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화가의 성인과 천사들은 자가드를 입는다

반 에이크 형제, 겐트 제단화, 성 바보 성당, 겐트

by 만정

얀 반 에이크가 그린 큰 그림을 보고 싶었다. 올해 마침내 직접 마주한 그의 그림들은 알려진 대로 대단했다. 플랑드르 화가들의 전매특허인 세밀함과 그 세밀함으로 곳곳에 배치한 의미심장한 상징들에서 나 역시 강력한 힘을 체험했다. 그림은 내 안의 놀라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작동시켰고 그 때문에 그림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파리 루브르에서 나는 만끽했다. 올 6월 내가 방문했을 때,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강조점을 지우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비교적 큰 방에 비슷한 시기 플랑드르 화가들 작품들 사이에 매우 평이하게 걸려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매우 공평하게 할당받은 공간만을 점유한 채로, 다음 방으로 향하는 문 앞에. 이 배치는 성공적이어서, 이 유명한 작품을 알아본 관람객이 순간적으로 그 앞에 몰리지만 사진을 찍은 후에는 다음 동선을 따라 이동했다. 빠르고 자연스럽게. 나 역시 그림 앞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그 자리에 멈춰있기가 유난하고도 미묘하게 부담스러웠다(다른 그림 앞에서는 십 분씩 잘도 서있었다). 공간 설계가 관람객을 추동하는 의도된 압력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파리 루브르는 상대적으로 작은 방 가운데 '롤랑의 성모'를 배치했고 앞에는 의자도 두었다. 오래 봄을 권장하거나 허한다는 분명한 표시였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관람객도 적었다. 나는 그림 앞에 코를 대고 한참 살펴보았고(옆에 다른 관람객도 역시 코를 박고 있었다), 방 안 다른 그림들(다른 화가들의 아름다운 작품도 많이 걸린 방이다)을 바라보다 돌아와 또 보았다. 힘들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다른 관람객이 관심을 갖고 다가오면 의자에 앉아 다리를 쉬다가 다시 그림에 다가갔다. 이런 방식으로 '롤랑의 성모'는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롤랑이 아르놀피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위대한 정도의 차이보다는 감상하는 환경의 차이에 기인할 것이다.

명성과 대단함과 상관없이 두 그림 모두 그림 크기는 작았다. 사실 놀랄만치 작았다. 물론 이 ‘작다’는 감각은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전적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기원한다. 내 그림 감상의 어미 오리 같은 이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내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내적 기준이 되었다. 당분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이 상대적 감각이 작동함을 최대한 인지하는 것뿐이다.

내 크기 감각의 상대성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그림 크기가 의뢰자가 축적한 부의 방식과 크기에 비례한다는 가설을 세워 굴려본다. 부의 방식은 이를테면 상업으로 축적한 부, 귀족의 (물려받은) 부, 교회의 (가늠할 수 없는) 부 따위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 메디치는 방식보다는 크기의 함수에 치우치는 극단적인 사례다. 마침내 교황과 프랑스 왕비를 배출하고 공국의 공식적인 수장 직함을 세우기 전까지 이 집안은, 특히 가문 부흥기 초반에 자신들이 아무도 아님을, 그러니까 이 도시를 지배하려는 정치적/계층적 세력이 전혀 아님을, 다만 도시의 후원자임을 최소한 명목상으로는 피렌체에 어필하려 노력했다. 매우 영리하게도 말이다. 그 노력의 일환이었겠지만 그저 어마무시한 부자 외에는 공식 직함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아무것도 아닌' 집안이었던 시절, 도나텔로를 후원했고, 어린 미켈란젤로를 픽업했으며, 보티첼리에게 크고 큰 그림을 여럿 맡겨 집안을 장식하고 집안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메디치와는 다른 집안의 거물이지만,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율리우스 2세 초상화는 앉아있는 전신 크기이고 티치아노도 유력인사의 큼지막한 상반신 초상화를 여럿 남겼다. 그런데 내셔널 갤러리에 적잖이 걸려있던 플랑드르 화가들의 초상화는 과장을 조금만 보태서 손바닥만 했다. 역시 내셔널 갤러리가 보유한 얀 반 에이크의 아이코닉한 초상화 ‘붉은 터번을 두른 남자의 초상'은 깜짝 놀랄 만큼 작아서 우리 할머니 세대가 방에 한 점씩은 걸어두고 있던 오래된 사진-초상화 액자보다도 작다. 책에서 대표작으로 소개되었던 다른 많은 초상화들은 그 미술사적 중요성이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너무 작아서 도저히 위대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고 고백한다. 김이 새는 기분이었다.

