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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7. 2021

38주. 와니와 준하(2001)

2020. 03. 22. by 만정

먼 훗날의 인류에게도 과거를 기억하고 평가할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2020년의 역사에는 코로나의 팬데믹이 반드시 언급될 터이다. 그러나 통제 불능에 가까운 이 자연재해 앞에서 우울하고 절망적인 인류의 사정에 상관없이, 기온은 오르고 해는 빛나며 목련은 보란 듯이 꽃을 피우고 있다. 자연은 인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우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미약한 인간인 나는 자연의 부름에 이끌려 마스크를 쓰고는 카페에 앉아 전염병 같은 것과는 무관한 봄의 글을 쓰기로 한다. 현실로부터 달아나려는 사람처럼.


물론 ‘와니와 준하’의 계절은 봄보다 여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내가 이 영화를 떠올리는 시기는 완연한 봄이다. 매년 4월이나 5월이면 계절의 의식처럼 ‘와니와 준하’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만화책을 거의 읽지 않고 자란 데다, 멜로나 사랑 같은 것과 그다지 어울리는 인간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충실한 순정만화를 사랑했다니, 게다가 그 사랑이 여전히 유효하다니. 그 사실은 마치 예외적인 나를 간직한 당혹스런 조각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사랑한 것은 ‘순정’과 전혀 관계없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할 때면 처음 떠오르는 장면이 늘 와니의 집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영화 속 와니의 춘천 집은 내게 드림 홈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춘천이 아닌 서울 후평동에 있었다는 그 오래된 2층 집에는 이미 늙은 나무, 꽃나무들이 담장을 따라 간소한 숲을 드리운 마당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커다란 앉은뱅이책상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마루에서 바라보는 그 마당이 비춰진다. 오래된 욕실, 작은 주방, 해가 잘 들고 평화로운 바람이 부는 안방의 창문과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나무계단. 나는 이 집을 얼마나 동경했던가. 할 수만 있다면 내 집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파트 분양권을 당첨받아 돈을 벌 멀쩡한 궁리를 하는 대부분의 서울시민 혹은 한국인들이 몽상가처럼 생각할 일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초록이 빛나는 이 집 마당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계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다른 이유는 아마도 음악일 것이다. 음악에 대해서라면 당신도 조금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 오래전, 그러니까 14, 5년 전쯤, 절판되어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된 이 영화 OST를 당신이 손수 CD로 만들어 내게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한 곡씩 파일을 구해 구웠을 것이다. 어느 해 생일 선물로 트윅스 미니 한 봉지를, 또 어느 해 겨울방학이 시작되어 헤어질 때쯤에는 늘상 입술이 갈라지고 터있는 나를 위해 립밤을 선물해주었던 당신이다. 호주에서 겨울을 보내던 해에는 퀸 트리뷰트 앨범을 보내주었고, 몇 해 전에는 몇 번인가 서핑을 신나 하던 나를 위해 서핑에 대한 책과 소중한 글을 사무실로 보내준 일도 있었다. 트윅스와 립밤은 고마움을 완전하게 표현하기 위해 남김없이 먹고 써버렸지만 나머지 선물들은 아직 내 방에, 나와 가까운 곳에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영화의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아직도 가끔 한 곡씩 찾아 듣곤 한다. 이제는 전처럼 전체를 다 듣는 일도, 리사 오노의 ‘I Wish You Love'나 오리지널 스코어를 찾아 듣는 일도 거의 없지만, 피터 폴 앤 매리의 ’Gone the Rainbow'나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갑작스럽게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과거에 존재했던 나라는 인간을 기억하게 한다. 특히 슈베르트 즉흥곡은 와니의 기억 속 가장 치명적인 위치에 자리한다. 음악처럼 아름다운 메타스퀘어 길 위에서 와니는 자신에게 단 한순간 진실해지는데, 바로 그 순간 비극적인 사고가 벌어진다는 대단히 순정만화적인 시퀀스다. 극의 내용과 대조를 이루는 이 음악은 단조의 순간에도 달콤한 꿈같은 아련한 느낌을 심어준다.


영화에 대해 다시 생각할 때 놀라운 점은 와니에게 있다. 와니는 답답하리만치 묵묵한 성격이다.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겉보기에는 마음의 동요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영화 전체가 그 마음에 일어나는 동요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런 그가 만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남자와 동거를 한다. 금지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일을 그렇게 묵묵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는 사실이 늘 내게는 퍼즐이었다. 영화적 현실에서 동거는 금기가 아니었을까? 영화나 원작 만화가 제작된 시기는 지금보다 훨씬 개방적이어서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걸까? 그러다 지금의 나 자신을 생각해보니 조금은 설명이 되는 것도 같다. 남들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한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사람들이 놀랄 정도의 과단성을 발휘하는 그런 인물이었던 건 아닐지. 묵묵한 성격 속에 숨겨놓은 마음이 드러나는 방식은 서툴고 거칠어서, 그 마음을 드러내고 나면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지. 한편, 늘 뛰어난 미모로 상큼하고 또릿또릿한 도시 여성을 연기하던 김희선이 외모도 성격도 묵묵하고 답답한 와니를 연기할 때 본연의 분명함이 튀어나오지 않을지, 내 마음이 조금은 조마조마했던 것도 같다.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오랜만에 보면서 새롭고도 놀라운 발견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정은 배우의 출연이다! 그렇다. 영화 ‘기생충’의 바로 그 배우 말이다. 영화사에서 일하는 준하의 선배 역할이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늘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영화와 톤이 맞지 않는 단역배우처럼 불편해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18년 전 일일 뿐이다. 오늘날 너무나 유명해진 배우의 이런 모습을 발견해내다니. 소풍에서 보물 찾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되어 혼자 웃는다. 반복해서 영화를 보는 자가 가끔 받을 수 있는 보상이다. 따끈한 햇살과 파란 하늘에 잠시 기분이 좋아진 흔적은 오늘, 여기에 남겨진다. 역시 일요일엔 영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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