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
*주의
아래 모든 내용은 100% 개인적인 의견일 뿐, 원작자의 의도와 1%도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시즌2 - 에피소드10: 다시 그 자리로'에 대한 글이지만 은근히 다른 시즌, 다른 에피소드의 내용이 녹아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나 '브레이킹 배드'를 (볼 마음이 있지만) 아직 안 봤거나, 한참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분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읽어주세요.
'브레이킹 배드'는 매우 극적인 상황과 사건으로 가득 찬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대단히 일상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진 작품이다. 암은 그렇다 쳐도 마약 제조(및 판매)는 상당히 비현실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출 덕분에 작품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에피소드마다 언뜻 보기에 별 관련이 없거나 쓸모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아주 절묘하게 활용하여 인물들이 처한 상황, 감정과 심리 변화는 물론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까지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 사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기억이 많이 휘발되었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시즌2 - 에피소드10: 다시 그 자리로')에서 특히 많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장면과 대사를 몇 개 꼽아봤다.
'시즌2 - 에피소드10: 다시 그 자리로'는 월터의 집에 온갖 파편이 흩어져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의 정체는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밝혀지지만, 그전까지 반복 등장하는 만큼 하나의 결과가 아닌 다양한 메시지를 함께 상징하는 듯하다.
특별할 것 없는 주택에 폴리스라인이 둘렸다. 곳곳에 온갖 파편이 흩어져있고 경찰들이 현장을 (심지어 시체도) 수습한다. 뭔가 큰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쉽게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장면은 평범했던 한 가정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 현장 혹은 일상에 숨어든 범죄 현장으로 비친다. 마치 월터와 그의 가정에 벌어진 일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비행기 사고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추락한 곰 인형.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해(암) 기대한 것과 다른 상황(마약)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과 다른 사람이 돼버린 월터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불에 그을리고 눈알이 빠진 곰 인형은 월터에게 짙게 칠해져 지울 수 없는 범죄의 흔적과 현실을 바르게 볼 수 없게 된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인간성을 잃은 곰 인형은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물 위를 부유한다.
시체 2구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도대체 누가 죽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결국 주요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뭔가 더 많은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전체로 보자면 월터와 제시가 떠오르지만, 월터의 집이라는 것과 곰 인형의 존재를 봤을 땐 스카일러와 주니어를 상징하는 듯하다. 월터의 범죄로 인해 평온한 삶을 빼앗긴 대표적인 희생자들.
인트로에 이어 카메라는 침대에 걸터앉은 월터를 비춘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걷잡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월터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 치지만, 보잘것없는 그의 저항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그저 자신을 아프게 하거나 더 큰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자신의 멍든 주먹을 내려다보는 월터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허무와 고독, 후회와 자기 연민 등 복잡한 인물의 심리가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몸속 암세포는 80%나 줄었지만 월터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종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스카일러 역시 파티에서는 미래가 정말 기대된다 말했지만, 이후 테드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그녀가 파티를 제안한 이유는 그러한 현실을 부인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축하와 위로를 받으면서 말이다.
파티의 첫 장면에서 마르가리타 잔에 두르는 소금 조각은 월터가 제조한 메스와 겹쳐 보인다. 교묘히 일상 속에 깊숙이 숨어든 마약. 카메라가 줌아웃 되면서 집안 전경을 비추고 마약(소금)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한편, 마르가리타를 만든 것은 행크였는데 코앞까지 침범한 마약과 하이젠버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를 조롱하는 것도 같다.
자신을 위해 모인 사람들 앞에서 월터는 처음 암을 발견했을 때와 상태가 나아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스스로 같은 질문은 던졌다고 말한다. "Why me?" 그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물을 수밖에 없는 월터는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모든 것 앞에서 그저 억울하고 무력하다.
또한 이 질문은 월터의 이기적인 면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든 선택과 행동이 가족을 위한 것이라 말했지만 월터는 사실 철저히 자신을 위해 살았다. 차라리 그것을 인정했다면 조금은 더 행복했을까. 냉소적인 월터의 마지막 말은 건조하고 무성의하다. "Enjoy."
