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성모자상, 성모성당, 브뤼헤
브뤼헤에 있는 미켈란젤로 성모상 관람을 계획하다 좀 놀랐다. 미켈란젤로 작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간 제법 봤다고 생각했는데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겨우 떠오른 이미지는 우피치에 있는 도니 톤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전부 회화 아닌가. 내가 천장화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미켈란젤로가 알면 경을 칠 일이다. 자기 정체성을 (회화보다 우월한 예술을 하는) 조각가로 분명히 한 인물이었으니까.
야단맞기 직전 떠오른 조각상이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있는 피에타였다. 생애 막바지 만들었다는 미완성작. 죽어 갈지자로 늘어진 예수 몸을 성모와 막달라 마리아가 양쪽에서 지탱하고 위에서는 니고데모가 굽어본다. 작업 중 예수 왼쪽 다리가 부러지자 분노한 미켈란젤로가 때려 부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오늘날 보기에 예수의 남은 다리는 윤내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거나 거의 끝난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이 먼저 생각난 건 우연이 아니다. 나는 미켈란젤로 조각 중 이 피에타를 가장 좋아하니까. 인물들이 이루는 구도가 유기적이고 균형감 있기도 하지만 죽은 예수가 조형적으로 무척 아름답다. 예수 몸의 형태는 내가 본 미켈란젤로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더는 중력을 이겨낼 힘이 없는 몸이 무너져 내리면서 사지가 제각각으로 뒤틀려 복잡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라오콘과 토르소 같은 고대 그리스 조각을 모범으로 삼았던 이 남자는 이상적인 인간 육체와 그 육체의 근육 움직임을 거의 해부학적 정확도로, 때로는 정확을 넘어 극대화해 구현해 내는 데 늘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형상을. 살아있는 인간에게서 기대하기 어렵지만 죽은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 자세를 통해 미켈란젤로가 오래 추구해 왔을 그 자신의 예술이 매우 원숙한 지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다른 인물들처럼 여전히 근육질이지만 도나텔로의 인물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비교적) 마른 몸은 근육 형태와 움직임을 더 선명하게 한다.
예수가 아름다움을 맡고 있다면 작품에 묵직한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는 니고데모다. 희생양 예수도, 그런 운명을 타고난 아들을 둔 성모도 아닌 니고데모 말이다.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으로 재현했다는 설이 있는 이 인물에는 미완성임을 분명히 하는 거친 자국이 뚜렷하다. 그러나 그것이 별로 상관없다고 느껴지게 하는 힘이 이 작품에는 있다. 22년에 다시 박물관을 찾았던 건 무엇보다도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때문이었지만(도나텔로야말로 내 최고의 조각가다), 못지않게 이 작품이 그리워서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의 몇몇 미완성 작품은 묘하게도 그것대로 완결된 작품처럼 내게는 보인다. 피렌체의 피에타 다음으로 떠오른 작품, 밀라노에 있는 론다니니 피에타 역시 미완이다. 조각가가 죽기 직전 작업했던 마지막 작품들 중 하나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22년 겨울 내가 만나러 갔을 때, 이 조각은 스포르체스코 성 한쪽 조용하지만 결코 좁지 않은 공간에 혼자 있었다. 피렌체의 피에타보다 더 미완인 상태로, 서다시피 뒤쪽 성모에 기대려 했을 늘어진 예수의 하반신 다리 일부만이 형태를 갖춘 채였다. 미켈란젤로가 돌 안에서 보았을 예수와 그 어머니의 표정을 우리는 이제 알 도리가 없다. 오랜만에 사진을 보면서 어쩌면 미켈란젤로가 마침내 늙고 괴로운 성모를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두루뭉술한 실루엣에서 나는 의도한 추상처럼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혼자 뭉클해져서는 그 앞에 오래 앉아있던 기억이 난다(전시관을 너무 오래 찾아 헤매다 기운이 다 빠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훌륭한 감상자인 엄마에게 이 느낌이 통하지 않았던 건 흥미롭고 도전적인 다른 과제를 기획하게 한다. 엄마, 그거 별로였어? 같은 대상에 다른 의견을 교환하는 건 언제나 큰 즐거움이다.
그런 다음에야 겨우 다비드가 생각났다. 피렌체 아카데미아에 채광이 드는 유리 천장 아래 우뚝 선 이 잘생긴 남자애는 정수리에 심지를 꽂고 글 쓰는 내 쪽을 지금도 바라보고 있다. 역시 인상을 좀 찡그린 채다. 두상으로 요약한 초는 이 유명한 소년의 형상을 일반인들이 소유 가능한 형태로 재현한 수십 가지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유명한 손과 돌과 어깻죽지의 가죽끈을 360도 빙 둘러 그토록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경험 자체가 무척 신선했다. 그러자 그를 향하는 길 양쪽에 있던 역시 미완인 노예 연작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이 역시 완성된 현대 조각을 보는 느낌을 주는 정말 근사한 작품이다.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표현력이 미켈란젤로에게는 있다(과장되고 뛰어난 쪽으로 로댕이 떠오른다).
