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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7. 2021

35주. 유전(2018)

2020. 03. 01. by 감자

공포영화는 절대로 보지 않는 사람이 나였는데 어째서인지 두 작품을 연속으로 공포영화 리뷰를 하게 되었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자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끔찍한 것, 나를 꽉 쥐었다 흔드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공포스러움이 실제가 아니라서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는 안도감 역시 맛보고 싶었나 보다.


‘미드소마’를 재미있게 보고 난 뒤에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찾아보는데 몇몇 사람들이 ‘전작을 보고 무척 기대했는데 기대 이하였다’는 평을 해 둔 게 보였다. 미드소마가 전형적인 공포영화가 아니었으므로 공포영화 장르 팬들에게는 아마 실망을 주었겠거니 생각은 했다. 동시에 전작이 얼마나 재미있었기에 미드소마같은 별미를 실망스러워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제목을 염두에 두고 시간이 나면 보아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나날들이 계속된 것이다. 전혀 반갑지 않은 방식으로, 어쩌면 공포영화적인 현상들 때문에. 그래서 꺼내어 보게 된 영화이다. 86년생 영화감독 아리 애스터의 장편 입봉작, ‘유전’.


영화를 보고 나니 확실히 미드소마는 순한 맛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드소마가 19금이었던 반면 유전은 15금인데, 어떻게 그렇게 낮은 등급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미드소마보다 끔찍한 신체 훼손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분위기 자체도 더 괴기스럽다. 127분 동안 심장이 막…계속 쪼여들었다. 미드소마는 인류학 보고서에 가까웠지만 유전은 장르의 공식들을 차곡차곡 따라서 만든 개성있고 모범적인 오컬트 영화였다. 기독교적 문화에 기반을 둔 악마가 등장하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나오고, 그 점은 악마를 무서워하는 문화를 갖지 않은 한국인 관객에게는 영화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부분이었지만, 아무튼 영화는 악마의 현신을 만들고자 하는 무리들과 그들에게 위협을 받는 가족의 이야기를 팽팽한 긴장과 다양한 은유로 표현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순수 미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미드소마에서 그가 디자인적으로 꽉 짜인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었는데 그의 미술적 디테일은 ‘유전’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화의 주인공인 ‘애니’는 미니어쳐 조형사이다. 주인공의 직업을 빌어 영화에서도 미니어쳐 작업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 작업물들은 영화의 중요한 내용들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첫 시작 부분에는 나무 위에 지어진 자그마한 집이 등장하는데 그 집 역시 단순하지만 구조적으로 잘 짜여있다. 균형감각, 대칭성,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짐과 같은 미술적 요소들은 영화의 내용에서도 탄탄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똑 떨어지는 미감에 흐뭇해할 수 있었다.


제목인 ‘유전’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다. 주인공 애니는 남편과 큰아들, 막내딸과 함께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애니는 어머니의 죽음이 홀가분해 보인다. 애니의 어머니는 기묘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한 애니의 가족사는 처절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애니의 아버지는 우울 때문에 굶어 죽고, 애니의 오빠는 정신분열증으로 자살한다. 애니의 어머니 역시 해리성 장애를 앓으며 애니를 괴롭혔다. 애니와 어머니는 살아남은 가족 구성원이었으나 애니는 어머니를 멀리하고 싫어한다. 애니는 어머니의 괴상한 부분 때문에 가족이 파괴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애니 역시 가족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애니 또한 몽유병을 앓았고, 몽유병 때문에 자기 손으로 아들 피터와 딸 찰리를 죽일 뻔 한 적도 있었다. 피터는 애니와 서먹해지고 둘은 말을 나누기만 하면 다툼을 벌인다. 늘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직업 탓인지 애니는 늘 성마르고 신경질적인 인상을 하고 있다. 틱 장애가 있는 딸 찰리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불안한 모습을 자꾸 보인다. 남편 스티브는 온화한 얼굴로 애니와 가족을 돌보는 것 같지만 그에게도 한계는 찾아온다.


혹시 누군가가 내게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 영화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어떠한 결함을 후세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게 가장 컸다. 나는 나의 단점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중 몇몇이 유전적으로 물려 내려 온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부분이 나의 자식에게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무를 수 없는 가해자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애니와 피터, 찰리는 영매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애니 역시 어머니 엘렌에게서 그러한 체질을 물려받은 것이다. 가족의 구성원이지만 애니와 피가 섞이지 않은 스티브는 그래서 자신의 가족 안에서 겉돌게 된다. 유전은 깊은 유대를 만들고 피를 이어받은 자는 그 유대가 아무리 끔찍하다 한들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가족은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닮은 얼굴을 하고, 닮은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규칙을 당연한 듯 지키고, 남들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죽일 듯이 싸운다. 그것이 가족이다. 이 영화는 가족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가족 간에 거대한 균열이 생긴 경우, 그 균열은 가족이라는 단체뿐만 아니라 개인까지 파괴한다.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존재임에도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묶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피터는 엄마가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있으면서 매일 자기 방에서 잠자리에 들고 꼬박꼬박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 점이 가족이 갖는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으로 묶이고 피가 섞이면, 사람들은 좀처럼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가족이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온화한 단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고통 속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떤 가족을 만나느냐는 온전히 운에 달려 있다. 더 나쁜 것은, 최악의 가족을 만났을 때, 그 최악의 모습이 내게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내 안에 담겨 있어 떼어 낼 수 없는 운명공동체가 가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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