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최고의 컨디션을 가능하게 하는 수면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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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날 겸 견학 겸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들을 몇 군데 들렀던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다양한 메뉴와 양질의 식사가 가득한 구내식당, 개방적인 공간 설계, 자유로운 복장 등을 실제로 보며 부러움이 한가득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낮잠 휴게실은 시간이 없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이후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가 한국에까지 퍼져, 특히 코워킹 스페이스들을 중심으로 암막 커튼이나 안마 의자 등을 설치한 휴게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업무 중간에 낮잠을 잔다는 것이 마치 태만한 업무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있기도 하고, 상징적으로만 만들어 놓아 전체 인원 대비 너무 작아서 사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매일매일 빠르게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마켓 트렌드를 따라잡는데 필요한 지식을 학습하고 적용하고 성장해 나아가야 하는 스타트업에게 낮잠은 그리 쉽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이 오랜 시간 누적해온 삶의 패턴은 하루 주기 리듬으로 하여금 낮잠을 자야만 하게끔 형성되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지리적 위치나 고유한 문화 등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1-3시 사이에 각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원인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춘곤증, 식곤증이라고 하기에는 아직까진 뚜렷한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낮잠의 여부와 길이에 따른 결과를 측정한 실험은 낮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데 충분했다.
낮잠은 두 가지 측면에서 효용성을 가지는데, 첫 번째는 건강이고, 두 번째는 생산성이다. 하버드 대학교 공중보건대의 연구진은 낮잠 문화가 있던 그리스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본래 시에스타(낮잠 문화)를 일상적으로 누리던 사람들이 낮잠 습관을 없애고 6년 동안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 살펴보자, 규칙적으로 낮잠을 자 온 사람들에 비해 심장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37% 증가했다. 특히 직장인들은 이러한 정도가 더 컸는데, 이들의 사망 위험은 60% 이상 증가했다. 참고로 그리스에서 아직 시에스타가 남아 있는 외딴 지역 주민들은 평균 미국 남성보다 90세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이 거의 4배에 육박한다. 또 다른 실험에서도 낮잠을 30분 미만으로 자는 사람은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 치매 발생률이 1/7에 불과했고, 낮잠을 30분에서 1시간 사이로 자는 사람의 경우는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에 비해 치매 발생률이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실 창업가에게 심장병이나 치매 등과 같은 질병의 위협은, 중요하긴 하지만 당장의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솔직히 지금의 매출, 영업 이익, 고객 전환율, ROI 등을 달성하는 것이 그보다는 1,000배 정도 더 중요한 과업으로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창업가들에게는 낮잠의 건강적인 측면보다는 생산성에 관련된 측면이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낮잠은 생산성을 높인다. 낮잠을 통해 뇌의 수행 능력을 즉각적으로 개선해서 높은 생산성을 끌어낼 수 있다. 처음 보는 100개의 얼굴-이름을 매칭 하는 과업을 준 실험에서 90분간 낮잠을 취한 사람들은 낮잠을 자지 않은 사람에 비해 20%나 높은 성적을 보였다. 낮잠이 새로 획득한 정보가 뇌 안에서 증발되지 않고 빠르게 고정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더 나아가 90분이 아닌 20분의 짧은 낮잠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 항공 우주국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한 수면 연구에서도, 낮잠을 잘 경우 업무 수행력이 34% 향상되고 전반적인 각성도 역시 50%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미로를 통과하는 과제를 주고 과제 수행 중간에 낮잠을 자게 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을 비교해 보았는데, 낮잠을 잔 그룹의 수행 능력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뛰어났다. 흥미로운 점은, 낮잠을 자는 동안 미로와 관련된 꿈을 꾼 사람들과 낮잠을 잤지만 미로와 관련된 꿈을 꾸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로와 관련된 꿈을 꾼 사람들은 미로와 관련된 꿈을 꾸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미로를 통과하는 과제 수행 능력이 10배 정도 더 뛰어났다. 아직까지 그 원리가 정확히 분석된 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몰입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일에 대해 극강의 몰입감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일이 되고 일이 내가 되고, 삶이 일이 되는 그야말로 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다. 많은 창업가 분들이 공감하실 텐데, 이렇게 몰입을 하면 꿈에서도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즉, 주인 의식, 몰입감이 꿈에서도 일이 관련되도록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진정으로 몰입감이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낮잠의 혜택도 10배쯤 더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이렇게 낮잠의 혜택이 크다는 것을 현대 과학자들만 알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토머스 에디슨은 낮잠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았던 대표적인 사람인데, 외부에 말하기로는 잠을 매우 적게 잤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습관적으로 낮잠을 잤다고 한다. 그리고 낮잠을 잘 때에는 의자에서 자는데, 손에 쇠로 된 작은 볼 같은 것을 두세 개 정도 쥐고 그 아래 바닥에 쇠로 된 널찍한 것을 두었다. 잠에 들었을 때 몸에서 힘이 빠져 공을 놓치면 큰 소리가 나서 깨게 되는데 이때 순간적으로 든 생각들을 빠르게 노트에 적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잠의 창의적 효과를 직감으로나마 알았던 것 같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인 우사인 볼트도 경기가 열리기 전에 낮잠을 자고 뛰었다고 한다. 가벼운 경기가 아닌 올림픽 경기들에도 그 패턴은 똑같았는데 올림픽 결승전같이 큰 중압감이 있는 때에도 낮잠을 자고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곤 했다. 낮잠은 뇌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운동 기술 기억이나 근육의 피로도, 활력의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일매일이 위기이고 또 기회인 살얼음판을 걷는 스타트업일수록 낮잠에 관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낮잠 시간이 가장 적절할까? 안 그래도 바쁜데 낮잠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수면 과학자들이 제안하는 가장 적정한 낮잠 시간은 20분-30분 사이다. 20분보다 짧을 경우 렘이나 논렘수면의 수면 방추가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30분보다 길 경우에는 건강에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항공 우주국에서의 실험에서도 26분 정도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자료가 있다.
반면 일본 국립 정신 건강 의료 연구 센터에 따르면 하루 1시간 이상 낮잠을 잘 경우 치매 위험이 커지고, 유럽 당뇨병학회에서도 하루 1시간 이상의 낮잠은 당뇨병의 위험을 초래한다고 한다. 특히 치매 발병률에 관련해서, 1시간 이상의 낮잠을 잘 경우,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발병률을 보임이 드러났다. 덧붙여 30분 이상의 낮잠은 밤잠에 영향을 주기에, 가성비 좋은 낮잠 시간은 20-30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하루 업무 시간 전체와 비교해봐도 양적으로 그렇게 부담이 되는 시간은 아니다. 따라서 창업가 자신에게도 물론이지만 회사의 생산성을 위해서라도 조직 전체적으로 이른 오후 업무 중간에 짧은 낮잠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은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가성비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낮잠을 파워 냅이라고도 부르는데, 괜히 만들어진 표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