다비드도 그의 출세작이지만 진정으로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은 그다음에야 생각이 난다. 피에타. 반디니라든가 론다니니라든가 다른 수식이 붙지 않는 피에타는 그가 이십 대에 첫 번째 만든 바티칸의 피에타다. 미치광이의 테러 공격을 받은 후 복원된 이야기로 더욱 신화화된 듯한 이 작품이 대단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내게는 그다지 인상적인 작품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마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다 그 미치광이 놈 탓이다(물론 거리가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의외로 자주 생각하는 작품은 이 모든 위대함 이전의 미켈란젤로다. 작년에 피렌체에서 산토 스피리토 성당에 방문한 건 우연이었다. 거기 어린 미켈란젤로의 십자가형이 있는 줄 몰랐으므로 계획 밖의 조우였다. 이 작품은 (대리석이 아닌) 나무 조각이다. 내가 본 미켈란젤로 중 크기가 가장 작고 미숙함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작품 자체는 못나고 못생겼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선 한참 위에 매달려있던 예수 하반신을 나는 딱할 정도로 왜소하게 기억한다. 조형적으로 좋은 균형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쩐지 이 작품이 싫지 않다. 아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애착을 품는다. 그 이유를 명확히 하기 위해 다음 피렌체에 가면 다시 그를 보러 갈 것이다.
이외에도 로마 어느 성당 같은 곳에서 몇 개쯤 더 지나쳤을 것이다. 모세상이 있는 빈콜리 산 피에트로 성당은 네 번 로마에 가면서도 방문한 적이 없다. 다섯 번째에는 아마 찾아갈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성모상에 이르는 길은 물론 13시간 50분의 비행과 이어진 40분의 비행, 거기서 다시 1시간 반 기차여행을 더해 도합 열아홉 시간이 소요된 물리적으로 머나먼 여정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경험하고 감각한 미켈란젤로를 기억해 내고 생각해 보는 내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침내 브뤼헤에 있는 성모자상을 마주했다. 그러고 보니 살아있는 아들과 함께 있는 미켈란젤로의 성모는 처음 본다. 남아있는 그의 성모자상이 이 한 점뿐인지, 내가 덜 발견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모 마리아는 변함없이 뚱한 표정이다. 바티칸의 성모만큼이나 무심한 표정. 미켈란젤로의 성모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관람을 허용한 선은 이렇게나 멀고 뒷모습은 벽감에 가려져 있어 볼 수 있는 앞면을 최대한 다양한 방향에서(그러니까 좌우로 움직여가며) 바라보았다. 그래도 오른쪽에서 보면 모자가 서로 한 손을 잡고 있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인류 대부분에게 관습적인 친밀한 모자 관계처럼.
그런데 왼쪽으로 움직일수록 모자 사이는 멀어져서 할 수 있는 가장 왼쪽에서 바라보면 둘에게서 관계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거리감이 신기해서 한참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이 쇼윈도 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성모자상은 여기서 존경받고 사랑받고 있으리라. 주변을 장식한 생화가 오백살도 넘은 조각을 바로 지금과 연결해주고 있었다.
성당에는 예기치 않은 재미도 있었다. 모자상 근방에 있는 회화 '엠마오에서의 만찬'이다. 그림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카라바조 작품을 모사했다는 것을 모를 수 없도록 그려져 있었다. 구도 전반도 그렇지만 탁자 위 정물, 무엇보다 관람객 오른쪽에 있는 순례자의 얼굴이 똑같다. 심증을 갖고 안내를 읽으니 역시. 당시 카라바조 그림을 이미 봤던 화가가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렸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15세기 이후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네덜란드 화가들의 교류는 생각보다 폭넓고 일반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미술관 여행마다 외우다시피 읽게 되는 세계 미술관 여행 시리즈는 아마도 이탈리아 출판사 기획으로 출간된 것을 번역한 듯싶다. 피렌체와 베네치아뿐 아니라 런던과 파리, 암스테르담과 베를린 등 세계적인 미술관의 주요 작품이 (아마도 대부분) 이탈리아 저자들에 의해 해석된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매우 특별한 개성처럼 내게는 읽힌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파리 루브르,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베를린 국립 회화관은 15-6세기 이탈리아 회화들을 많든 적든 소장하고 있으므로 이들 작품 설명에서 이탈리아 미술사의 어휘와 진술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재미있다. 게다가 작품들이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탈리아) 그림들이 이후 유럽 회화사에 미친 영향이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드러난다. 클로드, 푸생 등 17세기 유럽에서 미술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탈리아, 특히 로마에 가보고 싶어 했다는 사실 같은 것을 확인하는 게 재미있었다. 저자가 꼭 이탈리아 인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럽) 회화에 15세기 이탈리아가 끼친 영향을 나는 이런 방식으로 실감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읽고 있는 암스테르담 국림 미술관 편에서는(그렇다, 다음 일주일 휴가가 생기면 암스테르담에 갈 것이다), 15세기에 이미 플랑드르-네덜란드 화가들이 이탈리아를 여행하거나 여기서 견습생 생활을 하면서 이탈리아 화가들과 상호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개별 그림의 매우 구체적인 부분을 통해 논증에 가깝게 서술된다. 정말 인상적이다. 이렇게 그림을 읽는 방식이 내게는 새롭기도 하고 그림들 사이의 연관 관계를 만들어주기도 하므로. 이 이야기들이 요즘 내 출퇴근길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브뤼헤에 도착했던 날 오후 3시까지 내내 흐렸다. 해가 없었고 회색 구름이 덮은 근사한 날씨였는데, 반팔을 입은 나는 추워서 스웨터라도 하나 살까 다섯 번쯤 고민했다. 주변에는 긴팔 입은 사람들이 흔했다. 8월 16일이었다. 긴 니트 한 장은 이번 여행가방에서 빠뜨린 유일한 물품이었다. 여름을 선선하게 지내기에 훌륭한 도시임을 확인했지만 다음에는 가을에 방문하고 싶다. 짐은 좀 더 무거워지겠지만 이 도시는 가을이 멋들어질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이 도시를 방문하면 고민 없이 도시 입구에 자리한 성모 성당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멀리 추운 곳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성모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러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