물론 가장 큰 변수는 부의 크기일 것이다. 그렇다, 이것도 전부 돈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종교나 세습 지위만큼이나 경제적인 지위가 이 시기 어떤 지역에서는 이미 활발히 작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있으면 교회가 아니어도, 귀족이 아니어도 그림을 의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작은 초상화는 15세기 일부 북유럽 도시에서는 이미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에 상응하는 작은 초상화를 그리는 게 가능한, 상당히 자본주의적인 사회가 진행 중이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르놀피니라는 이탈리아인은 상당한 부자였을 것이다. 내게는 충분치 않았지만.

그림 크기 문제로 내가 이렇게까지 길게 쓸 줄은 미처 예기치 못했는데, 이 같은 약간 불만 섞인 고찰은 노안이 오기 시작하고 점점 사물이 덜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내 육체적 한계에 기인하는 게 분명하다. 그림을 보려거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능한 무리 해서 많이 보시라고 지나가는 청년들을 붙잡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진심으로 많다.


겐트 제단화는 상인이자 시장이었던 부부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제작 당시인 1430년 즈음에는 세계에서 제일 컸다는 말이 돌기도 하는 이 어마어마하게 큰 제단화가 말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가능케 한 것은 역시 어마어마어마한 개인적 부라고 해야 할까? 여하간 후원자 부부의 초상은 닫았을 때 문 역할을 하는 양쪽 하단부에 여전히 위치한다. 나와 다른 모든 관람객들이 이 후원자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도록.


그러나 내가 그림을 보러 간 게 이들 15세기 후원자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정확히 무엇을 봐야 할지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제단화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하자 곧 다음과 같은 문구를 단 영상과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신비한 양 Mystic Lamb.

가슴에서 피를 콸 쏟아내고 있는 양에 대한 최근 기사는 대개 복원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본래 얼굴 이야기였다. 자연주의적으로 재현되었다는 그간의 설명과 달리 복원하고 보니 의인화될 대로 의인화된 양 얼굴이 충격적으로 못생겼다는 둥, 어쩐지 귀가 두 개로 보이는 게 이상했다는 둥 하는 가십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열받는 건 그림 앞에 섰는데도 양 얼굴이 못생겼는지, 인간처럼 눈이 촉촉한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큰 그림을 보러 먼 길을 가서 마침내 그 앞에 섰거늘, 이 무슨.

처음 이 거대한 그림 앞에 섰을 때 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명성에 압도당하기도 했거니와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한 번에 내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저 양부터가 아래처럼 큰 그림의 일부다. 여기만 해도 최소 대여섯 개 무리가 조합된 그림이고 사람만 해도 수십 명은 된다. 다시, 이 패널은 왼쪽에 재판관들과 그리스도 군대를, 오른쪽에 은둔자들과 순례자들을, 바로 위쪽에는 예수를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성모와 세례자 요한을 둔 상태이다. 성모와 세례자 요한 양측에는 노래하는 천사들이, 그 양쪽 가장자리 패널에는 아담과 이브가 멀찍이 자리한다. 단순히 클 뿐 아니라 몇 개 이야기가 조합된 제단화였던 것이다. 그런 고로, 처음 이 제단화 앞에 섰을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당연히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낯선 도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끼는 것 같은 혼자만의 은밀한 당혹감과 놀랄 정도로 닮은 당혹감이었다. 내게 익숙한 시각적 인지 체계에 완전히 벗어나 있을 때 느끼는 혼란이었다.

이때 기존에 알던 유일한 요소를 바라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물론 물리적으로 그곳으로 시선이 향하게 되어 있기도 했다. 제일 중간, 눈높이에 있으니까. 신비한 양이었다. 그림은 그곳을 바라보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보이질 않았다. 유튜브에서 봤던 인간 같은 눈과 옆으로 삐죽한 귀가. 다시 당황한 채로 그 앞에 멈춰 있었다. 물에 빠진 채 허우적 대는 것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때였다. 언덕 가장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동산 뒤로 펼쳐지는 도시의 고딕 첨탑들, 그보다 더 근경에 위치한 꽃과 꽃나무들로 시선이 차례로 이동했다. 마침내 눈 둘 곳을 찾은 것 같았다. 기괴한 양과 수십 명의 인간들 속에서 마음 붙일 곳을. 이 완전히 낯설고 복잡한 시각 요소들 속에서 내게 익숙한 것을 발견해 낸 것이다.

