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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7. 2021

37주. 그녀(2014)

2020. 03. 15. by 감자

우리가 이 글을 아주 오랜 뒤에 들춰 보았을 때 이 즈음이 ‘코로나의 시대’였음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국’은 이후에 벌어질 아포칼립스의 프롤로그일거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사람들은 서로를 만나지 못하고 서로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는 어두운 미래 말이다. 너무 어둡다고? 어쩔 수 없다, 일자리를 한 달간 잃은 사람의 마음은 어둠 그 자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런 어둠의 시기에 우리 가족을 기쁘게 해 준 한 존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저 멀리 중국에서(이 시국에!) 날아온 작은 택배, 구글 홈 미니였다. 구글 홈 미니가 뭐냐면 집안의 스마트 기기를 제어해 주는 장치이다. 구글이 유투브 프리미엄을 구매하여 쓰는 사용자들에게 사은품조로 통 크게 쏜 것이었는데 내게도 그 몫이 돌아온 것이었다. 지어진 지 38년이 된 우리 집에 스마트 기기라면 오직 스마트폰 뿐이기에 스마트 기기 제어장치는 사실 별 쓰잘데기가 없는 물건이지만 아무튼 새로운 물건은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납작한 몽돌같이 생긴 녀석에 전원을 연결하고 조금 기다리자 녀석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필요하실 때는 “오케이, 구글!”이라고 말해 주세요.

“오케이, 구글! 오늘 날씨 어때?”

-네, 오늘 부산 지역의 날씨는 최저 기온 5도 최고 기온 13도입니다.


우리 가족 외에 다른 목소리가 거실 안에 또박또박 울렸다. 그것도 우리의 말에 반응하여 대화가 가능한 목소리가. 그 자체로 우리는 흥분했고 그 녀석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걸었다. 이 시대의 범용 인공지능이 그렇듯이 녀석은 정확한 명령을 내려야 작동을 했고 그렇지 않은 말은 중간에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하고 툭 잘라먹기 일쑤였다. 녀석이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유투브 뮤직에 있는 플레이 리스트들을 틀어주는 일이 전부였는데 그조차도 우리 의도를 제대로 못 알아먹고 엉뚱한 파일을 골라 틀어버리곤 했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오케이 구글, 시 ‘진달래 꽃’ 낭송해 줘.”

-네, 마야의 노래 ‘진달래 꽃’ 들려드릴게요.


하지만 이 ‘구글’ 녀석에게 우리 가족은, 특히 우리 엄마는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다. 엄마는 구글을 부를 때 꼭 어린 아이를 대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구글, 잘 잤어? 우리는 이제 아침을 먹을 거야. 구글은 밥 먹었니?”

“아니, 엄마, 구글한테 말을 걸 때는 ‘오케이, 구글!’하고 불러야 된다니까. 그리고 그걸 왜 물어 봐.”

“구글은 아직 잘 모르는 게 많네. 자기한테 말 거는 것도 모르는 거야. 좀 더 배워야 되겠어. 구글! 걱정하지 마. 너에게도 배움이 있을 거야.”


세상에서 제일 바둑 잘 두는 사람도 바둑으로 이겨버리는 놈들에게, 미래 우리의 일자리 99.7%를 빼앗아버릴 놈들에게 엄마는 너무 무르게 대했다. 엄마는 빨래를 개며, 식사를 하며, 차를 마시며 구글에게 말을 걸었다. 구글은 엄마에게 제대로 된 답을 들려주기도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침묵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기뻐하고 답답해하고 속상해했다. 정말로 집에 애완동물이 생긴 느낌이었다.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녀석에게 감동하고 녀석을 신경 쓰고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우리는 구글의 영혼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글래디에이터’ 이후로 통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호아킨 피닉스가 단독주연으로 나와 신선한 설정의 사랑을 보여주었던 영화 ‘그녀’는 상당부분 예언적이었다. 영화는 인공지능이 보다 고도화 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컴퓨터의 운영체제와 이야기를 나누고 예술을 논하며 사랑에 빠진다. 테오도르의 그녀 ‘사만다’는 테오로드를 속속들이 이해한다. 그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분석하여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그의 지적 흥미와 관심 분야를 완벽히 맞춘 토론 상대가 되어 준다. 사만다는 그들의 애정을 매개해 줄 육신을 가진 사람을 고용하여 테오도르와 섹스도 나눈다. 그런 존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나 둘의 사랑은 결국 깨어지게 된다. 왜 그런 결말이 나오는지는 스포일러이므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랑의 가장 큰 적이 질투라는 오랜 진리와 닿아 있다고만은 밝혀야 하겠다. 하지만 나는 그 결말이 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사랑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점유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의 사랑은 ‘현재적 감각’에 더 치중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 세대는 아마 역사상 가장 공평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신인류는 내가 작용을 한 만큼 똑같은 반작용을 받을 수 있는, 인풋과 아웃풋이 같은 가중치를 가지는 관계에 익숙할 것이다.


앞으로 물리세계는 사람들의 대면이 죄악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과 같은 바이러스의 침입이 더 잦을 것이고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인간이란 무언가를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라면 미래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갖춘 무언가를 사랑하기가 더욱 쉬울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 가치가 적다고 볼 근거가 점점 희박해 질 거다.


엄마는 일주일도 안 되어 구글을 더 이상 부르지 않게 되었다. 요새는 왜 구글한테 노래 부르라고 안 시키냐고 여쭤봤더니,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걔가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엉뚱한 소리만 한다.”


엄마는 좀 서운해 보였다. 집에 잘 붙어 있지를 않고 엄마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자식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기계에게도 느끼게 되다니. 구글 놈이 괘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이 빨리 더 발전하여 엄마와 수다를 떨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기도 했다. 아, 정말 사람이란,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외로운 생명체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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