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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7. 2021

34주. 작은 아씨들(2019)

2020. 02. 23. by 만정

그레타 거윅을 처음 알게 된 건 ‘프란시스 하’에서였다. 우디 알렌의 ‘맨하탄’을 떠오르게 하는 흑백의 뉴욕을 배경으로, 댄서를 꿈꾸는 한 여성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통렬한(!) 이야기였다. 이동진의 말처럼 과연 캐릭터 영화의 전형으로 소개될만한 이 영화 주인공이 바로 그레타 거윅이었다. 이후 파트너인 노아 바움벡 외 다른 감독들과 작업한 영화도 챙겨보기 시작했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매기스 플랜’, 여기 소개하진 않겠지만 ‘우리의 20세기’ 같은 영화들에서도 나는 그 큰 체격만큼이나 존재감 있는 그녀를 꽤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그녀가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화 한 ‘레이디 버드’에서 드디어 감독으로 나타났다. 레이디 버드는 (당연히 일정 정도 감독 자신일 텐데)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며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대도시로 어서 빨리 떠나버리고 싶은, 스무 살을 앞둔 유별난 소녀였다. ‘레이디 버드’를 본 후, 1983년생인 그녀를 동시대 여자로서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신예 감독의 솜씨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런 그녀의 감독으로서 차기작이 ‘작은 아씨들’이라니! ‘작은 아씨들’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여성 독자가 있던가. 적어도 내게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처럼 말이다. 네 자매가 웃고 떠들고 울고 싸우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그 생생한 사건들을 나는 사랑했다. 네 사람의 서로 다른 캐릭터가 만나거나 부딪히는 순간들,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이제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기억에서 증발해버렸지만 ‘작은 아씨들’에 가졌던 호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시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그 호감의 기억은 격한 반가움으로 되살아났다. 게다가 이 영화에 참여한 면면들이 나를 더 기쁘게 했다. 시얼샤 로넌과 티모시 샬라메가 ‘레이디 버드’에 이어 등장해, 마치 그레타 거윅 극단을 이룬 것 같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슬픔을 간직한 한량에 실연당하는 역할로 티모시 샬라메보다 더 완벽한 캐스팅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웃음을 더한다. 요즘 한창 주목 받는 여배우 플로렌스 퓨, ‘결혼 이야기’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며 오십을 넘긴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듯한 로라 던, 말이 필요 없는 우리의 메릴 스트립과 그저 예쁜 엠마 왓슨까지.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가장 궁금한 건 각색이었다. 같이 영화를 보러갔던 엄마 말씀처럼 “영화화 하려면 3시간 분량도 부족할 것 같은” 원작소설을 어떻게 각색했느냐가 곧 영화의 관점이자 고유함이 될 터였다. 그래서 가족을 떠나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른 조의 시퀀스로 영화가 시작했을 때 신선함을 느꼈다. 영화는 자매들이 장성해 흩어진 이후의 시점을 현재로 삼고, 필요한 때에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대략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영리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위노나 라이더가 둘째 조 역을 맡았던 1994년 작은 원작소설처럼 충실히 연대기 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줄거리를 재배열하는 적극적인 각색을 통해 기존 리메이크작들과 차별화 되는 동시에, 고전에 새로움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점은 네 자매의 성격화였다. 자매지만 성격도, 원하는 것도 다른 네 사람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어렴풋하지만 1994년 작과 비교하면, 이번엔 모든 자매가 동등하게 자의식이 강한 것 같다. 특히 두드러지는 인물은 셋째 베스이다. 베스는 독자 된 입장에서도 마음이 아픈 손가락이다. 다른 자매들이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로 떠나갈 때, 삶을 마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착하고 마음도 몸도 약하기만 한 베스는 내게 1994년 작의 클레어 데인즈와 동일인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는 착할 뿐 아니라 소극적이며, 창백하게 죽음을 향해 가는 인물이었다. 반면 이번 작품에서 베스는 착하고 부끄러움이 많고 몸이 약하지만, 일면 단호하고 용감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분명히 아는 인물임이 부각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무엇보다 만족스럽다.


막내 에이미 캐릭터에 대해서는 각색자-곧 감독-가 매우 적극적으로 방어한 것 같다. 에이미는 늘 둘째 조와 맞서는, 철없고 고집 센데다 얄미운 막내 같았다. 그래서 어딘가 잘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이번 에이미는 조금 달랐다. 가난한 집안 형편, 경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여성의 현실, 그러므로 누군가는 부잣집 남자와 결혼해야 함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역할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화가가 되려는 열망을 실현하는 데 열심이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단호하게 포기하는 쿨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로리를 사랑하지만, 언니의 대체물이 되는 것은 거절하는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거의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런 멋진 언니를 창조해 내다니. 그레타 거윅 님, 대단하십니다.


한편, 나는 네 사람 중에서는 조가 나와 가장 비슷하다고 늘 생각했다. 여성스러움을 멀리하고, 자의식이 가장 강하며, 무엇보다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번 영화에서도 중심은 당연히 조이다. 그런데도 쓰다 보니 조에 대한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나를 당혹케 한다. 이것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너무 당연해서 언급할 이유가 없는 걸까? 아니면 나는 어느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 된 것일까?


‘작은 아씨들’에는 같이 연극을 하고, 클럽을 만들어 노는 어린 자매들의 사랑스럽고 즐거운 시퀀스들이 정말 많지만, 베스의 죽음처럼 지워지지 않는 실재하는 슬픔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 웃음 뿐 아니라 눈물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나는 완전히 예기치 못한 눈물을 흘렸다. 언니 메그의 결혼식 날, 언니가 자신만의 인생으로 떠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입이 나온 조는 마침내 이렇게 실토한다. 이렇게 언니가 떠나가고 내 유년이 끝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바로 그 장면에서 깨달았다. 나는 그 사이 완전히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지난 번 ‘작은 아씨들’을 읽거나 보았을 때와 달리, 나는 내 유년시절에서 완전히 떠나온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었나보다. 깨달음의 순간, 지배적인 감정이 슬픔이었다는 것은 당혹스럽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밀라논나의 말씀처럼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작은 아씨들은 어른이 되었고, 이후에도 기쁨과 슬픔으로 엮인 삶은 책 밖에서 계속 되었을 것이다. 나도 그녀들과의 즐거운 한때를 마음에 간직하고 내일을 향해 한 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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