주니어 앞에서 허세를 떠는 행크. (사실 행크의 허세는 본인의 공포를 떨치기 위한 수단인 듯한데 그 얘기는 잠깐 접어두고) 거들먹거리는 행크와 행크를 본인보다 잘 따르는 주니어가 고까운 월터는 불쑥 주니어에게 데킬라를 따라준다. 독한 술을 연거푸 먹이는 이 장면과 마찬가지로 월터는 결국 아들의 일상을 망가뜨린다.
행크가 (DEA 요원으로서 하이젠버그를 막아서듯) 데킬라 병을 뺏어 들고 자신을 제지하자 월터는 많은 이들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My son my bottle my house. Bring it back." 가족을 지키고 싶어 시작한 일이 오히려 자신을 가족들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만든 현실과 그것을 모두 되돌리고 싶은 월터의 마음이 분노로 표출된다.
그 와중에 주니어는 데킬라를 한 잔 더 마신 후 수영장 안에 먹은 것을 게워내는데, 가족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가 오염되는 장면에서 범죄의 인과가 다시 한번 드러난다. 스카일러가 달려와 주니어를 챙기는 동안 월터 아니, 하이젠버그는 데킬라를 한 잔 더 들이켜며 미소 짓는다.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보일러와 바닥 수리 공사였다. 뜬금없어 보이는 월터의 공사 삼매경은 그가 처한 상황과 그의 성격 그리고 심리를 몹시 절묘하게 표현하는 장면이다.
월터는 스카일러에게 전화를 걸어 파티에서 난동 부린 것을 사과하며 "I'm not exactly sure who I was yesterday. But it wasn't me."라고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파티에서의 자신뿐 아니라 하이젠버그로 살아가는 자신을 가리키고 부정하는 말 같다.
전화를 끊은 후 월터는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 수도꼭지를 틀었다가 녹물이 쿨럭이며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한다. 문제를 확인하려 보일러실에 들어가 보니 덕테잎을 아무렇게나 붙여놓은 낡은 배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 장면은 직장 탕비실에서 차를 우리는 스카일러의 티백으로 오버랩되는데, 이들의 망가진 일상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마트에서 물탱크가 없는 고급형 보일러를 찾는 월터. 좋은 건 비싸다는 점원에게 그는 "It's not an issue."라고 답한다. 이 장면만 놓고 보자면 그냥 '나 돈 많아'로 들리지만, 조금 넓게 보면 월터와 그가 처한 상황을 빗댄 말 같다. 애초에 월터는 돈 때문에 마약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돈은 문제(issue)가 아니었다.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아졌지만 이미 망가진 그와 가족들의 일상은 고칠 수 없었고, 오히려 더러운 돈으로 인해 더 악화될 뿐이었다.
이어서 보일러 설치 서비스가 필요한지 묻는 점원에게 월터는 "No. I want to do it myself."라고 답한다. 자신의 손으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싶은 월터의 마음과, 동시에 그레첸과 엘리엇의 손길을 뿌리쳤던 것처럼 다른 이의 도움을 청할 줄 모르는 그의 고집을 보여준다.
계산을 위해 월터가 꺼낸 돈다발에는 피 묻은 지폐가 섞여있는데, 월터는 점원의 눈치를 살피며 그것을 도로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아무리 피 묻은 돈일지라도 그는 자신이 노력해서 번 '나의 돈'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제인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제시는 어린 시절에 그렸던 공책 속 슈퍼히어로들을 소개한다. 이때 Backwardo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나중에 Rewindo로 이름을 바꿨다지만 이 캐릭터에게 시간을 되돌리는 힘 같은 건 없다. "No, he just walks backwards." 제시는 그게 무슨 초능력이냐 비웃는 제인에게 위험에 처하면 무지 빨리 도망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하지만 오히려 진전 없이 퇴보만 하는 월터,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제시의 심정을 나타내는 듯하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갑자기 찾아온 아빠 앞에서 제시를 외면한 제인과 제시가 각자의 집으로 들어간 후에 카메라가 건물의 전경을 비출 때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 분명히 두 집이 붙어 있지만 323, 325로 번지수가 하나 떨어져 있다는 점. 결국 함께하지 못한 두 사람의 운명을 암시하는 건 아닐까.)
