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가 필요할 때 :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짐 디피디,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갈라파고스, 2021

by 만정

'인류애'가 필요해. 7월 17일 오후 두 시경, 고개를 들어 파티션 너머를 둘러봤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백여 명의 인간들. 내 저체온증을 극복하게 할 온기를 나눠줄 존재는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날이었다. 평범한 워킹데이. 회사에서 나는 아직도 자주 외롭다. 전력질주 끝에 성취감보다 외로움에 휩싸이며 아직도 가끔 당혹한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수많은 사무실 인간들 속에서 어느 때보다 혼자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현상을. 외로움은 고립감과 소외의 감각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소외감은 어떤 의미에서 논리적 귀결이다. 나는 내 노동을 전유하지 못하므로. 회사생활 15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나는 그 결과가 온전히 내게 귀속되는 노동을 하지 못한다. 시간을 생계용 돈과 교환할 뿐이다. 원하는 이상으로 돈으로 교환해야만 하는 시간문제는 해결된 적 없는 골치 아픈 문제다. 가끔은 마음을 기대고 싶어지는 다른 요소, 다른 노동자들과의 관계는 회사와 사무실이 강제하곤 하는 상태로 인해 자주 비인간적인 것이 된다. 지나치게 바쁜. 인간은 인간 그 자신의 특질에 의해서 만큼이나 바쁜 상황에 의해 쉽게 비인간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불친절하고 냉담하게.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이해한다. 대개의 우리는 제약 속에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내가 그렇듯이.

그렇지만 '인류애'라는 단어를 떠올린 건 이례적이었다. 마음을 터놓을, 하소연을 들어줄 같은 훨씬 구체적이고 작은 단어들이 평소 내 어휘에 가까웠다. 인류애, 저 크고 추상적인 단어의 출처는 명확했다.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강조지, 아니 강민지 씨. 얼마 전 민음사 채널에서 그가 소개한 책 한 권이 이미 내 알라딘 장바구니에 들어 있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거창한 인류애가 구체적인 맥락에서 온전히 실현되었던 며칠 간의 실화,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가장 어두울 때의 사랑에 관하여'였다. 내게 필요한 건 이 온전한 인류애의 실증이었다.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의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간절히 확인하고 싶었다. 내 손 닿는 사무실이 아니어도 좋다. 그러나 실재했어야만 했다. 불나방처럼 나는 이 책에 이끌렸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다 읽은 후에도 역시 믿기 어려운 일화다. 만여 명 주민이 거주하는 캐나다 동부 섬 뉴펀들랜드에 주민 수에 육박하는 ‘비행기 사람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2001년 9.11 테러 발생 직후 미국이 영공을 완전히 폐쇄한 결과다. 미국을 향하던 400여 편의 국제 항공편들은 어디에 착륙해야 하는가? 모든 비행기가 출발지로 회항한 건 아니었다. 캐나다 등 주변국에서 공중 미아가 된 비행기들의 착륙을 허용한 덕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 비행기들의 착륙을 허용하는 게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수 있다. 미래에 있는 우리에게는 이제 확정된 사실이지만, 더 이상 비행기 테러는 없다는 사실을 그때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연이어 두 대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고 다시 몇 대의 비행기가 펜타곤을 향해 추락하는 비행기 납치 자살 테러가 벌어진 직후였다. 미래는 열려있고 그들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그 무섭도록 열려있는 미래를 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을 도착지로 한 모든 비행기는 잠재적인 테러 가능성 그 자체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특히 미국이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판단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영공을 폐쇄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므로 그 비행기들을 받아준 주변국들은 잠재적인 테러 위협을 받아 안은 셈이라고, 그것부터가 비장하고 결연한 결정이었다고 역시 지금의 나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캐나다의 여러 공항이 일시적인 공중 난민을 받아주었고 갠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뉴펀들랜드의 이 작은 도시에 좀 더 특별한 개연성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갠더.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존재도 모르던 이 도시는, 제트 엔진 발명 전까지 연료 보충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항공기들의 중간 기착지가 되었던, 말하자면 20세기 초중반 항공계에서 좀 잘 나가던 지역이었던 것이다. 도시 규모에 비해 남다른 활주로 크기와 길이를 갖추고 있던, 이제는 한물 간 옛 항공 도시는 바로 그런 이유로 수많은 비행기를 받아주기에 이상할 정도로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 합쳐 열 명뿐인 관제사들이 35대 비행기들을 사고 없이 착륙시켰다는 사실 역시 당연한 것 같지는 않다. 이제 탑승객들이 공항을 나서서 겪게 되는 전 섬적인 차원의 믿을 수 없이 놀라운 무조건적 호의만큼이나 나는 이들 관제사들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게 일을 해냈다는 생각을 직업인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갠더에 착륙한 '비행기 사람들'이 다시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흩어지기까지 엿새 간, 어떤 연고도 없는 외지인들을 위해 가가호호 이불과 수건을 내주고, 때로 욕실과 집을 내어주며, 물건들을 공짜로 주고, 안타까운 마음과 위로의 마음을 내어준 뉴펀들랜드 사람들 이야기는 300쪽에 거쳐 계속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목표를 달성했다. 실제로 벌어졌던 이 일을 읽는 매 순간 나는 내가 찾던 기적의 현현을 확인했다. 단순히 돈과 물건을 내어준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보여줬다. 희귀한 세계다. 의심과 경계가 없는 세계 말이다. 끔찍한 테러라는 비극을 전제로 한 순간, 일시적으로 성립할 수 있었을 이 무조건적 호의는 무한한 신뢰 위에서만 가능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동화 같은 이야기인가. 이렇게 속을 알 수 없고 변덕스러우며 불완전한 인간, 그 타인을 순간이나마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동시에, 그 일에 대해 회고하는 뉴펀들랜드 인들의 답은 얼마나 멋진가. 그럼 달리 어쩌겠어요? 죄수의 딜레마가 전제하는 인간관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인 인간, 이해관계와 셈으로 점철된 인간이 자기 본연의 모습이라고 의심 없이 믿는 20세기 인간은 발견할 수 없을 인간성, 어쩌면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의 당연한 면면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일각의 사회학 이론들이 주장해 왔듯이,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며,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를 유일무이한 목표로 추구하지 않는다, 당연히도.

