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크리스마스는 암스테르담에서 보낼 것이다. 1,700원을 넘긴 미친 유로 환율도 내 욕망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일생의 두 가지 욕망 중 하나가 최대한의 여행인 인간이 곧 나라는 견지에서 볼 때 올해는 인생 최대치로 욕망을 충족한 한 해다. 그 사실이 꿈의 실현, 순수한 기쁨과 성취감으로만 인식되지 않는 게 흥미롭다. 나는 내 욕망이 조금 거추장스럽고 버겁다고 느낀다. 돈이 많이 들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친다. 이런 걸 하지 않고도 삶에 만족할 수는 없겠니? 라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이 들려온 적은 없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스스로를 단속하기도 한다. 거침없이 욕망을 실현하는 데 왠지 죄책감이 든다. 이 다소 기이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죄책감의 기원이 되는 내 가치 체계의 일면은 대체 무엇일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 단속 혹은 자기 검열이 유의미한지에 대해서 내년에는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네 번째 유럽대륙행은 착실하게 예약되었다. 비행기, 숙소,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 현대 미술관. 내친김에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크리스마스 마티네도 예약한다.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한다는 1시간 15분짜리 콘서트는 다음 달 있을 메켈레와 임윤찬의 협연보다 비싸다. 한화로 환전한 6자리 숫자를 생각하면 도저히 결제할 용기가 나지 않는 금액을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손쉽게 치른다. 이 세계에서 돈쓰기란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얼마나 점점 더 쉬워지는지(모든 구매-예약 시스템의 핵심은 쉽고 간편한 몇 번의 클릭에 있다. 보안 같은 건 나 같은 개발자나 할 걱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임윤찬과 좀 더 낮은 가격은 내 일정이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걸 한다.
느슨한 일정으로 예약해 둔다. 실제 온도보다 체감 온도가 현저히 낮을 게 분명한, 해의 기운이 부족하고 습할 유럽 대륙 북쪽 해안에서 보낼 하루의 길이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 않기로 한다. 박물관이 천지인 도시에서 추운 시간을 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메켈레의 콘서트에 비할 바 없이 싼 콘서트 일정이 매일 같이 있는 것도 확인해 두었다. 헨델 미사곡이나 슈베르트 피아노곡과 시간을 보내는 게 지루할 리 없다.
가능하면 하루 이틀은 할렘의 프란스 할스 미술관이나 루벤스가 있는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성당,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방문하는 데 쓰고 싶다.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날씨와 내 에너지, 적지 않은 교통비 때문에 예약은 하지 않기로 한다. 비행기만큼 비싼 탈리스를 타지 않으면 그다지 쾌적하지 않은 인터시티 2등석에서 2시간을 보내야 할 안트베르펜행은 망설여진다.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루벤스의 명성을 확인하려는 내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느껴져서 아직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교통편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3시간 가까이 가야 할 크뢸러 뮐러 미술관도 포기하기 어렵다. 지금 내셔널갤러리에서 하고 있을 인상주의 특별전으로 작품이 좀 비어 있기는 하겠지만, 그 특별전 영상에 나는 그만 큰 감명을 받아 버렸다. 예술과 무관했던 한 사람(여성)이 예술 애호가가 되고 어마어마한 수집가가 되는 이야기에 나는 한동안 완전히 매혹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미술관은 어차피 어디서 움직여도 멀 곳이다. 언제나 지금 여기서 너무 멀 곳. 그러므로 이번에 가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할렘은 가장 실현 가능한 카드다. 여기 있는 프란스 할스의 그룹 초상과 몇 점이 보고 싶다. 예약해 둔 일정이 끝나고 정해도 늦을 건 없다(안트베르펜의 경우에는 늦을 수도 있다). 암스테르담 시내 구경도 하고 그렇게 힙하다는 요르단 구역 탐방도 해봐야 하며 보트도 타면서 생각해 볼 시간은 여전히 충분하다.
지금은 우선 28리터 백팩과 밤 비행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