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0월 31-11월 2일
너는 고향이 어디니?
올해 아빠가 한 가장 신선한 질문이 될 것이다. 아빠는 덧붙였다. 꼭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알지? 힘든 일이 있거나 할 때 마음이 떠올리는 곳, 돌아가는 곳.
아빠의 답은 들을 필요도 없이 확실하다. 강원도에 인접한 충북 제천의 산골마을. 그가 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 ‘고향’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에 완전히 부합하는 물리적 장소다. 달리 말하면 전쟁 때 잠시 피신하러 마을에 온 피난민 처녀가 어떤 운명에서인지(그 운명의 성격은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맥락에 따라 낭만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원망스러운 것이 되기도 한다) 동네 총각과 결혼해 눌러앉게 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이십몇 년쯤 아빠와 그 형제들을 낳고 기를 동네.
그 집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어. 고향에 아직도 있는 자기가 태어난 집에 대해 요즘 아빠가 부쩍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집에서 태어난 사람들. 일곱이나 여덟쯤 되었을 아빠와 그 형제들. 그들의 아버지, 두 작은 아버지와 고모. 또 그들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 아빠 작은할아버지의 자녀 셋, 나는 이름과 얼굴을 정확히 연결하지 못하는 이제는 너무 먼 그 친척들도 아빠에게는 같은 집에서 태어나 같이 살던 가까운 가족이었다고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서 죽었어. 아빠의 레파토리는 아름다운 대구를 이룬다. 아빠의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어려서 죽었다는 우리 할머니의 어린애 서넛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가 좀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기억력 좋은 그녀가 잊었을 리 없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고 죽으며 몇 세대가 살았던 집과 마을을 떠난 건 아빠가 열일곱인가 열여덟 살 때였다. 남편이 젊어 죽은 후 사오 년 새 가세가 도리 없이 기우는 가운데, 그 촌에서 자식들이 크게 둘 수 없다고 결심했을 할머니가 시아버지 만류에도 마침내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긴 때였다.
그러니까 아빠는 자기 고향에서 이십 년을 채 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을의 지리적, 역사적 이력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마치 그 동네에서 몇 백 년쯤 살았던 사람 같을 때도 있다. 고향집에 대한 기억과 애정 역시 각별함과 유난스러움 사이 어디쯤 위치한다.
그런고로 칠십을 눈앞에 둔 오늘까지 아빠에게 집은 어쩐지 그 집 하나 뿐인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는 늘 집에 살았다. 우리가 가족으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일곱 개 집에 살았고, 그 이전에 그는 몇 개나 더 거처를 가졌을 것이다. 집뿐만 아니라 마을-지역도 그렇다. 제천 시내와 서울. 오십이 넘어서 직장 때문에 주 5일을 몇 해나 지낸 신탄진. 지금 살고 있는 도시 외에도 그는 이렇게 여러 곳에 산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지역과 집이 그에게 갖는 의미의 무게는 고향집과 마을에 감히 필적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그는 여전히 자기 눈앞에(만) 선명하게 펼쳐지는 자기의 고향집과 고향 동네를 그리고 그리워한다. 때로 그의 몸은 여기 나와 같은 집에 있지만 그의 생각과 마음은 그곳에 있음을 느낀다. 그는 자주 여기가 아닌 그곳에 있다.
엄마의 답은 좀 다를 것이다. 엄마에게는 답할 틈도 주지 않고 뽐내듯 정답을 맞히고 싶어 나는 좀 안달이 난다. 내가 보기에 엄마의 고향은 언제나 바로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그곳이다. 엄마에게도 원하기만 한다면 아빠 못지 하게 근사하게 묘사할 수 있고 많은 기억을 가진 물리적인 고향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이다. 마음 붙일 다른 시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 나는 이 고향을 자주 부러워한다. 정말 쿨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태어난 물리적 공간에 대한 애착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대학 때문에 떠나기 전까지 십구 년쯤 ‘고향’에 살았지만 엄마 아빠가 그곳을 떠나면 달리 찾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도시다. 피하고 싶은 나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부모님 집이라고 부르는 집을 떠난 이래 내 거처는 오래 임시였다. 흔한 일이다. 방 하나 짜리 월세 생활을 접고 방 두 개 있는 전셋집을 옮겨가며 산 세월도 십 수년이 되었는데, 내 집은 여전히 전진기지처럼 느껴진다. 고향에 애착이 없다고 하면서도 주말에 부모님 집 엄마 방에 가서야 깊은 잠을 잤다.
서귀포의 이 호텔은 내가 개발한 고향이다. 나는 이곳에 와서 깊은 잠을 자고 낮잠도 잔다. 많이 먹거나 먹지 않고 간만에 더러운 냄새가 없는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숨 쉰다. 운이 좋으면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는다. 걱정 없이 뒹굴 거린다. 엄마 목소리가 없는 건 언제나 아쉽지만 그런대로 야자수 이파리 나부끼는 소리와 파도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씻는다.
전혀 서운해할 사람이 아니지만 아빠에게 차마 이렇게 대답하지는 못하고 머뭇거리다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지금 여기가 견디기 어려울 때 내 마음이 숨어드는 하일랜드. 사실 제주뿐 아니라 여행에서 마주친 많은 은밀한 장소들이 상상 속에서는 모두 대체 가능한 내 고향이 된다. 그러나 여권 없이 당도할 수 있는 가장 먼 곳, 여기가 지금은 고향 같다고 생각하며 애착을 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