놀랍도록 화려한 다른 요소들에게서 시선을 돌려(차단에 가까웠다) 그림 왼쪽 중간 높이에 펼쳐진 꽃나무 무리를 바라보았다. 홑겹의 장미과 식물 같은 하얗거나 붉은 꽃에 동백 같은 나무 형태와 이파리를 한 식물을. 그다음은 오른편의 줄기 긴 붉은 꽃과 흰 꽃을. 그다음은 그림 하단 풀밭의 오점 같은 흰 꽃들을. 그의 그림에 어떤 식으로든 등장하는 식물들이 나는 정말 좋다. 섬세하게 묘사된 식물들은 진짜일 것이다.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부터 내가 이미 눈여겨보고 있던 아무렇게나 바닥에 솟아있는 식물들과 같은. 그 실재하는 구체적인 존재를 그린 것이 분명한. 아무도 못 보는 먼지를 맨눈으로 보는 여섯 살 시절 내 조카나 실제로 볼 수 있을 복잡하게 치솟은 고딕식 첨탑들의 세부묘사는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위장이 분명한 사실이라고(이제 노안이 온 내 눈으로는 더 이상 먼 도시의 풍경이 이렇게 자세히 보이지 않으므로) 얀 반 에이크를 떠올릴 때 나는 생각하곤 한다. 정말 아름답고 경이롭다. 그러나 내가 진짜 사랑하는 이 화가의 요소는 높이 솟은 빛나는 첨탑보다 더 사소한 존재인가 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이 지역에서 자라고 죽고 다시 자랐을 풀꽃 같은 것들 말이다. 사소하지만 확실한 존재, 15세기 인간과 나를 이어주는 구체적인 실재가 천천히 나를 안심시켰다.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다시 양을 바라본다.

촉촉한 눈까지는 식별할 수 없지만, 살아있는 듯 네 발로 당당히 선 양이 꽉 찬 포도주병처럼 성배를 향해 피를 콸콸 쏟아내는 중심 주제는 작고 희미한 와중에도 시각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못 생겨서가 아니라 기묘하게 잔인한 데서 오는 충격이었다. 이 신학적이며 신화적인 주제는 그러니까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서 성립하지 않을 장면이라는 뜻이다. 그를 둘러싼 천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워싱턴에 가야 할 유일한 이유인 얀 반 에이크의 수태고지처럼 그의 천사들이 단 무지갯빛 날개에 나는 좀 환장한다. 이 그림의 천사들처럼. 그러나 이 날개와 인간 형상의 조합을 일컬어 우리가 천사라고 부르는 존재는 (지금껏 알려져 있기로는) 상상물이다. 실존이 발견된 바 없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아우라를 온 사방 퍼뜨리는, 날개를 좌우 대칭으로 쫙 펼친 비둘기 역시 상징물에 가깝다. 그를 둘러싼 눈부신 금빛 아우라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물리적으로 인간 눈에 보이는 것일 리 없다는 뜻이다.

이 모든 허구와 상상, 거칠게 말해 실은 가짜인 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땅으로 끌어내리고 구체성과 개연성을 부여하는 건 전부 이 진짜 사물, 꽃과 풀, 나무와 첨탑이 아닐까? 이토록 구체적이고 사소한 실재를 그토록 사실적이고 세세하게 묘사하는 건 상상과 허구에 더 큰 개연성을 부여하는 고도의 개념적 기술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 속 군중 역시 그렇다. 그림 속 수십 명 사람들 역시 누군가 성인을, 유력자를, 천사를 재현하는 것이겠지만 그 얼굴은 당대의 실존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다른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 그런 일이 일어나듯이 말이다. 그러니까 진짜 인간의 얼굴을 묘사한 가짜 성인이 진짜 성인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걸친 직물과 보석들의 고도로 사실적인 아름다움이란. 플랑드르 화가들의 성인들은 모두 훌륭한 천으로 된 옷을 입는다. (이탈리아에는 거의 없는) 고딕 첨탑이 멀리 보이는 도시를 배경으로, 이다지도 세속적인 고급 옷을 걸치고, 이 지역에서 자라는 풀꽃이 있는 동산에 발을 붙이고서.

오른쪽 붉은 제복의 무리를 보라. 색도 아름답지만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는 직물의 무게감이 공들여 표현되어 있다(물론 그 고귀한 옷을 받쳐든 대머리 사제의 손도 곱다). 덧붙이자면 이 지역 성인들이 즐겨 입은 직물 중에는 자가드가 있을 것이다. 물론 천사들도.

