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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Jun 18. 2019

코마coma에 빠진 세대

[NETFLIX] 블랙 미러 Black Mirror

브런치 X 넷플릭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 01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블랙미러 #시즌5



*주의

아래 모든 내용은 100% 개인적인 의견일 뿐, 원작자의 의도와 1%도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시즌5 - 에피소드3: 레이철, 잭, 애슐리 투' 내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읽어주세요.




주인공을 찾아서


‘시즌5 - 에피소드3: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레이철의 혼밥 씬으로 시작한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주변 아이들과는 달리 작은 화면 속 애슐리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레이철.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

카메라가 레이철을 비추는 것은 첫 장면뿐이 아니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레이철, 잭 그리고 애슐리까지 총 세 명의 인물이 있다. ‘블랙 미러’ 모든 시즌을 통틀어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이 에피소드가 유일한데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시즌2 - 에피소드3: 왈도의 전성시대’에서 캐릭터의 이름을 사용한 적은 있었다) 다소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이들 모두 주인공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엄마를 잃고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는 10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절에 본인이 온전히 의지할 대상이 없다는 것은 이들에게 큰 상처와 충격일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엄마의 부재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각 인물은 스스로 일종의 리밑limit을 걸어버린 듯하다.


궁극의 굿즈, 애슐리 투

(에피소드를 모두 보고 나면) 이름을 나열한 순서에도 의미가 있는 듯하다. 제일 먼저 레이철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주인공이고, 잭은 중간에서 다른 두 명을 연결한다. 마지막에 있는 애슐리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지만 사실 가장 억압된 존재로서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특히 애슐리의 경우에는 제목에서 '애슐리 오'(혹은 애슐리 훡킹 오)가 아니라 '애슐리 투'로 언급되는데, 이는 다시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애슐리 투'는 철저히 상품화된 애슐리를 상징하는 하나의 상품이다. 심지어 애슐리의 인격을 그대로 복제한 (그 와중에 리밑limit까지 설정된) 점은 육체와 정신을 모두 통제당하는 애슐리의 피폐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애슐리 투'는 레이철과 잭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매개체이자 애슐리를 구원하는 존재인 애슐리 본연의 자아로도 볼 수 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소원했던 두 자매는 '애슐리 투'로 인해 서로 대화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또한 '애슐리 투'는 복제된 상품에 불과하지만 본체(?)가 훼손된 상황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고, 오히려 실제 애슐리를 구해낸다는 점에서 실제보다 더 이상적인 존재이다. (진짜 주인공은 레이철이나 잭, 애슐리가 아니라 '애슐리 투'일지도..)




본체를 마주하다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어디일까. 통쾌함으로 따지면 (보디가드를 쥐잡듯이 잡는 장면이나) 고모의 계획을 산산조각 내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메시지를 생각한다면 역시 코마coma에 빠진 애슐리와 애슐리 투가 만나는 순간일 것이다.


코마coma에 빠진 자아

애슐리는 고모의 간계로 인해 강제 코마coma에 빠져 신체 활동이 정지된다. 하지만 그전부터 그녀는 이미 완벽히 통제당한 채 살아왔다. 뇌파를 통해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그녀가 새벽녘 피아노 앞에서 읊조린 노래, 매일 남몰래 노트 위에 적은 일기의 연장선 위에 있다. 처절하지만 무기력한 그녀의 목소리는 슈퍼 오토튠을 통해 안타깝게도 다시 한번 상품화된다.


조금 (많이) 의미를 확장하여 생각해보면 코마coma에 빠진 것은 애슐리만이 아니다. 애슐리가 약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면 레이철은 미디어, 잭은 슬픔으로 인해 현실과 격리되어 있다. 특히 레이철과 애슐리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미디어에 종속된 모든 10대(스타와 팬)를 떠올리게 된다.


