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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May 28. 2019

이왕 하는 1이라면

해야 하는 일 vs 하고 싶은 일 _02

(넋두리가 너무 구구절절하여 예상보다 글이 길어졌던 해야 하는 일 vs 하고 싶은 일 _01에서 계속...)



지난 글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해야 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얘기했다면, 이번에는 '만들고 싶은 것'(하고 싶은 일)에 관해 생각해볼까 한다.



이왕 잘 vs 때마침 vs 언젠가

'만들고 싶은 것'(하고 싶은 일)을 다시 대충 구분하면 세 가지다. 만들어야 하는데 '이왕 잘' 만들고 싶은 것, 만들고 싶었는데 '마침' 만들어야 하는 것, 그리고 당장은 딱히 필요가 없지만 '언젠가' 만들고 싶은 것.




'이왕 잘' 만들고 싶은 것

*앞서 말한 것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소극적으로 보자면) 만들 필요도 없는데 만들고 싶지도 않은 것을 만들지 않기 위한 과정이며, 동시에 (적극적으로 보자면)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을 이왕 잘 만들기 위한 준비단계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것의 요약
0. 이걸 아십니까? (고 스톱)
1. 왜 하는 거죠? (배경과 목적 확인)
2. '과일'이 맞나요? (작업 방향성 확인)
3. '귤'이 맞을까요? (작업 기대치 확인)
4. '오렌지'가 좋겠네요. (생각/의견 전달)
5. 레몬은 어떨까요? (추가 대안 제시)


그리하여 요청받은 일이 정말 해야하는 일이란 것이 확실해지면 아래와 같이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간다.

0.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직시하기)
1. 왜, 뭣 때문에 하는 거지? (공감하기)
2. 어디로 가기로 했었지? (되새기기)
3. 이러다가 잘 되겠는데? (욕심내기)
4. 이러다가 망하겠는데? (정리하기)
5. 방망이 깎는 중입니다. (완성하기)


0. 나는 나루토가 아니다. (현실 직시하기)

환영분신술을 쓸 수 없다면 몸은 하나요, 시간은 쏜살같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산적한 일 중에서 몇 번째로 중요한 일인가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것인지, 우선순위와 일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한다. ('나'에게 몇 번째로 중요한 일인지는 조금 다른 문제다. 여가시간이 아니라면 '팀'에게 정말 중요한 일에 쓸 수 있도록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자.)


1. 도비, 이건 정말 중요해. (공감하기)

'왜'라는 단어는 정말 귀찮고 때론 짜증 나는 질문이지만 꼭 필요한 녀석이다. 다른 이에게 들은 말이 아니라 나의 언어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작업의 배경을 이해하고 목적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는다면 '이왕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기 어려울뿐더러 '이왕 잘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어긋나기도 쉽다. (정말 납득이 안되면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싸움을 걸어보자. 아니, 그런데 정말 이거 왜 하는 거예요?)


2. 참, 어디 가는 중이었더라? (되새기기)

방향성은 심심해서 정한 게 아니다. 목적과 목표를 바탕으로 합의 및 결정한 방향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근본이 흔들리면 결과는 물론 과정과 노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정말 노선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명확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절대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만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정이 섞이는 것을 주의한다. 개취나 감정 기복이 심하다면 더욱 주의..)


3. 이러다가 잘 되겠는데? (욕심내기)

'이왕 잘' 만드는 것의 핵심이다. 앞서 결과물에 대한 최소기대치를 확인했다면 이번에는 온 세상 긍정이를 불러 모아 최대기대치를 떠올려본다. 꼭 그러해야 하는 것은 없다. 망상이든 공상이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결과를 최대한 크게 그린다. 작은 곁가지라도 좋다. 물론 목적과 방향을 무시하면 절대 안 된다. (뿌리를 뽑거나 큰 줄기를 꺾어놓고 곁가지를 아무리 붙여봤자 열매를 기대하긴 어려우니까.)


4. 이러다가 망하겠는데? (정리하기)

제때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이왕 잘' 만들고자 했다는 말은 핑계 혹은 헛소리가 된다. 최소기대치와 최대기대치 사이에서 실현 가능한 지점을 찾고 대강의 계획을 짠다. 우리의 일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다. 작업 사이즈와 기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부사항을 너무 많이 잡아놓으면 효율과 유연성에 (때론 완성도까지) 되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전부 망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솟아날 구멍을 만들자.)


5. *방망이 깎는 중입니다. (완성하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손 치더라도 완성도가 떨어지면 모두에게, 특히 나에게 큰 아쉬움이 남는다. 왜 매번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늘 하루, 한 시간, 1분이 아쉬워지는, 간절하게 미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에 디테일 챙길 시간을 남겨놓고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이왕 잘 만들고 싶지만 정말 모든 것이 폭망했거나, 애초에 기한이 너무 터무니없이 짧은 경우에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이 단계에 올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떠올리며 쓴 소제목인데, 그 작품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뒤늦게 주석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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