성모와 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가운데 두고 노래하는 한 무리의 천사 역시 아름다운 녹색과 붉은색에 금색으로 치장한 고급 의상을 두르고 있다. 직물 표현에 입을 다물 줄 모르고 바라보던 와중에 찾아냈다. 내 최애 천사를. 오른쪽에서 두 번째, 다른 인물들과 고개를 유난히 반대 방향으로 하고 인상을 쓰고 있는 얼굴이다. 이렇게 개성적인 얼굴을 주목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나도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활동해 본 적 있지만 도대체 어떤 노래 어떤 성부를 부르면 저런 표정이 나온단 말인가. 노래하는 표정으로 사실성이 영 떨어지지만 그렇든 아니든 저 천사가 나를 웃겼다. 고마웠다.


마침내 진정하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꽃과 첨탑과 성인들의 옷감과 천사의 웃긴 얼굴을 그렇게 번갈아 보았다. 화가 나기 시작한 건 마음이 진정된 후였다. 전체를 읽을 수가 없어서 그림에서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젠장. 그림은 신줏단지 모시듯(당연히 보물이긴 하지만)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었고 중심부 하단에 있는 저 유명한 신비의 양은 다른 패널 그림들에 비해서도 원경을 그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 모든 요소의 크기가 일단 작았다. 너무 멀어서 더는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더 자세히.

얀 반 에이크 감상 행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이건데, 그 욕망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철저히 좌절시키는 물리적 현실이 기이한 감정을 자아냈다. 아쉽기보다는 화가 났고 그다음에는 모금을 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단화 문을 잘 닫을 수 있을만한 거리를 확보하면서도 그림에 훨씬 가깝고 유리가 올록볼록 돋보기 같은 시각적 장애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더 훌륭한 그림 보호장구 같은 것을 제작하는 데 사용할 기금 같은 것을 말이다.

그렇다. 그림 앞에 80분을 서 있는다는 것은 이런 부가적 상상을 허용하는 일이다. 현실적 분노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순간의 감정도.


제단화 문에 해당하는 후원자 부부 위쪽 그림 시퀀스가 수태고지라는 건 사전조사에서 주목하지 않던 사실이었다. 그간 본 가브리엘 중 누구 못지않게 정갈한 생김을 한 가브리엘과 그 가브리엘에 비하면 어쩐지 안 된 얼굴을 한, 이제 수태고지를 받는데 어쩐지 막 해산한 것 같은 부은 얼굴을 한 성모는 그림이 열린 개관 시간 동안 서로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가브리엘과 성모가 위치한 실내에는 늘 그렇듯 창문이 있었고 근사한 도시 전경을 통과시키고 있을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러나 결국 그 도시 전경의 근사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림을 앞에 두고도.

너무 멀고 너무 높았다. 저렇게 큰 제단화라면 원래 걸려있던 자리에 있더라도 너무 높고 멀어서 내 키 높이로는 어차피 제대로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제자리에 있는 티치아노의 성모승천(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 베네치아)이 내게 거듭 선사한 좌절감과 불만족의 일부가 그것임을 이제는 안다.


1시 반 예약 관람을 3시가 다 되어서 마쳤다. 40분쯤 봤을 때, 피로를 의식했다. 유난히 가혹할 정도로 좁은 KLM 이코노미석에서 그래도 살아보려고 5만 원 돈을 주고 복도 측 자리를 샀다. 망할 전쟁 때문에 2시간은 더 길어진 비행을 감당하기 위해 그래도 잘 수 있는 밤 비행기를 골라 밥도 마다하고 10시간쯤 스스로를 재우며 날아온 13시간 50분의 피로였다. 아직도 처음 도착하는 도시에서는 긴장하는 여행초보가 처음 겪는 공항과 기차 시스템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뇌와 몸을 가동한 지 9시간 만이었다. 호텔 체크인 시간이 되었으니, 땀에 절은 느낌이 나기 시작하는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두 가지라면 몽롱해지는 정신을 잠시 반짝하게 만들 수는 있으리라. 반짝할 필요가 있었다. 4시 반 관람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두 번째 약속 시간에 다시 제단화 앞에 섰다. 조금 덜 더러운 기분으로. 샤워가 북돋은 기운으로 몇 시간 전보다 쉽게 그림에 다가갔다. 멀다고 불평은 했지만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요소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림은 한눈에 보이는 것 같지만 단숨에 파지 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닌 것 같다.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 오래 자세히 곱씹으면서 보고 다시 보는 보람이 있다고 그림을 보는 행위를 거듭할수록 확신하게 된다. 물론 그건 시나 소설, 에세이, 음악, 영화 전부에 해당하는 진술이지만. 다만 4시 반 관람은 해가 지는 시간, 조도가 낮아졌고 역시 그림은 아침에 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날이 맑은 오전이어야 할 것이었다.

