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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7. 2021

42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

2020. 04. 27. by 감자

지난주 목요일에 엄마가 편찮으셨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부산히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는 내 아침밥을 차려 주시고는 조용히 자리에 다시 누우시더니 곧 구토를 했다. 열이 나거나 배가 아프거나 하는 것은 없었고 그저 머리가 너무나 어지럽다고 하셨다. 엄마는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나는 당황했고 마냥 등을 쓸어 드릴 뿐이었다. 엄마는 그 후로 몇 번을 더 토하셨고 눈을 꼭 감은 채로 가만히 자리에 누워만 있었다. 출근 시간이 임박했기에 집에 남아 자고 있었던 동생을 깨워 엄마의 상황을 말하고 현금을 쥐어준 뒤 엄마가 계속 편찮으시면 병원에 모시고 가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학원으로 가는 길 내내 머릿속이 뒤숭숭했다. 점심 무렵 짬이 나서 엄마는 좀 어떠시냐 동생에게 연락을 하였더니 괜찮아지셨고 식사도 하셨다는 답이 와서 한결 마음이 놓였으나, 일을 남겨 놓고 서둘러 퇴근을 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속이 계속 답답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인터넷 글 따위를 살펴본 결과 아마도 엄마는 이석증인 것 같았다. 딱히 이유도 없고 약도 없는, 노화의 한 증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석증. 끔찍한 어지러움증을 동반하지만 어찌 막을 방도가 없다고들 했다. 앞으로 간헐적으로 찾아 올 엄마의 고통을 상상하니 가슴이 쓰렸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하루 종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생각났다. 특히 길고 고즈넉한 강 위 기차 장면이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 장면은 이름을 잃고 환상의 장소인 대목욕탕에서 일하게 된 센이 자신을 도와주다 고난을 당하는 하쿠를 위해 목욕탕 주인 유바바의 쌍둥이 자매인 제니바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등장한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고요한 강물 위로 뻗은 기찻길은 무시무시한 마녀를 만나러 간다는 두려움마저 가라앉혀 버릴 정도로 평화롭다. 센은 자기 옆에 앉은 다른 길동무들을 조용히 쓰다듬으며 자신의 운명이 심판받게 될 곳으로 묵묵히 이동한다.


지브리 월드는 아름답다. 내가 본 지브리 작품들을 죽 떠올려 보니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붉은 돼지>, <귀를 기울이면>,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추억은 방울방울>, <반딧불의 무덤>, <on your mark>,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꽤 많다. 모든 작품들은 부드러운 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고 풍성한 자연의 모습이 반드시 중요하게 사용된다. 지브리의 작품들이 일본 애니메이션답지 않게 독보적인 대중성을 갖춘 이유로는 밝은 햇살 아래에서 드러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그려낸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잔혹하고 어두운 주제를 가진 작품들도 물론 있지만 모든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어떤 방식으로 건 드러낸다.


개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지브리 월드의 작품들 중 영화만으로는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고 대중과 평론가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나 역시 내가 본 지브리 영화들 중 최고작을 뽑으라면 이 영화를 고른다. 이 영화는 모든 씬들을 일러스트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미술적 완성도를 갖추었다. 애니메이션 치고는 긴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가졌지만 주인공의 목적이 명확하고 그를 돕는 인물들의 특징이 뚜렷하며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영화 내내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균질하게 가져간다. ‘인간은 탐욕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나이브한 주제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 영화보다 더 적절한 톤을 가진 작품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우리나라에 2002년에 개봉하였다고 하니 그때 보았다면 고3 때 보았을 텐데, 누구랑 보았는지 어디서 보았는지 같은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이건 좀 특이한 일이다.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원래 영화를 영화관에서 많이 보지 않고 영화관 나들이를 한다면 대개 친교적 필요에 의한 편이라서 어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면 누구와 언제 보았는지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 오직 하나 기억나는 건 나는 이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극장에 앉아 있었다는 점이다. 그때 느꼈던 행복감은 초여름 강바닥에서 건져 올린 반질반질해진 자갈돌을 만지는 것처럼 마음속에 꼭꼭 남아 있다. 아빠가 모는 차 뒷좌석에 구겨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영화 초반의 치히로의 불만 가득한 표정, 망해버린 테마공원 앞에 펼쳐진 별세계 같은 초원, 이름을 잃고 고된 노동을 하다가 하쿠가 건네주는 주먹밥을 먹으며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흘리던 센의 뒤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수국…….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장면은 앞서 말한 강 위를 달리는 열차 씬이었다. 나는 센과 함께 강에 비친 노을을 보며 영원히, 영원히, 그 철길이 세상 끝까지 닿아 있기를 바랐다.


센이 처한 상황은 판타지 그 자체이지만 그 애가 느끼는 괴로움과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그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의지,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정의로움은 현실에서도 높이 사는 가치들이다. 센은 온몸으로 환상적인 공간을 누비며 그 가치들을 획득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한다.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센은 훌쩍 성장하고 영화는 마지막이 되어 그 애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그 모든 행복함을 보고 있노라면 애상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 순간은 꿈이라는 것을,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은 실제로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초현실적인 아름다움과 행복은 귀중하다.


엄마는 그날 이후 아직까지 비슷한 통증을 호소한 적은 없었다. 스치듯 지나간, 한순간 컨디션이 나빠서 생겨난 일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 큰 변고 없이 평안한 나날을 계속해서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바람은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지브리가 보여준 아름다운 세계는 이럴 때에 빛을 발한다. 마음속에 새겨 놓은 아름다움은 현실이 괴로울 때에 약간의 틈을 만들어 준다. 그 틈으로 들어온 따스한 햇살은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다. 나는 그 힘으로 내가 겪고 있는 괴로움이 오직 고통만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그러면 잠시 괴로움을 잊고 일상을 살아갈 여유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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