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내기

관계에 대한 결벽증

by Sundaymorning
"우리 사랑 이제 모두 끝났으면
만사를 끝내자, 아주 끝내자.
나, 지금까지 그대의 연인이었으니
몸을 굽혀 새삼스레 친구일 수야 없다."

헤어진 옛 애인과 친구가 되고, 이혼한 남편과 친구가 되는 것...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직 해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관계가 더 악화되기 전에 그대가 나쁜 사람이어 서가 아니라, 단지 내 애인이나 남편으로서 그 역할에 맞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이 성숙한 이별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하더군요. 처음에는 좀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만, 성숙이라는 말에는 동의했습니다. 만사를 끝내버리는 것, 깨끗이 구질구질하지 않게 끝내버리는 것, 이것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인간관계에서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한 사람씩 친구를 잘라 버린다면, 그러니까 "몸을 굽힐 수가 없어서, 아주 끝내버린다면"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봐줘라, 좀 봐줘,라는 말은 어머니가 제일 많이 쓰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서로 봐주니까 우리는 살아있는 거라고, 그런 게 가족이고 친구고 사랑이라고.

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중에서.


관계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 같은 거였다.

"All or nothing"

너의 전부가 될 수 없다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

애매모호한 관계 따윈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차라리 죽도로 미워하는 증오가 무관심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세상엔 흑과 백으로 극명하게 설명될 수 없는 갖가지 모호한 관계들과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감정을 정의 내린다거나, 장부 정리하듯 정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좀 봐주려고 한다.


몸을 굽힐 시간이다.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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