가장 혼란스럽고 급박한 초반부를 나는 홀린 듯이 읽어나갔다. 동시대인으로서 속보와 뉴스를 당시에도 들었지만 외국의 일이었고 내 일도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멀리하지 않았지만 사건에 대한 내 지식은 거의 전무했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구체적으로 깨달아갔다. 책은 사건의 사실관계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사실을 열심히 전달한다. 특히 뉴펀들랜드라는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 어떤 이민자/이주자들이 현 주민 구성을 이루게 되었는지, 그들은 어떤 특성을 가진 공동체를 만들어왔는지, 어떤 일로 생계를 꾸리는 지역인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많은 비행기들을 착륙시킬 수 있었는지 같은 구체적인 사실 하나하나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모든 구체성과 특수성은 자세히 알면 알수록 나를 매혹시키고 열광하게 만든다. 이 책은 그 점에 매우 충실하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사실의 연속으로만 엮어내지 않는 것이 또한 이 책의 미덕이며 매력적인 부분이다. 책은 이 일과 관련된 수많은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몇 마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고 궁금해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시장, 관제사, 마을 경찰, 동물보호소의 자원봉사자, 약사들. 비행기 조종사, 승무원, 아이를 입양해 집으로 돌아가던 부부, 은퇴 전 마지막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뉴욕으로 가던 남성복 보스의 보스, 세계무역센터에서 실종된 소방관 아들을 둔 부부, 역시 실종된 소방관 친구를 둔 경찰관. 다 세어보지 않아도 백 명에 육박할 인물들은 몇 문장에 언급되건 실재하는 인물로 독자에게 선명하게 각인된다. 그리고 어떤 귀가는 우여곡절 끝에 완수되고 어떤 귀가는 눈물로 끝난다. 완전한 슬픔 만으로도, 기쁨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논리적 모순이 인간사에서는 얼마든 양립할 수 있음을 놓치지 않고 드러내려는 작가의 노력은 신선했고 또 책 안에서 어느 정도 성취되고 있다.

사건 다음 해 첫 출간된 책은 뮤지컬, 다큐, 라디오 드라마 등으로 여러 차례 소개된 것 같다. 나만 지금 알았다는 게 조금 분해질 정도인데, 오히려 20여 년 시간이 흐른 후 읽게 된 장점도 없지는 않다고 고백한다. 에필로그에는 '그 후'가 있다. 어떤 작품에서, 특히 서사 장르에서 시간은 견줄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고 나는 믿는다. 결코 떨칠 수 없을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삶을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결코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생기는 이야기, 단지 무사한 이야기 같은 것들에서 나는 감동받았다. 그리고 충분히 안도했다. 출간 직후 읽었다면 이후 내내 안부를 궁금해했을 이야기였다.


할 수 있다면 이 책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완전히 외우고 싶다. 흐릿하지만 확실한 손전등처럼 내 남은 인생을 밝히는 데 쓰고 싶어서다. ‘골든 슬럼버’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만큼 자주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당연히 모든 인류에게 추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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