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정 Mar 27. 2021

33주. 미드소마(2019)

2020. 02. 16. by 감자

예전에 당신이 말을 해 주었는지, 수업 시간에 들었는지, 책으로 읽었는지 출처는 분명하진 않은데, 인류학 공부를 하던 학기에 ‘머리 가죽 사냥’을 하는 부족과 그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일화를 알게 된 적이 있었다. 머리 가죽 사냥이란 말 그대로 사람을 죽여서 희생자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부족민들은 그 풍습을 공동체가 입은 슬픔과 고통을 상쇄하기 위한 극도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합리적 서구 세계에서 온 연구자는 그 풍습을 문명화되지 않는 부족의 야만적인 문화로 생각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들과 라포를 형성한 이후, 연구자는 개인적인 격렬한 슬픔을 겪고 나자 자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머리 가죽 사냥’을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휩싸였다고 한다. 외부인이었던 연구자가 부족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이번 영화 ‘미드소마’는 이 에피소드와 거의 정확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석사 논문을 쓰고 있기까지 하다! 짧게 영화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대니는 최근 가족들의 끔찍한 죽음을 경험하고 고통을 받는다. 남자 친구인 크리스티안이 있지만 그는 대니의 고통을 버거워하고 멀어지고 싶어한다. 그러던 중 크리스티안의 친구인 펠레는 자신의 고향에서 하지제(미드소마)가 벌어진다고 크리스티안과 대니를 초대한다. 크리스티안은 어두운 대니를 피해 스웨덴에서 ‘남자들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또한 대니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초대에 응한다. 스웨덴의 소공동체인 펠레의 고향 호르가는 깊은 숲 속에 위치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하얀색의 전통 의상을 입는다. 북유럽의 민담 속에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한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환대하면서 환각제를 권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철학인 윤회설을 전파한다. 백야의 밝은 밤을 지내고 난 뒤 본격적인 미드소마가 시작되고, 외부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제의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영화가 악명이 높아진 것은 제의에서 보여주는 신체훼손 때문일 것이다. 밝은 낮에 벌어지는 적나라한 신체훼손은 느린 호흡으로 다큐멘터리처럼 연출된다. 그리고 그 끔찍한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호르가 사람들의 담담함과 무감정함은 이방인들의 공포를 배가시킨다. 호르가 사람들은 슬퍼하기도, 기뻐하기도, 당황하기도, 친절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들은 제의가 시작되는 순간 전체화된다. 호르가 사람들은 공동체가 가지는 ‘어떤 힘’으로 제어되고 단체에 함몰된다. 개인을 잃은 사람들의 시선들에 휩싸이는 것은 그 자체로 외부인에게는 거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계속해서 호르가의 끔찍함만을 보여준다면 이 영화는 징그러운 고어물로만 남았을 것이다. 사실 또 고어물이라고만 생각하면 그 수위가 그리 심하지도 않다. 하지만 영화는 대니라는 상처 입은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위안을 얻게 되는지를 보여주면서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일깨운다. 개인적 감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했던 부분은 초반부에 등장했다. 대니는 조울증을 겪고 있고 그의 동생 역시 중증의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 학업을 위해 가족에게서 벗어나 외지에 홀로 떨어진 대니는 동생을 계속 걱정하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된다. 동생은 자살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도 살해한다.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을 개인적으로 맞닥뜨린 대니는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수 없다. 그를 이해하고 그의 아픔을 제 것으로 느끼는 타인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대니는 숨을 쉬지 못할 만큼 슬퍼하면서도 크리스티안이 자신에게 질리고 자신을 떠날까 봐 걱정한다. 타인과의 어떠한 끈끈한 관계도 갖지 못한 자의 외로움은 점점 불안함으로 바뀌고 고통을 추잡스럽게 만든다. 그런 대니는 호르가에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제의를 통해 고통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녹여버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호르가의 사람들 모두가 비통에 차 울부짖는 가운데 혼자서 밝게 웃는 대니를 보면 그의 고통이 사라졌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가 완벽하게 끔찍한 존재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동체의 공존과 지속을 위한 제의는 반드시 무언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호르가의 사람들은 미드소마 내내 전통에 따른 제의를 진행해 나간다. 그 제의들은 모두 철저한 절차와 규칙에 따라 치러지는데 그 디테일이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이 즐길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북유럽 인민들의 무서움을 잘 보여주어서 영화를 본 스웨덴 사람들의 감상이 궁금했다.


모욕이나 배신이 개인에게 내려질 때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상실은 말할 것도 없다. 고통받는 개인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고통이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의 고통은 나와 가장 가까운 타인의 고통이 되고 인간은 그 자체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왜 그럴까? 고통을 겪는 사람이 늘어날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는 것은 인간이 외로운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면,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섣불리 공동체를 이용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고 바꿔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동체에 나의 자아를 의탁하는 것은 달콤하고 편안하지만 그 이후부터 나는 ‘나’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 가장 적당한 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그를 찾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마음의 숙제까지 얻게 되는 영화였다.

이전 07화 32주. 인 디 아일(20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