5시 10분이 되면 직원이 문을 닫아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그림 정보를 동행에게 읽어주는 한 관람객에게 방해가 된다며 점잖은 목소리로 옳은 말을 하며 차갑게 면박을 주던 한 아저씨 관람객이 면박 뒤에 곧 이런 팁도 주는 걸 옆에 있던 나도 우연히 들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나도 은근히 문 닫기를 기다리면서 그림 앞을 서성이고 있었지만, 저 말을 듣자 마음이 구체적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예정대로였다. 5시가 좀 지나자 직원분이 오셔서는 이제 그림을 닫는다고 하고 버튼을 눌렀다. 기다리고 있던 여남은 명의 관람객들은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봤다. 믿음이라고는 없는 내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교황이 나타나도 이보다 성스러울까 싶었다. 천천히 오른쪽 상단 이브 쪽 문이 닫힐 때, 우리는 정말 잠시 숨이 멎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문이 닫히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가브리엘과 성모가 한 개 시퀀스로 이어진 모습을 마침내 목도했다. 낮은 조도와 너무 먼 거리 때문에 아름다울 게 분명한 수태고지는 어슴푸레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늘 관람이 끝났다며 희미하던 조명을 끌 때까지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높은 확률로 이 순간의 기억은 닫힌 문 안쪽의 양보다 신비하게 오래 남을 것이다. 희끄무레하게만 겨우 모습을 드러내주었던 그날의 수태고지 속 두 인물과 그 뒤 도시 전경보다 훨씬 선명하게.


그림을 둘러싼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는 다음과 같은 트리비아가 있다. 이날 10시 반 슬롯이 오전에는 유일하게 예약 가능하게 남아있어서 나는 아싸! 하는 마음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 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푸시 알람에 성 바보 성당이라는 말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불길함은 충분히 감지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전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제단화를 볼 수가 없는데, 일종의 오류로 10시 반 슬롯만 예약 가능하게 열려 있었다는 설명과 함께, 이날 개관은 오후 1시 반이며, 원한다면 이 티켓으로 이후 시간에 방문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메일이었다. 누가 봐도 (시스템) 담당자가 썼을 법한 메일이었고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또한 일어날 법한 오류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겠는가. 얼굴도 모르는 세계 IT인들이 때로는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편적인 오류를 통해서.

그렇게 나는 1시 반 예약에 맞춰 이미 약간 좀비가 된 상태로 성당에 들어갔다. 믿을 수 없이 긴 줄이 있었다. 예약 시스템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긴 줄이었다. 거기에는 흰머리의 어르신 세 분이 계셨고 한 분 목에는 자원봉사자라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이십 분쯤을 기다려 마침내 티켓 확인 담당자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서있을 때 다른 흰머리 어르신이 대기 중인 다른 예약자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에요. 너무 사람이 많아요. 맞아요, 겨울에는 훨씬 한가하답니다.


성모승천일이었다. 애초에 예약해 둔 시간에 성당 안은 신도들을 맞아 예배를 하고 있었다. 매우 고딕적인 높은 건물 안에는 어디인지도 모를 위치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성가가 들렸다. 아베 마리아. 누구의 어떤 아베 마리아인지는 모르지만 아베 마리아가 천사들의 합창처럼 신비롭고 성스럽게 들려와 한참 문간에서 소리를 듣고 있었다.

먼 길을 가게 한 욕망, 아름다운 그림에 대한 내 시각적 기억은 내 바람과 달리 금방 휘발될 것을 안다. 나는 벌써 성모의 가녀리고 부드러운 손과 그 손에 들린 책을 감싼 아름다운 천의 색을 거의 잊었다. 확실히 보지 못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 겨울에, 아마도 여기보다 훨씬 더 추울 게 분명한, 그래서 내가 괴로워하거나 불평할 어느 겨울에 다시 보러 오길 벌써 마음으로는 기약한다. 가능하면 다른 행사가 없는 맑은 날 오전에 닫혀 있는 제단화 위쪽에 밝게 빛나는 창백한 수태고지를 먼저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그림이 열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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