로 말하는 그들을 보며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된 그림을 사랑하는 방법들. 그런 시선들로부터 그간의 나는 무언가 배워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미술관이 자랑하는 스타들, 다빈치와 윌튼 딥티크, 얀 반 에이크를 지나 모두를 놀라게 할 북유럽 화가들의 세밀화를 통과해 금으로 번쩍이는 이탈리아 중세 제단화들, 다시 라파엘로와 약간의 피렌체 화가들, 베네치아 화가들 끝에, 입구에서 가장 먼 대각선 구석방, 거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있었다. 내가 본 모든 명화 중 가장 미디어들, 사진과 복제품과 영상, 말 그대로의 전달자, 중계자들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특별한 점이 있다면 미술관 한 벽면에 붙은 이 그림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사위가 고요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 물소리가 들렸다. 나는 딱 두 번 그림에서 흐르는 혹은 똑똑 떨어지는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했는데 이 그림과 라파엘로의 ‘라 포르나리나’에서다. 라 포르나리나가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한다면 이 그림은 보이는 대로다. 흰색에 가까운 방은 그림 속 대낮을 확장하고 이 그림의 정적을 극대화한다.

생각과 달랐던 건 실제가 훨씬 덜 경직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물소리는 움직임에서 오는 것이다. 당연히 예수 머리 위에 부어진 물, 그러나 그보다는 발 밑을 지나는 물줄기가 이 가상의 청각 자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줄기의 암시는 거기 비친 하늘보다 맑은 하늘색과 구름으로 이상한 종교성 혹은 신성함을 더한다. 뻗뻗함을 상쇄하는 다른 요소에 대한 내 가설은 예수의 자세, 콘트라 포스토다. 저 미묘한 짝다리의 운동성을 이 그림에서만큼 강력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은 분명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조금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자작나무만큼 창백해 보이던 예수 살결에는 은은하게 붉은빛 생기를 넣어두었다. 이 그림을 사들일 당시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 구매를 망설였다는 그림의 역사를 떠올려보자면 이 요소 중 몇 개쯤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솜씨나 의도가 아닐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명작, 오 백 년을 살아남은 그림의 일부라는 점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 어떤 그리스도 세례 작품에서보다 진지한 그의 표정이 이 그림의 유일한 과장 혹은 극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발밑의 맑은 하늘을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아주 정확한 높이에 있는 예수 머리통 위 비둘기도. 아직도 그 지역, 산세폴크로에 자라고 있다는 땅 위 식물들도. 그보다 조금 오래 예수 오른쪽 허리춤의 도시, 허연 모래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듬성듬성 어두운 녹색 식물이 암시되는 것처럼 기억나는 예수 예수 오른쪽 어깨 위 황량한 산 혹은 언덕도. 토스카나에 이런 지형도 있는 것인가? 시외버스로 피렌체에서 편도 두 시간을 가야 할 도시를 잠깐 상상한다. 그림은 그렇게 나와 또 다른 도시, 그곳의 또 다른 그림을 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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