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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morning Oct 06. 2015

내려놓아야 얻을 수 있는 것들

Clouds of Sils Maria

나이가 들어가면서, 응당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아직 몰라도 되었을 때가 내게도 있었지만 인생은 공평한 면이 있어서,

그땐 내가 가진 것들을 무기 삼아 능숙하게 휘두르는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가장 많은 상처를 내가 나 자신에게 입히는 식이었다.


'Clouds of Sils Maria (2014)'

 이 영화는 내가 좀 더 나이 들어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자라면 누구라도, 예민하게 반응할만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년 전 연극에서 매력적인 스무 살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노장 여배우가 이제 같은 연극의 다른 배역- 자살에 이르는 중년의 여자 역을 제안받는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배우 스스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다른 식으로 빛나는 법을 깨달아가는 줄리엣 비노쉬의 여정이 눈물겹다.


 간혹 과거 한 때의 영광을 잊지 못해 나이 들어서도 같은 말투와 차림새를 고수해 가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미안하지만 볼성사납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에 백 번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게 항상 제자리에 머문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경험치와 노하우가 지나온 세월만큼 쌓여가는데 어째서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지 않고 제자리일까?


스물세 살에

  " 모든 남자가 너를 좋아해. 왜 안 그렇겠어? 넌 어리고, 예쁘고 이렇게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라는 시샘 섞인 말을 삼십 대 중반의 언니에게서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그 언니가 부러웠다.

  "아뇨, 전 빨리 나이 들고 싶어요. 서른이 되면 이렇게 모든 게 불확실하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지는 않겠죠.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릴 수 있겠죠. 적어도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를 알긴 하겠죠."

그때 내게 아무런 노력과 고통 없이 주어졌던 젊음과 그에 부산물처럼 딸려왔던 어여쁨은 내가 힘들여 얻은 것이 아니었던 만큼 언젠가는 고스란히 반납해야 할 것을 나는 알았다. 그래서 불안했고,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서른이 넘은 나는, 여전히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지만,

그리고 나 역시 마냥 어리고 예쁜 여자아이들을 보면 짐짓 시샘이 나기도 하지만.

확실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은 사라졌다.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고,

무엇이 나의 무기인지 알고 휘두를 줄도 알게 되었다.


잃은 것만 바라보면

얻은 것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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