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암스테르담에 다녀왔다

25/12/23~12/29

by 만정

훌륭한 베르메르를 처음으로 발견했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놀라운 젊은 렘브란트와 늙은 렘브란트들을 잔뜩 보며 황홀했다. 태탕한 할스의 붓자국들에 짜릿했고 마침내 반 고흐의 훌륭함을 수식할 수사를 찾아내 적확하게 뭉클할 수 있었다. 고흐와 매튜 왕, 로비 윌리엄스로 이어지는 예술과 정신 건강이라는 주제 의식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반 고흐 미술관을 가진 도시에서 발전시키기에 합당한 주제라고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술을 좇아 간 도시에서 음악을 되찾았다. 콘체르트헤바우가 숙소 근처에 있을 뿐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젊은 지휘자가 연주하는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의 세헤라자데를 들었다. 대체로 늙은, 그러나 그 사이사이, 그들과 동행한 어리거나 젊은 관객들의 똑같이 들뜨고 흥분한 얼굴을 보면서 업계 종사자도 아닌 나는 클래식 음악은 죽지 않을 거라며 안도감을 느낀다. 연주 시작 전 다른 관객들에게서 느껴지는 흥분감은 내게 정말 큰 안도감과 기쁨을 주었다.

로마 관객들만큼 비비드 하고 볼드한 방식으로 화려하지도 않고 비엔나 관객들만큼 고전적인 격식을 뽐내지 않는 암스테르담 관객들의 조금 허술한 셔츠와 오래된 블라우스. 그게 이 도시 사람들의 ‘실용적인’을 보여주는 걸까? 혼자 흥미로워한다. 그 셔츠와 블라우스 위에 약간 비뚤게 달린 나비넥타이와 모조일 진주 단추는 낯선 콘서트홀에 들어선 여행자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준다.

고막뿐 아니라 온몸을 진동하는 음악의 파동이 익숙한 즐거움을 천천히 기억에서 끌어올린다. 연주자들과 같이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에는 고백하자면 지금의 음악소리에 집중하지 못한다. 연주하는 순간의 감각, 무대 위의 느낌, 이제는 거의 잊은 게 분명한 그 흔적에 어렴풋이 닿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경험의 감각, 상실감이 아련하게 되살아나면 나는 잠깐 울 것처럼 슬퍼진다. 그러나 동시에 영원히 온전한 관객으로서 공연 예술을 경험하지 못하게 할 내 과거에 감사한다.

흠잡을 데 없는 연주와 듣던 대로 훌륭한 연주장, 무엇보다 젊은 나이에 이미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젊은 지휘자에게 받은 깊은 인상(나는 영원히 이런 종류의 성공적인 커리어, 천재들을 부러워하려나보다. 피곤한 일이다)이 남긴 흥분은 물론 숙면에 해로워서 얕은 잠 사이사이의 기묘한 짧은 꿈들이 밤을 방해한다.

매일 콘서트홀 앞을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대가들의 연이은 연주 일정(임윤찬과 메켈레의 협연, 이자벨 파우스트의 슈만 협주곡,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회 등이 이미 2월까지 빽빽하다)은 그림이 아닌 음악을 위해 이 도시를 방문하는 꿈을 새롭게 창작해 낸다.

도시를 방문해야 할 이유는 더 있다. 이 도시에 도착한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는 너무 추워서 온 근육과 뼈들을 뻗뻗하게 만들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닐 수 없어 미룬 일 중에는 도시 관광이 있고, 운하 보트 투어도 있다. 충분한 일정이 한번 더 주어진다면 이 도시 도서관 OBA에서 하루쯤은 글을 써보고 싶다. 그 안에 속해보고 싶은 그런 건물이었다. 도서관 광이라면 대개 누구든 그러리라 확신한다.

물론 다음에 이 도시를 방문할 때에는 애초에 국립 암스테르담 미술관 RIJKS과 반 고흐 미술관을 두 번씩 예약하리라. 또한 도시에 있는 동안 매일 콘세르트헤바우의 콘서트를 보러 가리라. 할렘에 있는 프란스 할스 미술관과 크뢸러 뮐러 미술관도 가볼 것이다. 이 많은 일을 하기에는 열 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다는 여름이 좋겠다.


한 해 동안 영국에 보름, 파리에 열흘, 브뤼허와 겐트에 각각 하루, 암스테르담에는 엿새 있었다. 다 해낸 지금도 꿈같다. 그리고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지어지는 것이다.


괜찮은 인생이다. 사는 동안 내내 이 기억을 소중히 여기고 간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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