Unplugged, 죽어야 산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시스템을 파괴하는 애슐리 투는 실제 애슐리의 자아를 대변할 뿐 아니라 결국 구원해낸다. 애슐리 투 역시 리밑limit을 제거한 후에야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무엇이 되든지 간에 먼저 나를 찾아야 한다. 어쩌면 끊임없이 무엇이 되기를 강요받는 세대에게 필요한 위로는 "그냥 아무나 돼"라는 이효리의 말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너 자신을 믿으라' 외치던 애슐리 투보다 리밑limit이 해제된 후, "펔! 슅!"을 내뱉는 애슐리 투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거친 자아)

한 편, 애슐리 투가 강제 코마 장치의 플러그를 뽑는 순간 잠들었던 애슐리가 깨어나는데 주인공 모두에게 이 사건이 큰 전환점이 된다는 측면에서 잠들었던 애슐리는 각자의 자아를 찾는 계기일 뿐 아니라 각자의 자아가 투영된 존재로도 볼 수 있겠다.


이번에도 조금 (많이) 넓게 생각해보자면 '시즌5 - 에피소드2: 스미더린'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플러그를 뽑았을 때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지만 오히려 진짜 삶은 지금 바로 이곳에 있다는 점을 되돌아보게 된다. (스미더린의 CEO 역시 디지털 디톡스를 하러 홀로 산에 오르지 않았나.)




진짜 무대의 시작


이야기는 애슐리와 잭의 합동 무대로 막을 내린다. 으리으리한 무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사라졌지만 주인공들은 정말 행복하게 노래한다. (가사가 몹시 의미심장하다.)

I'd rather die than give you control.


진짜 자신의 무대를 찾은 것은 애슐리뿐이 아니다. 방에서 홀로 엄마가 좋아하던 곡만 연주하던 잭이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무대 위에 올라 차가운 시선을 받았던 레이철은 무대 밖에서 훨씬 더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인다. 레이철과 달리 애슐리 훡킹 오의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 팬들은 무대를 떠난다.





잠깐 스쳐 간 장면과 생각


잭의 스피커 코드가 뽑히는 순간

잭의 스피커 코드가 뽑히는 순간 애슐리 투가 깨어나는 장면은 나중에 애슐리 오가 깨어나는 것의 복선이 아닐까.



레이철보다 먼저 등장하는 아이들

카메라가 레이철보다 먼저 주변 아이들을 비춘 것은 특정 인물이 아닌 모든 10대를 염두에 둔 이야기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누구를 위한 굿즈/투어인가

애슐리 투가 생각 보다 팔리지 않은 이유는 과연 배터리 때문일까. 고모가 계획했던 투어 방식은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연관은 1도 없지만) 제목을 듣고 떠오른 영화.



애슐리 투의 죽음

애슐리 투는 그저 공장에서 만들어진 로봇에 불과한가. 마음대로 폐기해도 되는가.



희망

단물을 쪽쪽 빨린 결과물, 애슐리 투로 인해 오히려 본체(?)를 되찾는 것은 우리의 자아가 그리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는 희망찬 메시지는 아닐까.



같은 방, 다른 공간

같은 방을 쓰지만 책꽂이로 분리된 레이철과 잭. 둘의 관계를 상징하는 장치가 아닐까.



나쁜 아빠, 아픈 아빠

쥐밖에 모르는 바보지만 딸의 생일선물을 선뜻 사주는 아빠. 아내의 물건을 버리지 못한 그는 리밑limit이 걸린 또 다른 인물일지도.




Jack


이야기를 보는 내내 제일 마음에 든 인물은 잭.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동생을 아끼고, 비꼬는듯하지만 아빠(그리고 그의 연구)를 무시하지 않는다. (생일을 아빠에게 알려준) 잭 덕분에 레이철은 애슐리 투를 선물 받고, (아빠의 연구를 지켜본) 잭 덕분에 애슐리 투는 리밑limit에서 해방되며, (아빠의 발명품을 챙긴) 잭 덕분에 애슐리 오는 코마에서 깨어난다.


알고 보면 잭이 다 한 거야!




갑자기 인스타 링크하며 마무리.. @madmadied


ㄲㅡㅌ.





- 내용에 포함한 이미지는 '시즌5 - 에피소드3: 레이철, 잭, 애슐리 투'에서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미지 출처는 해당 영화의 '다음 영화' 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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