월터가 막 새로운 보일러 설치를 마쳤을 때 주니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데킬라 사건으로 인해 어색한 인사를 건네는 월터. 이때 둘의 대화 속에서도 많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 월터: It was a good day?
- 주니어: Now it is. Finally, hot water. No more toxic waste.
- 월터: Yes. Yes, indeed. Top of the line, on demand, unlimited supply.
차일피일 미뤘던 보일러 수리를 통해 월터는 오랫동안 방치했던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주니어의 답에서는 월터의 노력을 반기며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동안 가족을 병들게 했던 요소가 사라지고 다시 행복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 하지만 이어지는 (보일러의 최고급 사양을 자랑하는) 대사에서 여전히 그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잠시 후, 싱크대에서 뜨거운 물에 살짝 손을 덴 주니어에게 월터는 "There's probably some adjustments I need to make."라고 말한다. 아직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본인이 모두 바로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월터. 이어서 그는 자신이 어리석었다 말하는데 그저 데킬라 사건뿐 아니라 하이젠버그로서 저지른 일들에 대한 후회와 사과로 들린다.
보일러 교체를 마치고 공구를 정리하던 월터는 바닥이 썩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망가진 배관을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새어 나온 물이 바닥을 썩힌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구석구석 썩어버린 월터와 가족들의 관계 그리고 일상과 같다.
바닥을 뜯고 지하실을 살펴본 월터는 썩은 나무를 모두 잘라내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며 곧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하는데, 집이 다 무너지는 것 아니냐 묻는 주니어에게 자신이 있는 한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그릇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그의 노-력이 가상하지만 가족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그의 수고는 결국 자위일 뿐이다.
*이상의 시 <거울>에서 인용
가족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공사를 하는 월터. 그는 스카일러와 주니어와 마주 보고 앉는 대신 홀로 낑낑대며 썩은 나무를 집 밖으로 나른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 이 장면에서 스카일러와 주니어는 마치 월터의 연극을 보는 관객 같다. 월터는 어쨌거나 썩어버린 모든 것을 갈아치우려 애쓰지만 정작 가족들에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외롭고 헛된 공사를 멈출 줄 모르는 월터. 흰색 작업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월터가 아니라 하이젠버그다. 이로써 온종일 마약을 만들다가 집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생활하는 그의 모습이 극적으로 표현된다. 더러워진 작업복을 입은 채 테이블로 다가와 식빵을 (치즈까지 발라서 냠냠) 먹는 모습에서 그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뻔뻔한 범죄자의 민낯을 드러낸다.
톱밥 속에 파묻혀있던 월터는 마트로 가서 'KILZ 무취'라고 적혀있는 페인트(프라이머) 2통을 집어 든다. 제품명은 그냥 제품명이겠거니 할 수 있지만 굳이 클로즈업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서서히 하이젠버그에 잠식당하는 월터 화이트라든지.)
어쨌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려던 월터는 마약 제조에 필요한 준비물들이 실린 카트를 발견한 후 생각에 빠진다. 이어서 뭔가 결심한 듯 사려던 물품을 내려놓고 주차장으로 향한 월터. 그는 낯선 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Stay out of my territory."
월터 화이트로 돌아가고자 가진 노력을 하는 듯했지만 결국 그는 하이젠버그가 된다. 에피소드의 제목 '다시 그 자리로'는 가족의 품이 아닌 하이젠버그의 구역이었다.
원래 이렇게 길게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다른 에피소드에 관해서도 쓰고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급하게 마무리)
ㄲㅡㅌ.
- 내용에 포함한 이미지는 '시즌2 - 에피소드10: 다시 그 자리로'에서 캡쳐한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